▲ 정동영 장관(왼쪽)의 대권캠프로 알려진 여의도 ‘나라비전연구소’ 입구.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물론 차기 대권 레이스가 본격 점화하지 않은 상태라 ‘대선 캠프’라는 단어 자체에 손사래를 치는 대권 주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각 주자들을 음양으로 지원하고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장외 사무실’을 캠프라 불러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각 주자의 ‘캠프’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요신문>은 2005년 연말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차기 대선 주자로 거명되는 인사들의 캠프 ‘탐방’에 나섰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여야 그리고 무소속 주자들의 캠프를 우선 둘러봤다. 이번 호를 시작으로 정동영→김근태(이상 열린우리당)→박근혜→이명박→손학규(이상 한나라당)→고건→기타 주자 순으로 연재할 예정이다. 향후 새로운 대선 주자가 부상할 경우 별도로 취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주-
지난해 1월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선출돼 4·15총선을 진두지휘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선 캠프’는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 6층에 위치해 있다. 공식 명칭은 ‘사단법인 21세기나라비전연구소’(나라연구소). 정 장관측은 ‘나라연구소=대선캠프’로 보는 시각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 한다. 정 장관이 아직 현직에 있는 데다 벌써부터 대선 레이스에 나선 것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이다.
그렇지만 정 장관측 입장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연구소 연혁과 역할을 살펴보면 ‘나라연구소=대선 예비캠프’로 보는 시각에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나라연구소는 정 장관이 국회의원으로 있던 지난해 4·15총선까지 후원회 사무실로도 사용됐다. 지난 2003년 9월4일 나라연구소가 공식 출범하면서 한동안 ‘후원회 겸 연구소’ 사무실로 병용됐던 것. 현재는 연구소 역할만 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남궁석 국회 사무총장이 혼자 이사장을 맡고 있었지만 지난 7월부터 박명광 열린우리당 의원과 함께 공동이사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연구소장은 정 장관의 친구이자 브레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가 맡고 있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정 장관이 정책과 공약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권 교수의 조언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연구소 이사진 역시 쟁쟁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우선 나성린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송관호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 이현범·이수묵·승만호·구용완씨 등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
정 장관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가 지난해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인 7월28일 이사직을 사임했다. 정 장관의 핵심 측근은 “정 장관이 당으로 복귀한 다음에나 본격적으로 연구소 활동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연구소는 소장을 맡고 있는 권만학 교수가 처음 제안했으며 여기에 학계 인사들이 동참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라연구소 관계자는 “권 교수를 주축으로 각계의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연구소”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라연구소 멤버가 증가하면서 현재는 앞서 언급했던 이사진을 포함해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 권만학 교수 | ||
과연 나라연구소에선 무슨 정책을 개발하고 있는 것일까. 나라연구소 정관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의 경제 허브로의 발전전략 연구 ▲나라 경쟁력과 산업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 연구 ▲신(新)성장산업 발굴과 발전전략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통일정책과 남북교류, 국제질서에 대한 연구 ▲정보화 사회에 부합하는 국가경영 모델의 연구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연구 활동에 필요한 조직 활동과 교육 및 강연, 지도자 육성, 조사·홍보·출판 등 부수적인 사업도 병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마디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대해 포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정 장관의 향후 대선 공약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나라연구소의 운영 경비는 어떻게 조달될까. 법인 등기부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설립 당시의 연구소 자산 총액은 2천5백30만7천원. 현재 연구소 운영 경비는 회원들이 갹출해서 조달하고 있다는 게 연구소측의 설명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정 장관의 주머니에선 한푼도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매달 회원들이 연구소 밖에서 세미나를 갖기 때문에 많은 경비가 필요하진 않다”고 덧붙였다.
나라연구소의 연구 성과는 향후 정 장관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펼쳐질 대선 레이스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의 연구소 관계자는 “정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초기에는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통일·외교·안보 분야 자료가 제공됐다”면서 “그런데 이후 통일부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연구소에서 별도의 자료를 전달하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연구소에선 이와 함께 정 장관이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지인들의 경조사도 챙기고 있다. “아무래도 장관실에서 챙기기는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지난 10월24일 개편된 정 장관의 개인 인터넷 홈페이지 관리도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재 이 연구소엔 3명의 직원이 상근하고 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나라연구소 이외에도 정 장관이 별도의 또 다른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 있다. ‘제2캠프’는 서울 마포에 위치해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 장관측은 이와 관련해 “나라연구소 이외의 별도의 사무실은 없다”면서 “친 정동영계에 속하는 여당 의원 20여 명이 합류해 있는 국민참여연대(상임의장 명계남)가 조만간 여의도에서 마포로 이전하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