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록게이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향을 놓고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사진은 정상명 검찰총장. | ||
재계 2위 현대차가 무장해제를 당했고 다국적 기업 론스타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김 씨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직 사건의 파장은 물론 방향도 오리무중이지만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김 씨의 체포와 현대차 압수수색까지 불과 4일이 걸렸고 나흘 후인 지난달 30일에는 외환은행 인수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론스타까지 압수수색했다.
앞으로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정계나 재계 모두 몸을 사리고 있다. 김 씨의 로비 의혹과 관련, 이헌재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재계 인사들의 이름도 언제부턴가 실명으로 떠돌고 있다. 검찰의 수사 타깃이 DJ정부인지 현 정부인지를 두고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설왕설래하는 진풍경도 연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차 이외에도 상당수의 기업이 수사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권력 심층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서론이 없이 시작된 사건은 벌써 중반전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이 금융브로커 김재록 씨의 정·재계 로비 의혹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현재 김 씨는 DJ 정부 당시부터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각종 기업 인수합병 및 구조조정에 뛰어들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함은 물론 각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 로비를 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처음 꺼낸 의혹도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진행되면서 문제는 복잡해졌다.
예기치도 않던 현대차 본사 압수수색이 단행됐고 외환은행 매각을 서두르고 있는 론스타와의 관련성도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건을 맡고 있는 대검중수 1, 2과는 이미 김 씨를 중심에 놓고 공조수사를 시작한 상태다. 상황이 이쯤되자 법조기자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방향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아우성을 쏟아내고 있다. 검찰은 기자들을 상대로 매일 “확인해 줄 수 없다. 오보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아직 김 씨와 관련된 의혹은 대부분 ‘설’로만 남아 있다. 그의 구속사유가 된 쇼핑몰 두 곳에 대출을 알선해 준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는 이미 사실관계가 확인됐지만 정작 사건의 본류인 대기업, 정·관계를 상대로 한 로비 의혹은 무엇 하나 확인된 것이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볼 때 이 사건의 핵심은 지난달 26일 압수수색을 받은 현대차의 비자금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고작 비자금 15억 원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재계 2위 기업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에 대한 압수수색 이후 이번 사건에 대한 분석이 혼선을 겪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 문제가 김 씨의 로비 의혹과는 별개의 사건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에 정치권의 괘씸죄가 적용돼 정몽구 정의선 부자를 겨냥한 수사라는 일부의 추측도 여기서 출발한다.
현대차에 수사는 내부 제보에서 비롯됐으며 그 제보는 지난해 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증권가와 정치권에 ‘브로커 김재록’의 이름이 오르내린 것은 올 1월경이었다. 두 가지 수사가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맞물리면서 업계에서는 기획수사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실체를 보여주지 않는 검찰의 수사, 선거를 앞둔 시점에 불거진 것 등 모든 정황이 이를 부채질했다. 이헌재 사단으로 불리는 인사들과 친분 또는 사업관계로 얽혀 있던 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정·재계에서는 ‘검찰이 DJ를 겨냥했다’는 말도 나왔다.
▲ 스타타워 건물의 안내판으로 30층에 이번에 압수수색당한 론스타 자회사들이 들어서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검찰의 수사 방향과 관련, 대검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좀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의혹을 부풀리다 보니 문제가 복잡해지고 오보가 쏟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미 밝힌 것과 같이 비록 두 사건이 김 씨를 중심으로 얽혀 있지만 현대차 비자금에 대한 수사와 김 씨 사건은 이제 사실상 별개의 사건으로 수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대차 그룹 전체에 대한 수사, 타기업으로의 전면적인 수사 확대 가능성도 아직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월 로비 의혹과 관련, 김 씨를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검찰은 그의 로비 의혹 중 대부분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2월 김 씨와 관련된 의혹이 검찰에서 상당부분이 해소됐다는 보고를 받은 일이 있다”고 전했다. 최근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도 현대차 그룹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 브리핑에서 “현대차 그룹에 대한 전반적인 수사는 아니다. 김 씨에게 흘러간 로비 자금이 글로비스를 통해 조성됐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타 기업에 대한 수사는 아직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간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현대차에 대한 수사는 김 씨에 대한 수사와는 별개로 조기에 끝날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기업의 비자금 전체에 대한 수사가 쉽지가 않고 책임소재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도 한계로 제기된다.
그래서일까 일각에서는 현대차 압수수색에 이어 단행된 론스타 압수수색이 사실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 수사가 정몽구 정의선 부자에게 칼날을 겨눈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수준에서 마무리되고 오히려 론스타 수사가 김 씨 수사 중심축의 하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론스타의 경우 탈세, 외화밀반출 의혹을 넘어 외환은 인수와 관련된 문제와 국부유출 문제로 확대될 경우 그 파장은 심각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크게 봤을 때 현대차 비자금 문제는 김 씨를 수사하는 데 있어 하나의 미끼가 될 수 있다. 자금 전달책인 그를 통해 비자금의 입구와 출구를 모두 확인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작은 미끼로 큰 고기를 잡으려 할 것이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김재록 수사와 현대차 수사, 론스타 수사는 그 뿌리가 하나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세가지 의혹이 맞물리며 때로는 독자적으로 진행되며 정·관·재계는 지금 숨을 죽이고 있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