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가족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공직자는 총 37명(국회의원 12명, 행정부 공직자 25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8명이 늘었다. 행정부의 경우 지난해 고지 거부자가 20명이었던 것이 올해는 25명으로 늘었고 국회의원은 2005년에는 총 9명만이 고지를 거부했었으나 올해는 그 수가 두 자릿수가 됐다. 고지 거부자 수는 지난 14년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직자 재산검증을 사실상 무력하게 만드는 고지거부 공직자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고위공직자들이 신고한 부동산 등의 재산가액은 실제 가치와 큰 차이를 보인다. 현행 재산신고 규정이 부동산의 경우 최초 분양가 또는 기준시가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런 이유로 공개된 재산 내역만으로는 공직자의 실제 재산규모를 알기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종 언론들도 현행 공직자의 재산신고가 ‘위법은 아니지만 축소 신고가 다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서울 서초동 현대슈퍼빌 102평형을 23억 원에 신고했지만 실제 이 빌라의 일반 거래가는 현재 35억 원에 달한다.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53평형을 신고한 한나라당 진영 의원의 경우에도 신고액은 8억500만 원이었지만 실거래가는 2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에 40평형대 아파트를 보유한 열린우리당 홍창선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도 각각 9억 6050만 원과 6억 4000만 원이라고 신고했으나 실거래가는 17억~19억 원 선이었다.
그러나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공직자 재산신고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본인과 배우자를 제외한 부모와 자녀들의 재산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올해도 직계 존·비속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공직자는 국회의원이 12명, 행정부 공직자는 25명에 달했다.
국회의원의 경우 우선 국회부의장을 맡고 있는 열린우리당 김덕규 의원이 결혼한 장남의 재산공개를 거부했고 국회 행정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4선의 이용희 의원도 3남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불법경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월 2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은 바 있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차남의 재산 공개를 거부했다.
열린우리당 백원우 의원은 국회의원으로는 유일하게 부모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경우로 꼽혔다. 지난해에 비해 2000만여 원의 재산이 줄어든 것으로 재산을 공개한 백 의원은 지난해 신고에서는 부모의 재산변동을 모두 신고했었다.
3선의 한나라당 권철현, 열린우리당 변재일 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2년째 직계가족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권 의원은 지난해 부모와 차남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데 이어 올해에는 장남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변 의원은 지난해에는 장녀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가 올해는 차녀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이 두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심재엽 강길부 김태홍 김광원 이강두 강창일)은 지난해에는 모두 본인과 직계가족들의 재산을 모두 신고했던 의원들이었다. 올해 들어 갑자기 재산공개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들은 이들의 재산이 공개하기 거북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 아니냐고 추측도 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올해 직계 존·비속의 재산에 대해 고지거부권을 행사한 고위공직자는 총 25명이었다. 2005년 18명, 2004년 2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인 셈. 외교부가 6명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부가 3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장관은 자녀들의 재산공개를 거부했고 이규형 제2차관, 한태규 본부대사, 권영재 주터키대사, 황용식 대만대표 등이 자녀들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조일환 대테러국제협력대사도 모친의 재산공개를 거부했다.
김정일 국방부 방위사업청개청 준비단장은 모친과 자녀의 재산공개를 모두 거부했고 조재토 남해일(보안상 직위 비공개) 등 국방부 고위관료들도 자녀들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차남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재정경제부 소속의 이종규 국세심판원장과 정치인 출신의 이우재 마사회장, 차남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이근표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눈에 띄고 있다.
이 외에도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최현섭 강원대 총장, 이용원 진주교육대 총장 등 2명이 고지를 거부했다. 또 김종신 감사원 감사위원, 최홍순 전 대통령 비서관, 조선호 충남지방경찰청장, 양휘부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정대근 농협회장,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성상철 서울대병원장 등도 고지 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로 14년째를 맞고 있는 공직자 재산공개 결과 지금까지 가족의 재산공개를 거부한 공직자는 총 24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지 거부권은 ‘부양받지 않는 직계 존·비속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직자윤리법 예외조항에 따른 것이다.
재산공개에 대한 각계의 비판에 쏟아지면서 국회에서는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규정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에 대한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재산공개 직후 국회 행정자치위 소속의 열린우리당 양형일 의원은 “형식적 등록에 그치는 현행 시스템으로는 재산공개 정신을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고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도 “부동산을 매년 국가가 책정한 공시지가에 따라 조정하면 되고 골프장 회원권은 국세청 고시 가격에 따라 바꾸면 된다”며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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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