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전쟁에 돌입한 새누리당에서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경쟁 인사 측으로부터 자신의 치부에 대한 내용을 전해듣고 자진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비박계 의원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군부대를 방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앞줄 오른쪽). 사진공동취재단
공천룰 전쟁에서 다소 밀렸던 비박계는 이번엔 복수전을 벼르는 모습이다. 특히 비박계를 이끄는 김무성 대표는 총선 승리를 통해 대선주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겠다는 의지다. 이처럼 경선 전쟁의 막이 오른 가운데 새누리당 일각에서 친박계의 은밀한 움직임들이 포착됐다. 몇몇 친박 인사들이 비박계 후보들의 민감한 내용이 담긴 파일들을 공천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그 골자다.
“후보 사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4월 총선 출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동안 총선을 위해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하며 선거운동을 해왔던 그였기에 뜻밖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솔직히 말해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그런데 나랑 붙을 가능성이 높던 후보 진영에서 내 지인을 통해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알아서 포기하라는 뜻 아니겠느냐. 내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편이 협박조로 나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더군다나 나와 관련된 정보는 극히 소수만 아는 것들이었다. 친박계로 알려진 상대 후보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다른 예비 후보자 역시 비슷한 사연을 털어놨다.
“오래전부터 선거를 준비해왔고, 이번엔 경선 통과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지역구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내 가정사에 대한 것이었다. 가족들이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내용들을 상대 후보 쪽에서 퍼트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경쟁자가 친박계가 미는 후보다 보니 은밀한 정보들을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사실상 출마 뜻을 접은 상태다.”
이어 그는 “대구 달성 이종진 의원이 갑작스레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 나와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종진 의원은 지난 1월 18일 갑작스레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이를 두고 지역정가에선 ‘진박’으로 통하는 추경호 후보(전 국무조정실장)를 밀기 위한 친박 핵심부 외압설이 제기된 바 있다.
앞의 두 사례는 올해 초부터 여권 일각에서 회자되던 친박계의 비공개 총선 전략이 실제 가동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몇몇 핵심 친박 인사들이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략에 따르면 현역 의원 물갈이를 위해서 사정기관이 확보한 비리를 경선 등에 적절히 활용해야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비박계는 발끈하고 나섰다. 낙하산 전략 공천을 밀어붙이던 친박계가 비박 인사들을 겨냥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류인 친박계가 사정기관 자료들을 가지고 공천에 개입한다면 이는 정치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정무파트 관계자는 “과거 정권에서 그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이뤄지긴 했지만 지금의 공천룰에선 불가능하다. 상대 후보들이 가만있겠느냐”면서 “비박계가 경선을 앞두고 오히려 친박계를 흠잡기 위해 루머를 퍼트리고 있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반면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앞서의 사례들을 듣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친박계의 부적절한 총선 전략이 실행되고 있는 듯한 정황들로 받아들인 까닭에서다. 수도권의 한 비박계 의원의 주장이다.
“쉬쉬하고는 있지만 비슷한 일을 겪은 의원들이 여럿 있다. 어찌됐건 약점이 잡혀서 공개적으로 말을 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예비후보는 ‘과거 비리를 가지고 있으니 알아서 물러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비박계 의원 또는 예비후보들만 겪은 일이다. 친박 쪽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비박 진영에선 경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그동안 반응을 자제해왔지만 향후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보 교류 등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선 ‘X파일’ 활용 전략 배후에 친박 실세로 통하는 A 의원과 청와대 B 수석 간 핫라인에 주목하고 있다. 두 사람은 TK 물갈이 등을 진두지휘하면서 사정기관 자료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A 의원의 경우 친박계가 출사표를 던진 지역구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그 배경엔 청와대가 자리 잡고 있다. A 의원이 청와대 하명을 받아 지역구 교통정리 등 총선과 관련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B 수석 등으로부터 전달 받은 후보들 자료 역시 A 의원 주도 하에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상당수 비박계 의원들이 A 의원과 B 수석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의 한 친박 원로 인사는 “A 의원은 ‘TK 물갈이’ 기획자다.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친박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경선에서도 친박 후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지난해 상반기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던 사정 드라이브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4월경부터 검찰을 중심으로 한 사정기관들은 지난 정권과 연관이 있는 기업과 사업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또 정치권 입법로비 수사도 병행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불거지면서 이완구 전 총리 등 친박으로도 불똥이 튀었지만 그 타깃은 주로 비박계였다. 수사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검찰 등은 비박 의원들에 대한 엄청난 양의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비박 의원들은 사정기관의 이러한 행보가 총선을 염두에 둔 정지작업 아니냐는 의구심을 여러 번 제기했는데, 지금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개연성이 없지 않은 주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의 설명이다.
“친박에게 있어서 이번 총선은 정치적 운명을 걸 수밖에 없는 선거다. 일정 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친박이라는 정치 세력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박 대통령 레임덕은 시작된다. 이 경우 박 대통령 퇴임 후가 불안해진다. 개인이 배지를 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친박 핵심부가 사활을 걸고 조직적으로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대해 4월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비박계의 한 전직 의원은 “친박계가 다급한 것은 이해한다. 우리도 MB(이명박) 정권 말이던 2012년 총선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면서도 “그렇지만 이처럼 꼼수를 써서 경선을 치르려 하는 것은 정치 도의상 옳지 못하다. 자칫하면 새누리당 전체가 비난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