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뉴라이트전국연합 출범식에 참석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요즘 박 대표의 ‘서진 드라이브’가 두드러진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 같은 러브콜이 본격화된 것은 10·26 국회의원 재선거 이후 혼돈에 빠진 여권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의 징후가 뚜렷해지고 그 방향이 1997년·2002년 대선 연패의 결정적 요인인 ‘영남 고립’ 구도의 재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다. 당 지지율이 ‘마(魔)의 40%’를 돌파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대한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던 것도 잠시, “지금부터 정계개편 흐름에 대비하지 않으면 또다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경험칙의 소산이라는 평가다.
박 대표의 호남-충청권에 대한 ‘구애’(求愛)는 잦은 현지 방문에서 도드라진다. 박 대표는 11일 광주를 방문해 과학기술원에서 오찬 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전남 무안에서 열리는 전라남도 신청사 개청식에 참석했다. 전날(10일)엔 민생탐방 차원에서 대전을 방문, 현지 연탄공장을 찾은 데 이어 대전시당-충남도당이 개최한 정치아카데미 개강식에 참석한 바 있다.
박 대표는 14일에는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으로 김 전 대통령(DJ)을 방문한다. 9월 말 DJ가 폐부종 등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에 병문안을 하려다 ‘불발’에 그친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또 이달 말이나 12월 초 전남대에서 지역 대학생을 상대로 특강도 가질 예정이다. 박 대표가 올 들어 숙명여대 등에서 특강을 한 적은 있으나 ‘불모지’인 호남권 소재 대학을 찾아 공개강연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란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박 대표의 연이은 호남-충청 방문의 배경을 놓고 당 안팎에선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논의에 대한 대응과 갈수록 치열해 지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MB)과의 당내 차기 대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표와 가까운 한 영남권 중진은 “박 대표가 10·26 재선거에서 ‘압승’하고 그동안 비주류와 갈등을 빚어왔던 혁신안이 매듭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대권행보를 시작했으며, 호남-충청권에 대한 ‘구애’도 그 일환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중진은 “박 대표 입장에선 영남이나 수도권과 달리 호남-충청권엔 공을 들이면 들이는 만큼 성과를 거두게 되어 있다. 충청권의 경우 MB는 행정복합도시법을 둘러싼 대립으로 인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반면 박 대표는 아무런 부담 없이 표밭을 갈 수가 있다. DJ와 관계에서도 선친(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오히려 박 대표에겐 호남권에 다가설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이번 동교동 방문에서 DJ가 지난번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 한 ‘덕담’까지는 아니더라도 박 대표를 격려하는 언급을 해준다면 그만큼 ‘호남 껴안기’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박 대표가 호남-충청권의 바닥 민심을 장악하기 위한 노력과 별개로 두 지역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민주당, 국민중심당(가칭)과의 연대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자민련과의 통합선언을 통해 충청권의 새로운 ‘맹주’로 급부상하고 있는 국민중심당측과는 이미 어느 정도 ‘교감’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 대표의 측근인 초선 A의원은 국민중심당 인사들과 최근 오간 얘기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A의원은 “얼마 전 국민중심당의 핵심인물인 B의원,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JP)의 측근인 C 전 의원과 라운딩 도중 C 전 의원이 ‘국민중심당과 한나라당 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열린우리당에서는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97년, 2002년 대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더니 ‘열린우리당과 우리 당은 색깔이나 정책에서 다른 면이 너무 많다. 한나라당이 정책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맞다. 박 대표에게도 이 같은 분위기를 전달하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 지난 8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면담한 김대중 전 대통령. 오른쪽은 김종필 전 총재. 사진=국회사진기자단 | ||
열린우리당과의 합당론으로 들끓고 있는 민주당과는 정책공조를 통해 상호신뢰를 쌓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평가다. 당초 열린우리당과 11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합의했던 ‘쌀 관세화 유예 협상’에 대한 비준동의안에 대해 박 대표가 9일 강재섭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민주노동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동의안 처리 시기를 미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단적인 예다.
민주당 내에서 일부이긴 하나 한나라당과 연대론이 나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승희 의원의 경우 “여당의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한 가운데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합당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오히려 여당과 행정부가 지나치게 독주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끼리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며, 그 대상에는 한나라당도 분명 포함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박 대표측의 ‘서진(西進) 드라이브’에 대해 비주류측은 ‘외연 넓히기’란 목표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보수세력 연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접근방법에는 경계의 빛을 나타내고 있다.
‘수요모임’의 한 핵심 의원은 “한나라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하기 위해선 호남-충청권에서 기반을 넓히는 데 사활을 걸고 나서야 한다”면서도 “다음 대선의 기본구도가 누가 미래세력이고 과거세력이냐로 모아질 것이 분명한 마당에 호남-충청에서 외연을 넓히자고 ‘퇴행적’ 보수세력을 무작정 껴안는다면 당의 ‘수구 꼴통’ 이미지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MB측의 반응은 더욱 더 비판적이다. MB의 한 측근은 “박 대표측이 당 운영이나 정계개편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 지나치게 정파적 이익을 앞세우려는 경향을 보이는 부분에 대해선 견제할 것은 견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