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선문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다음은 선문대학교 교수의 ‘역사 국정교과서 밀실집필 반대’ 성명서 전문이다.
[선문대학교 교수의 ‘역사 국정교과서 밀실집필 반대’ 성명서]
정부는 역사 국정교과서 밀실집필 추진을 즉각 철회하라!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정부가 지난 10월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를 한 이후 역사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2015년 11월 3일,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11월 3일, 바로 이 날은 1929년 11월 3일, 일제의 지배에 저항해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투쟁운동을 기념하는 날인 ‘광주학생의거일’, 즉 ‘학생의 날’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날에,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한 것은 우리 학생들의 항일투쟁운동사가 동시에 죽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교육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2017년 학교현장의 적용목표로 역사국정교과서 개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역사학자와 전문가들, 역사교사와 역사학도들 대다수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해 반대한 것에 대해 정부가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11월 3일, 정부가 역사계의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강행·발표하고 11월 9일 역사국정교과서 집필진 공개모집 이후 집필진에 이어 편찬심의위원도 비공개의 ‘밀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진리와 정의, 민주의 교육을 추구하는 학자들로서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 절차상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가 역사적 진실과 사실의 교육을 국정교과서로 독점하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 밀실집필 추진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역사교과서 국정제도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검인정 역사교과서에서 ‘친일’을 ‘친일’이라 교육하고 하고, ‘독재’를 ‘독재’라고 교육하는 것이 어찌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반하는 것인가! 오히려 역사교과서 국정제도로 독립운동의 역사, 반독재의 역사,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 살아 숨쉬는 정의의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정권을 미화하고자 검인정제를 폐지하려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과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역사교과서 국정제도가 정권의 교체에 따라 수시로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역사의 해석과 교육을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역사교과서문제가 정권시기마다 반복적인 정쟁을 낳고 말 것입니다. 이는 이미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제 반대의 학자들과 시민들을 ‘좌편향, 좌파, 종북, 빨갱이, 용공’ 등이라는 색깔이념으로 덧칠하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의 80~90%가 좌편향이고, 국정화 반대자들은 국민도 아니고, 2011~2014년 집필진 75%가 좌경화됐고, 교육현장에서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고, 교학사 교과서이외에 7종 교과서가 모두 좌편향이라고 정부가 매도한 것은 바로 정부가 국정교과서제로 역사의 해석과 교육을 독점해 매카시즘의 색깔론으로 장기집권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역사교과서 국정제도가 반헌법적, 반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헌법적 요소는 1992년 헌법재판소의 국정교과서에 대한 위헌결정(‘교육법 제157조에 관한 헌법소원’의 사건번호89헌마88)에 배치돼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입니다. 반민주적 요소는 1973년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에서 채택된 국정교과서제도가 1996년 김영삼 문민정부에서 폐지되고 검인정교과서제로 도입된 민주화의 결실 중에 하나였고, 자율성과 다양성 및 창의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교육이념과도 배치되고, 창의적 민주시민의 교육에도 부적합하다는 점입니다.
넷째, 역사교과서 국정제도가 독재국가나 일부 후진국가에서만 채택하는 제도이고 ‘UN의 역사교육에 대한 권고’에도 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입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정교과서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으며, 현재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독재국가인 북한을 비롯한 후진국의 방글라데시와 일부 이슬람국가 뿐입니다. 베트남도 유엔(UN)의 국정교과서 폐지 권고를 수용해 올해 4월 국정교과서제를 검정교과서제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엔(UN)은 ‘유엔 2013년 총회 특별보고서’에서 단일역사교과서만의 승인이 국가주도의 단일화 역사교육에 의한 특정한 이념의 일방적 주입 도구 위험성으로 인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역사교과서 국정제도가 미래세대의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시대의 다양성 가치를 실현해야 할 미래세대의 학생들이 획일적이고 유일적이고 단편적인 하나의 국정교과서로 교육에 몰입하게 된다면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며 종합적인 사고력을 함양하는 데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교육의 결과를 낳고 말 것입니다. 이들이 성장해 사회에 진출하게 된 후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추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세계인으로서의 인류애를 지닌 시민으로 성장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교과서, 하나의 역사 해석만으로는 글로벌 시대의 민주시민이자 세계시민으로 성장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즉각 철회할 것”에 뜻을 같이 하는 선문대학교 교수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2015년 11월 11일
‘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반대하는 선문대학교 교수 일동
이상 참여교수 34명(가나다 순): 고재종, 고형석, 곽관훈, 구사회, 김경수, 김규선, 김범성, 김수민, 김원미, 김진묵, 노규성, 류승훈, 문한별, 문현주, 방기철, 석영기, 손종업, 심연수, 심영식, 안금영, 안대환, 오동일, 오재환, 유춘동, 윤황, 이동엽, 이성수, 이순배, 이형일, 임승휘, 장민수, 장재이, 정도섭, 홍기순.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