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프로듀스 101> 방송 화면 캡처. 프로그램 참여 연습생들은 실력에 따라 A~F 등급으로 나뉘며 등급별 옷 색깔도 다르다.
가장 불편한 대목은 각 출연자들의 ‘등급’을 매긴다는 것이다. 실력 별로 A~F 등급을 받고 각 등급별로 모여서 따로 트레이닝을 받는다. 오디션이나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는 엄연히 순위가 존재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 등급을 마치 명찰처럼 가슴이 붙이진 않는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은 자신의 등급이 새겨진 옷을 입는다.
실력에 따른 차별은 이뿐만이 아니다. 등급별 옷 색깔도 다르다. 심지어 그들이 서는 무대 높낮이를 다르게 하기도 한다. 아직 시청자들의 눈에 익지 않은 101명의 소녀들을 출연진으로 삼으며 시청자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어떠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제작진은 실력이 부족해 낮은 등급을 받았던 출연자가 트레이닝을 거친 후 높은 등급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20세 전후의 아직은 어린 소녀들이 받게 되는 상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냉혹한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의 일환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것 또한 스스로의 의지였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느끼는 불편함까지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시청자가 직접 멤버를 뽑는다는 것에도 의문이 생긴다. 공정한 심사가 이뤄지려면 101명에게 비슷한 출연 분량이 할애돼야 한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은 뛰어난 실력을 가진 출연진들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출연 빈도가 높아지고 대중적 인지도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각 출연 분량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오며 상대적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프로듀스 101>에 소속 연습생을 출연시킨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출연진이 워낙 많기 때문에 돋보이는 출연자는 소수”라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뻔히 알았지만 기획사 입장에서는 연습생을 노출시킬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프로듀스 101>에는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등 유력 기획사들의 연습생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트레이닝 시스템이 탄탄하기로 유명한 기획사 입장에서는 공들여 키운 연습생들을 굳이 출연시켜 이미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종 경쟁에서 살아남은 11명이 정해진 후에도 과연 잡음 없이 활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소속에서 몸담고 있음에도 <프로듀스 101>의 제작사인 CJ E&M과 별도의 계약을 맺고 일해야 한다. 현 소속사와 CJ E&M이 합의해 수익 배분은 11명이 정확히 나눈다 할지라도 CJ E&M이 약속한 전속계약 기간 10개월이 끝난 뒤 팀 유지를 장담할 수 없다. 각 회사 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각 멤버별 인기도도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순 없다.
게다가 10개월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그룹이 론칭되고 그들이 이름을 알리기까지 최소한 2~3년은 걸린다. 물론 선발 과정이 낱낱이 공개되며 인지도를 쌓고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프로듀스 101>이 전 세대를 아우를 만큼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진 않다.
또한 CJ E&M이 론칭한 그룹인 만큼 지상파 출연에는 제약이 있다. 기존 <슈퍼스타K>나 <보이스 코리아> 출신 가수들이 겪었던 일이다. 해외 활동에 기반을 둔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별다른 지명도가 없이 해외에서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10개월 안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프로듀스 101>이 실패했을 경우 남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출연한 이들이 이름과 얼굴을 알리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그랬듯 후속 활동이 없으면 순식간에 잊힌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은 ‘경쟁’과 함께 ‘교육’에 방점을 찍었다. 이미 실력자로 인정받은 유명 뮤지션들이 멘토로 나서 기운을 북돋웠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은 ‘교육’보다는 ‘경쟁’을 앞세운다. 몇몇 멘토들이 참여했지만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 속 멘토와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 속에서 출연자들은 ‘배우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긴다.
소위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이미 ‘인성이 별로’라고 네티즌에게 찍힌 출연자도 있다. 출연자 보호 차원에서 걸려내야 할 만한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화제성을 이유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모양새다.
또 다른 출연진의 소속사 관계자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이 지독한 이기심으로 비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프로듀스 101> 최종 11인에 포함되는 것을 떠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마음의 상처만 입는 이들이 발생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