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보건복지부가 성남시 무상공공산후조리원과 무상교복 등 지방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중복성과 선심성 정책 방지라는 명목으로 정부와 협의를 거쳐 신설된 정책 외에도 기존 정책마저 제한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맛대로 운용지침 등을 변경하고 이마저도 지켜지고 있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 12월 보건복지부는 ‘2015년도 사회보장제도 신설·변경 협의 운용지침’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이 지침의 가장 핵심은 협의·조정절차로 사회보장제도 신설 변경에 따른 협의요청 시 중앙행정기관장 및 지방자치단체장은 보건복지부장관에게 협의를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협의시점과 기한도 종전보다 늘어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해 운용지침과 올해 운용지침을 비교한 결과, 협의조정 절차 중 신설변경에 다른 협의시점에서 4월말 이후에도 긴급한 사유에 의하여 사회보장제도의 신설 또는 변경이 필요한 경우 사업계획을 확정한 즉시 협의요청서를 제출하는 것은 동일하나 올해 지침에서는 사업시행 예정일 180일 이전에 제출해야 하는 항목이 포함됐다. 협의기한도 종전 협의요청서 제출일로부터 60일 이내 처리에서 90일 이내 처리로 변경되었다.
한 관계자는 “협의기한이 늘어난 것은 그렇다고 치지만, 그 시일마저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건복지부의 협의 진정성을 지적했다.
성남시에 따르면, 성남시가 추진해온 무상공공산후조리원이 보건복지부의 불수용 상태로 아무 진전이 없이 기한만 흐르고 있어 예산집행의 책임으로 인한 부담감을 지방정부가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운용지침에 명시한 협의기한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이에 대한 답변이나 해명조차 없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성남시의 경우, 지난 8월 4일 무상교복에 대한 협의요청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지만 운용지침에 명시된 제출일 기준 90일 이내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월 25일 현재 까지 110여일이 훨씬 지났지만 보건복지부가 조치에 대해선 묵묵부답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시 관계자는 “협의요청서 제출 당시에 협의기한 내에 어떠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협의기한이 지났을 때에도 기다리라고 만 한 채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더욱이 처음 보건복지부관계직원이 협의기한을 90일 내외로 착각하는 등 과연 보건복지부가 지방 복지정책이나 사회보장제도 확대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의를 주재하며, “이전까지 우리 복지제도는 중앙과 지자체, 각 부처와 부서 간 칸막이를 높이 세우고 제각각 추진하는 경우가 많아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나는데도 현장의 복지 체감도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 비효율성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난 2013년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출범한 기구로 박근혜 대통령이 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한 청년배당과 청년활동 지원사업 등을 비롯해 야권인사들의 복지정책 등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총선을 앞두고 여권 인사들과 정부 관료들이 연이어 지방 복지정책에 대해 ‘포퓰리즘’ 정책이자 형평성과 중복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도 연장선상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서울시는 청년활동지원 사업은 복지사업보다는 일자리 사업이어서 보건복지부와 협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마찬가지로 협의 대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성남시 역시 이재명 시장이 전면에 나서 지방자치법을 훼손하고, 복지확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보건복지부의 동의가 없어도 추진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9월 30일 입법 예고한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사회보장위원회의 조정 결과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지출한 금액만큼의 지방교부세를 감액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또한 법제처가 사회보장제도 신설, 변경 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는 지침의 ‘협의’의 의미를 ‘합의 또는 동의’로 해석하는 등 정부가 재정으로 지방정부를 압박하고 사실상 정책의 결정권을 가지게 되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서동철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