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하남 집에서 만난 임수혁. 낯선 기자를 보고도 그는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다. 오른쪽은 임수혁 아버지의 권유에 기자가 종아리를 만져보는 모습. | ||
임수혁의 아버지 임윤빈씨는 야구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야구선수라면 그가 산 밥을 먹어보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다. 동료 선수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챙겨줬다는 게 주변 야구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임수혁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임수혁의 아내와 아이들이 시댁 식구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루머가 나돌았다.
그 내용을 확인해 보기 위해 지난 4일 임수혁의 아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수지의 B아파트를 찾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부인 김영주씨와 두 자녀는 지난해 7월 중국으로 떠났다는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인근 부동산에 수소문한 끝에 아직 전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새로운 입주자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추가로 확인했다.
어쩔 수 없이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임수혁의 아버지 임윤빈씨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임씨는 예상외의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 속에서 그동안의 시간이 결코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임수혁은 아버지 임씨의 집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동안 병원비도 제법 나오고 가세도 기울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때 프로야구에서 이름을 날렸던 스포츠 스타의 아버지가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방에 누워있는 임수혁을 만났다. 임수혁은 선수시절 체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몸 상태는 좋은 편이었다. 체중도 무려 94kg이나 나가 아버지 임씨가 부축하지 않으면 휠체어에도 태우기 어려울 정도다. 임수혁은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다. 눈만 껌뻑거릴 뿐 눈앞에서 손가락을 움직여도 동공 반응이 전혀 없다. 식사는 배에 연결된 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근육 마사지와 물리치료를 겸한 기(氣)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 지난 2000년 ‘사고’ 당시 임수혁. 서울신문 | ||
그동안 임수혁은 많은 병원을 옮겨 다녔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직후 강남시립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았고 이후 서울아산병원, 경희대의료원, 강남시립병원 등을 거쳐 강남성심병원에서 2년 동안 입원해 있다가 지난해 5월30일 지금의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씨는 “장기 환자이고 별로 차도가 없다 보니 병원에서는 자꾸 나가라고 하더라”며 당시 서운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현재 임수혁은 어머니와 간병사가 돌보고 있는 상황이다. 임수혁의 아들과 딸은 부인 김영주씨와 함께 중국 청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며느리 김씨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동안 언론을 상대로 한 번도 속사정을 공개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는 “며느리가 자녀 교육문제로 중국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수혁이로부터 거의 도망친 거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임씨에 따르면 지난해 김씨가 중국행에 대해 의견을 구해와 절대불가 입장을 밝혔는데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아 수소문해 봤더니 몰래 중국으로 떠났다는 것. 임씨는 이 사실을 출국 후 두 달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임씨가 며느리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받은 보상비 등 7억여원을 모두 챙겨 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병비로 매달 2백만원이 넘게 들어가는데 그 돈을 보내주긴 하지만 내 형편을 뻔히 알고 있는 사람이 비상금도 남겨두지 않고 아이들만 데리고 비밀리에 출국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덧붙여 임씨는 “지난해 자선불고기행사로 7백만원의 성금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며느리가 이것 때문에 석 달 동안 간병비를 보내지도 않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임씨는 3년 전 마련한 수지 전셋집에 대해서는 현재 가압류 조치를 취해 놓은 상황이다. 임씨는 김씨가 간병비를 보내는 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소송 등의 조치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씨는 “(며느리가) 7월에는 한국으로 들어와서 살겠다고 하는데 가봐야 아는 게 아니겠느냐”면서 “지금이라도 들어오기만 한다면 모든 걸 용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임씨는 지난 97년 건설 회사를 운영하다 70억원의 부도를 맞아 가세가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생활비는 임씨 종중회 판공비와 1천여 평의 농사, 그리고 연금으로 겨우 연명해 나가고 있다. 임수혁이 쓰러진 이후 지난 5년 동안 야구장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임씨는 “지난주 LG전에 수혁이를 데리고 한 번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그냥 참았다”면서 “신문에서 롯데가 졌다는 소식을 접하면 상당히 속상하다”며 여전히 식지 않는 롯데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비록 경기장을 찾지는 않지만 임씨는 매일 스포츠신문을 통해 롯데의 성적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었다. 최근 20번을 달고 나온 최준석(롯데)에 대해서는 “임수혁이라는 이름을 팬들이 잊지 않게끔 더 잘하는 선수가 되어 달라”며 특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