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설전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왼쪽부터). | ||
여기에 MB와 손 지사 간에도 ‘뜬금없이’ 불거진 손 지사의 차기 서울시장 출마설을 놓고 공방이 벌어지는가 하면, 고위 공직자·선거 후보자들이 재산등록시 재산 형성 과정을 증명토록 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의 국회 제출(11월1일) 이후 확인불명의 ‘루머 전(戰)’도 가열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국가 정체성’ 논쟁을 둘러싼 공방이다. 박 대표가 10·26 재선거를 앞두고 ‘장외투쟁 불사’까지 천명하며 던진 화두에 대해 MB와 손 지사가 강력 비판하면서다.
우선 MB는 10월31일 성신여대에서 한국대학생정치외교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한국의 리더 릴레이 강연회’에서 작심한 듯 박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MB는 이날 “지금 나라의 정체성이 무너진다, 만다 아주 큰일 날 것처럼 말한다. 세계 어디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은 지경이지만… 지금 무슨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고 좌익과 우익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MB는 이어 “우리는 이미 이념을 뛰어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야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다”며 국가 정체성 논란에 불을 지핀 박 대표를 겨냥했다. “국가의 가장 큰 목표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와 잠잘 자리를 주는 것”이라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CEO(최고경영자) 대통령론’을 부각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동안 정가 일각에서 박 대표와 ‘연대설’이 나돌 만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손 지사도 MB 못지않게 매섭게 박 대표를 비판했다. 재선거 당일(10월26일) “한나라당이 보수를 표방하면 다음 집권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는 2일에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변화, 이런 것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런 변화의 힘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면 우리는 또 패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시대의 화두는 개혁이다. 그런데 만약에 한나라당이 과거에만 집착해서 ‘우리만 똘똘 뭉치면 잘 된다’는 등의 생각을 갖고서는, 이를테면 과거의 냉전논리에 집착해 있다든지 또는 부패와 기득권 세력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다든지 부정부패, 정경유착 이런 이미지만 갖고 있어선 이건 절대로 다시 집권을 한다는 건 꿈은 꿀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발언 곳곳에 박 대표가 설정한 노선에 대한 비판이 묻어난다는 것이 당내외의 대체적인 평가다.
경쟁자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박 대표측은 당혹감 속에 두 사람의 공세가 당내 노선갈등이 전면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특히 MB와 연대설이 나돌고 있는 소장파측에서 10·26 재선거 이후 ‘쇄신론’을 일제히 주장하며 나선 것과 MB의 박 대표 비판이 상호 교감 속에 이뤄졌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소장파의 리더인 원희룡 최고위원은 MB의 박 대표 비판 발언이 있은 다음 날인 11월1일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가 정체성 논란은 일부 층의 표를 결집시킨 효과는 있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고, 반면에 광범위한 국민들 사이에서 ‘또 색깔론이냐’는 질타가 많았다”며 박 대표측을 겨냥한 후 “이제는 더 이상 소모적인 이념공방이나 단순한 정권비난이 아니라 국민들의 아픔을 실제적으로 대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정체성 논쟁을 둘러싼 전선에서 ‘한 조(組)’를 이뤄 박 대표측을 협공했던 MB와 손 지사 사이에도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안팎에서 거론됐던 손 지사의 차기 서울시장 출마설을 놓고 양측이 감정 섞인 공방을 벌이면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기대만큼의 지지율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손 지사가 대권 출마를 일단 유보하고 MB의 뒤를 이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MB도 당내 다른 후보들보다 손 지사를 차기 서울시장 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이 문제가 된 것이다.
‘선공’(先攻)에 나선 것은 손 지사측이다. 손 지사측은 당 내외에서 서울시장 출마설이 ‘구전’(口傳)으로 떠돌던 10월 말 이전만 해도 “손 지사는 흠도 없고 본선 경쟁력이 가장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상대당인 열린우리당측에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시장 출마설이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이야기다”(김성식 정무부지사)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언론에 ‘출마설’이 거론되자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손 지사측의 이수원 도 공보관이 직접 국회 기자실을 찾아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나서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손 지사측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나름대로 ‘취재’한 결과 ‘서울시장 출마설이 MB측에서 나왔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측근은 내놓고 “MB측이 당내 대선 경쟁을 박 대표와의 ‘양강 구도’로 굳히고 박 대표와 손 지사의 연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손 지사를 의도적으로 흠집 내려고 서울시장 출마설을 흘렸다”고 주장했다.
손 지사 본인도 항간의 소문에 대해 불쾌감을 피력했다. 손 지사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지 서울시장은 또 왜 별안간에 서울시장이냐? 경기도지사 하던 사람한테 서울시장 하라고 하면 그건 경기도민에 대한 모독이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장난하는 얘기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권보다는 당 대표를 노린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지금 경기지사를 하고 있는데 무슨 당 대표냐?”며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손 지사측에 의해 졸지에 ‘음해성 루머’의 진원지로 낙인찍힌 MB측도 “어이가 없다”며 불쾌해 하기는 마찬가지. 한 측근은 “손 지사의 서울시장 출마설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얘기인데 우리가 어떻게 퍼뜨린다는 말이냐. 왜 그런 허황된 얘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MB측은 손 지사 진영에서 ‘MB쪽에서 서울시장 출마설을 흘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데 대해 비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일부 언론에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에도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MB와 손 지사 간에는 이외에도 MB의 재산형성 과정과 손 지사의 측근인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 구속을 놓고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양측 모두 내놓고 상대방을 공격하고 있지는 않지만 물밑에서는 두 사안을 놓고 ‘흠집 내기’에 가까운 설왕설래가 무성한 상황이다.
전자는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여야 대권주자들의 재산규모와 형성과정이 다시금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 계기가 됐다. 재산이 가장 많은(1백86억원) MB측과 가장 적은(2억7천3백만원) 손 지사측이 대조를 보이면서다.
손 지사측은 내놓고 MB의 재산형성 과정의 문제점을 거론하지는 않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청빈’(淸貧)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손 지사의 ‘우위’를 강조하려는 분위기다. 한 측근은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이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을 내게 된 배경을 ‘떳떳한 재산 아니면 조용히 사시라는 취지’라고 했다는데, 그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할 쪽이 있을 것”이라며 “손 지사야 재산이 너무 없어서 ‘무능력한 양반’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MB측에선 인·허가 청탁 등과 관련, 건설업체로부터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한 원장이 문제의 돈을 손 지사에 건넸을 것이란 얘기가 일각에서 나온 것을 두고 “깨끗한 척은 혼자서 다 하더니 어떻게 된 일이냐”는 반응이 나와 눈길을 끈다.
MB의 한 측근은 “한 원장 구속 소식을 접하니 문득 올해 5월 양윤재 서울시 행정 2부시장이 청계천 복원과 관련한 비리로 구속됐을 때 손 지사 주변에서 어떤 얘기가 나왔던가가 떠오른다”며 “잘못하다간 (손 지사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발끈했던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로 쌓인 앙금을 드러냈다. 손 지사는 ‘금품 수수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