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지사 출마냐,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냐.’ 진대제 장관의 첫 정치적 행보를 두고 추측이 무성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모습. | ||
현재 여권의 역학 구도상 진 장관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요구는 그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진 장관이 큰 맘 먹고 여의도에 발을 들여 놓는 이상 그의 집념이 여론조사에서도 뒤져 있는 경기도지사 후보 직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과연 진 장관이 내놓을 마지막 카드는 무엇일까. 진 장관의 최후의 선택에 얽힌 고민을 따라가 봤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해 초부터 여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다. ‘삼성맨’이라는 든든한 배경에다 취임 뒤 2년 동안 와이브로 사업, DMB 등 ‘IT839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팬클럽이 만들어진 유일한 장관일 만큼 대중적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진 장관의 ‘대타’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이름이 전격 부상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강 전 장관 본인은 ‘정치에 뜻이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 와중에 청와대가 진 장관이나 김한길 의원 등이 서울시장 후보로 약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강금실 띄우기’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설득력 있게 나왔다. 당시 청와대는 지방선거에 대한 사전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불법도청 의혹에다 국정운영 난맥과 지지도 하락으로 누구도 야당 후보를 쉽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진 장관 카드를 대신할 ‘막강’ 후보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그때는 다른 일(대연정 제안 등)로도 정신이 없었다. 강금실 카드를 두고 차기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사실 8월 그때까지만 해도 진 장관이 유력했으나 국정원 불법도청에 대한 국회 위증으로 신뢰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인기 상승 국면이 한풀 꺾였다. 그래서 당시 여권 내 마땅한 후보군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8월경부터 그 해 말까지 여당 서울시장 후보군에 대해서는 강 전 장관과 진 장관의 이름이 ‘혼재’해 있었다.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에 대해 “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해왔다. 당시 강 전 장관 이름도 나왔지만 진 장관도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우리는 진 장관을 유력한 서울시장 경선 상대로 보고 준비도 했다. 기자들은 우리 두 사람이 경선에 나선다면 ‘현대(이계안)와 삼성(진대제) 간의 재계 라이벌 빅 매치가 벌어지게 돼 재미있을 것’이라는 농담도 건네곤 했다”고 밝혔다.
사실 지난해부터 강 전 장관과 진 장관은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자의 반 타의 반’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해왔다. 하지만 올해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무게추’는 강 전 장관측으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강 전 장관에 대한 각 계파의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치적 위상도 진 장관에 비해 크게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 전 장관은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되는 부산물을 얻게 된다.
하지만 진 장관이 정보통신부를 떠나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게 되는 순간부터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강 전 장관에 대한 ‘대반격’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 단초는 최근 진 장관의 주변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치권 한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진 장관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확정되지 않은 것 같더라. 진 장관이 ‘서울시장 후보로 가고 싶은데 당에서는 강금실 전 장관을 확정해두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렇다면 차라리 강 전 장관과 경선을 붙여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주변에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진 장관이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강 전 장관과 경선을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 빅 매치가 돼 국민적 관심을 끌 수 있다. 만약 두 거물의 극적인 경선 이벤트가 성공할 경우 열린우리당은 그 여세를 몰아 서울시장 선거 승리로 직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들 측에서도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중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두 거물의 경선이 성사돼 오히려 진 장관이 승리하게 되면 한나라당 후보들은 전략공천으로 나오는 강 전 장관과의 대결 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본다. 경선을 통해 바람몰이를 한 상태에서 젊은 층에도 인기가 많은 진 장관이 오히려 더 버거운 상대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 장관 측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경선의 성사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우상호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 장관의 경선 요구 이야기는 모두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진 장관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내정된 것은 확실하다. 그밖에 경선 성사 여부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세부적인 논의는 후보가 정해지는 대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당내 역학 구도도 진 장관의 경선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게 돼 있다. 정동영 의장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가 총 출동해 ‘삼고초려’를 한 뒤 어렵게 강 전 장관을 ‘모셔오는’ 상황에서 그에게 위험한 경선까지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 열린우리당이 서울시장 후보감으로 ‘삼고초려’ 중인 강금실 전 법무장관. 지난 7일 법무법인 지평 사무소 이전 때 모습.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어차피 삼성이라는 평생 안정된 직장을 떠난 이상 진 장관도 뭔가 큰 꿈을 꾸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경기도지사는 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후보는 강 전 장관과 경선을 하든지 아니면 그가 나오지 않을 경우 진 장관이 직접 나서서 시장직에 도전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경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경기도지사 선거에도 불출마를 선언하고 외곽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정치적 위상을 키우면 된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그보다 더 큰 목표를 두고 달려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 장관의 ‘큰 꿈’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공통된 의견 하나를 나타낸다. “충분히 그럴 만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경기고 동문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진 장관은 집념이 강한 사람이다. 또한 매우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캠프의 한 조언 그룹에도 자주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그 뒤 참여정부에 입각하면서부터는 경기고 출신을 매개로 친노그룹에 속하는 유인태 의원 등과 친분을 나누었다”고 밝혔다.
한편 ‘경선 요구설’에 대해 진 장관 측은 펄쩍 뛰면서 부인하고 있다. 임형찬 장관 정책 보좌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 장관이 그런 말 한 적 없다. 그것은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다. 진 장관은 아직 초보이기 때문에 그런 고단수 정치를 생각 못하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임 보좌관은 또한 “진 장관은 아프리카 출장에서 귀국한 뒤 일주일 동안 주변 사람들과 깊은 얘기를 나눈 뒤 출마 여부부터 확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임 보좌관은 “출마 지역도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 경기도 쪽 얘기가 언론에서 자꾸 나오니까 진 장관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도다. 본인은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았고 좀 더 고심해 보겠다고 했다. 물론 그 대상에는 서울도 포함된다”고 밝혀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진 장관 본인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경기도 출마 여부에 대해) 약간의 유동성이 있다. 제안은 경기도로 받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지금 할 수 없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다.
진 장관은 과연 정치적 첫 행보를 어떻게 시작할까. 어쩌면 앞서의 경기고 동문 의원의 말이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진 장관이 장관 한 번 하려고 삼성을 나왔겠나. 좀 더 큰 꿈이 있겠지. 삼성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도 있지 않나. 삼성에서 도와주면 뭔들 못하겠나. 그 꿈이 서울시장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