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26일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국회 당의장실에 모여 재선거 개표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재선거 참패로 문희상 의장이 사퇴하는 등 열린우리당은 또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 간의 ‘불신’이다. 대통령 탄핵 역풍의 ‘성은’을 입은 의원들은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차지의 1등 공신을 자임하며 당의 목소리를 무시했다. ‘대통령이 신이냐’라고 일갈했던 한 의원의 발언은 당-청 갈등이 내분으로 비화된 것이다. 여기에 2007년 대권을 향한 차기 주자들 간의 ‘대권정치’와 노 대통령의 ‘대통령정치’가 본격적으로 충돌하면서 세찬 파열음이 일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당 의장의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을 만큼 극심한 분열로 창당 두 돌을 맞았다. 최근 정세균 임시 당 의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여권 내부의 드센 충돌은 잠시 휴지기에 들어선 모양새지만 언제 활화산처럼 갈등이 분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과연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임기까지 이대로 존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세간에 나도는 분당·해체 시나리오처럼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거나 분해되는 걸까.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빚어진 당내 갈등사태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계파간 파워게임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 7백30일간의 권력 충돌, 그 애증사를 따라가봤다.
“요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난장판이다. 한나라당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무기력 정당이라고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계파 간 싸움 때문에 하나도 되는 게 없는 무능력정당이다.”
열린우리당 영등포 당사 근처에서 청과물 장사를 하는 한 시장 상인의 말이다. 선거 뒤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차가운 민심이 읽혀진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정당 지지도는 16.2%로 한나라당 지지도 37.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도 24.8%로 약세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 지난 4일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왼쪽)이 정세균 열린우리당 임시 당의장을 예방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여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정동영 김근태 장관 등의 차기 주자들을 최대한 자신의 관리 아래 잡아두면서 정국이 급격히 차기 중심으로 쏠리는 레임덕 현상을 피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내년 초 남북정상회담이나 통일헌법 제정, 아니면 최악의 경우 국민투표 실시 등의 강수를 통해 계속 정국을 장악할 것이라는 여권 핵심부 정보를 최근 입수했다. 노 대통령이 이번 내분 사태에 대해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것도 정국 주도의 묘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차기 주자들 입장에서는 지지율 정체와 향후 대권 구도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이번 당내 분열을 더욱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정동영 김근태 두 장관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
먼저 정동영 장관측에서는 10·26재선거가 끝난 뒤 통합파의 대리인격인 문희상 체제의 유임을 바라고 있었다. 정 장관도 ‘조기 당 복귀’에 대해 회의적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전략기획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런 분위기로는 내년 지방선거도 필패다. 당내에서도 지난 총선 때의 탄핵과 같은 메가톤급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러워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 장관이 복귀하면 어떻게 하느냐. 아마 대선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책임론에 휘말려 조기 낙마하고 말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처지는 정 장관과 사뭇 다르다. 먼저 김 장관은 1년이 넘게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 김 장관측은 정 장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대권 레이스를 만회하기 위해 지금까지 주로 ‘판 흔들기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번 당 내분 사태 때도 자신의 계보에 속하는 문학진 의원 등이 ‘노 대통령이 신이냐’며 지도부를 흔들어 결국 문희상 체제의 퇴진을 불러왔다. 그런 까닭에 김 장관이 부진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당 내분을 명분으로 조기 복귀 쪽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장관의 조기복귀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열린정책연구원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면서 “김 장관도 (내년) 지방선거 패배를 예상할 것이고, 결국 관리형 대리인을 의장 후보로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두관 정치특보 등이 중심이 된 ‘친노세력’도 들썩거리고 있다. 노 대통령이 대권주자들의 집중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정국을 계속 친노 중심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제3후보론’을 띄우고 있는 중이다. 친노그룹인 이화영 의원은 “재선거 이후 일부 대권주자 진영에서 정당한 평가 없이 대통령 비판을 통해 정치적 실리를 획득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고, 이런 인식하에서 여러 대안이 얘기되는 것 같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로선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나 김두관 특보 등이 차기 당 의장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 지난 10월30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함께 산행중에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간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내세워 당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개혁의 강력한 추동세력이 되지 못하는 당에 대해 불만을 가져왔고, 당은 당대로 자신들의 목소리가 국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피해의식이 더욱 커지게 되었던 것도 이번 내분의 중요한 요소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에서 아무리 페이퍼를 써도 청와대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당정 분리가 됐다고 하더라도 표면상 의미다. 당의 전략 보고서를 청와대가 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없다. 당-청이 최소한의 교감도 나누지 않는 상태에서 양쪽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면서 “노 대통령이 당의 의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무시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존칭도 쓰지 않는 의원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잡탕론’도 당 갈등의 핵심 요소다. 지난 2003년 11월 창당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의원은 이와 관련, “그때 의원 47명으로 출발했는데 당 지지도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고 그 누구도 총선에서의 승리를 예상할 수 없었다. 자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급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용물에 상관없이 껍질만 좋으면 마구잡이로 사람을 영입하면서부터 불행은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당시 열린우리당 내에서 ‘비례대표 가운데 일부, 전략후보들 가운데 일부가 한나라당에 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정체성에 대한 회의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창당 과정 때의 ‘마구잡이 영입’은 결국 분열을 불렀다. 지난 2004년 4·15 총선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친노그룹’의 핵심인사였던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당 정체성에 대해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우리당은 좋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지 않으며 말 그대로 잡탕이다.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개인적으로 분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창당 4개월 된 열린우리당의 분당을 공식 제기해 큰 파문을 낳았고 그 여진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 한 전문위원은 열린우리당 분열 사태의 향후 전개과정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당 의장도 열린우리당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노 대통령이 나서서 극심한 내분 사태를 해결해야만 한다. 방법은 연정론 등 노 대통령발 정계개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