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박근혜 대표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 박 대표의 쾌유를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21일 현재까지의 수사결과로 볼 때 그 가능성은 적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번 테러에 배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정계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단순 우발적인 범행이라 하더라도 지난 5월 10일 차기 대권에 출마할 뜻을 처음으로 시사한 박 대표의 ‘대망론’에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표가 이번 테러로 인해 오히려 지지층 결집과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 강화라는 부산물을 얻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그러나 부모(박정희·육영수)가 모두 총격으로 사망한데 이어 자신도 피습을 당함으로써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어떤 식이든 이번 테러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전투구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번 테러를 계기로 정부 여당에 대한 공격의 고삐를 더욱 죄어갈 것으로 보이며 지방선거 초반부터 열세에 몰린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부담감을 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박 대표 테러 사건은 코앞으로 다가온 5·31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박 대표 피습 소식을 접한 여야 정치권과 후보들은 휴일인 21일 선거 유세를 중단했고 한나라당 소속 일부 후보들은 이 사건의 배후와 전모가 밝혀질 때까지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박 대표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지 세력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크나큰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두 번의 대선 패배 이후 결집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 한나라당 지지층과 보수기득권층의 응집력이 이번 테러를 계기로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선거 전문가들은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두세 군데를 제외한 나머지 전 지역에서 우세를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의 완승 분위기가 이번 사건 이후 ‘동정표’가 몰리면서 더욱 굳혀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관측통들은 최근 표심이 움직이는 양상을 보이던 대전과 제주도 이번 테러를 계기로 한나라당 쪽으로 기우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지방선거는 그 판세가 이미 결정적으로 한나라당에 유리한 형세로 굳어져 있어 이번 사건이 큰 흐름을 바꿀 만한 변수는 아니다. 다만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이번 테러 사건의 처리 문제가 내년 대선까지 두고두고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엄청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의문점에 검찰과 경찰이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때 이는 고스란히 열린우리당의 부담으로 넘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번 테러 사건이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될 한나라당 당권 경쟁 및 차기 대선구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박 대표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과 놀라움은 크겠지만 박 대표의 대중적 인기도와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상징성은 이번 사건으로 더욱 부각될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박 대표가 입원한 병원에 청와대와 여야 지도부, 김영삼 전 대통령, 한나라당 대권주자 및 광역단체장 후보 등 유력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에서 보듯 당분간 정치권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정치 테러 대상자는 그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았고 테러에 노출된 유명 정치인들은 향후 정치적 위상과 상징성이 더욱 부각되기도 했다.
따라서 20일 자행된 박 대표에 대한 테러는 15여 년 만에 발생한 정치테러라는 점에서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대표가 제1 야당 대표이자 대권도전을 시사한 유력한 차기주자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번 지방선거는 물론 향후 정국주도권 싸움 및 차기 대선구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테러 피해자인 박 대표가 이번 테러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박 대표가 이번 테러를 딛고 거물 정치인으로 거듭날 경우 그의 대중적 인기도를 바탕으로 한 차기 주자로서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야당 생활 동안 숱한 테러와 정치탄압을 극복하고 대권을 거머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이번 테러 사건이 박 대표의 대권가도에 오히려 청신호가 될 것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부모를 모두 총격으로 잃었던 박 대표가 이번 테러로 인해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었을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와 관련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시적인 우울증이나 쇼크에 빠질 수도 있으나 더 큰 사건 사고도 경험한 만큼 금방 극복할 것”이라며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박 대표는 대권주자로서 위상을 확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박 대표의 높은 대중적 인기는 그가 핍박을 당할 때 얻는 동조 심리”라며 “이번 사건도 박 대표 지지층의 보호 본능을 자극해 그의 인지도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와 함께 대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측도 이번 사건이 향후 전개될 당권 경쟁 및 대권구도에 적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정치적 셈법에 분주한 모습이다. 박 대표가 이번 테러 사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대권 입지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이번 테러가 여당과 관련이 없는 순전히 우발적인 범행이라 하더라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미진한 대목이 남을 경우 이번 선거는 물론 향후 대선에서도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지뢰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