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정동영, 이해찬, 이명박, 손학규, 고건.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 ||
한나라당에서도 대권 레이스를 펼칠 주자들이 서서히 출발선으로 모여들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16일쯤 대표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날 예정이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도 6월 말에 자연인으로 돌아온다. 한마디로 계급장 떼고 맞장을 뜨게 된 셈이다. 한나라당은 7월 전당대회에서 대권 경쟁을 관리할 새 지도부를 구성한다.
여기에 ‘영원한 대권주자’ 고건 전 총리마저 신당 창당 가능성을 거론하며 본격 행보에 나서 이른바 ‘용쟁호투’가 벌어지는 듯한 형국이다.
‘용꿈’을 꾸려는 주자라면 일단 자신의 지지도를 경쟁자와 차별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유권자가 한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지도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과 지지기반을 공유하는 경쟁자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효과적인 공격을 위해서는 상대와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주자들마다 지지층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를 잘못 선정하면 싸움에서 이겨도 ‘전리품’은 남의 몫이 될 수 있다.
본격적인 대권주자 경쟁은 ‘대표선수’의 윤곽이 뚜렷한 한나라당에서 먼저 시작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와 함께 ‘빅3’를 형성하고 있는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초까지만 해도 이 시장이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나 ‘황제 테니스’ 논란과 ‘피습 사건’ 이후 박 대표가 전세를 뒤집은 상황이다.
MBC·코리아리서치센터(KRC)가 지난 5월 22일 실시한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박 대표(21.5%)는 이 시장(18.1%)을 3.4%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CBS·리얼미터가 같은 달 30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박 대표(28.1%)는 이 시장(18.6%)을 크게 앞섰다. 반면 <문화일보>·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5월 24일 조사에서는 이 시장(24.7%)이 박 대표(18.3%)를 여전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와 이 시장은 기본적으로 한나라당 지지표를 양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가 ‘주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 시장(38.2%)과 박 대표(31.5%)에게 표를 골고루 나눠준 반면 고건 전 총리(11.3%)에게는 크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 박 대표와 이 시장 중 한 사람이 무너지면 남은 주자가 한나라당 지지표를 대부분 흡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지지기반은 상당히 상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박 대표 지지층이 영남을 중심으로 저학력·저소득·저연령·생산직으로 구성된 반면 이 시장 지지층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학력·고소득·고연령·사무직이 주축을 이룬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지지층 구조를 놓고 보면 이 시장의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의 지지기반이 이처럼 다르다는 사실은 제3의 후보로 거론되는 손학규 지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지층의 성격을 보면 손 지사는 이 시장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향후 여당이 이 시장에게 상처를 입힐 경우 손 지사가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반 여론조사에서 손 지사의 지지도는 3%를 밑돈다. 하지만 <미디어오늘>이 5월 중순 국회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손 지사는 24.6%로 선두를 차지했다. 여론주도층이 그의 자질과 가능성을 인정한 셈이다.
열린우리당에서 대권 후보들의 ‘먹이사슬’은 한나라당에 비해 좀 더 복잡한 구조를 띤다. 우선 뚜렷한 주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다. 당내에서 선두를 달리는 정동영 전 의장의 지지율은 3~5% 수준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 후보들만 놓고 보면 단연 앞선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24일 조사에서 정 전 의장(28.8%)은 이해찬 전 총리(8.2%), 김근태 최고위원(7.9%),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5.9%)을 크게 앞질렀다. 천정배 법무장관은 1.7%에 불과해 여전히 대선주자군에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정 전 의장은 지지율을 한나라당 주자나 고 전 총리 수준으로 높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건 전 총리를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다. 정 전 의장이 비빌 수 있는 언덕은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호남세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들은 모두 고 전 총리를 더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정 전 의장(13.4%)보다는 고 전 총리(35.5%)를 선호하고 호남 민심도 정 전 의장(10.3%)보다는 고 전 총리(55.7%)에게 쏠려 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정 전 의장의 지지도는 4.8%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7.0%)보다 낮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 전 의장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잠룡으로 꼽히는 김근태 최고위원,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장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개혁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래서 개혁지향층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연령·지역별 지지기반에선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김 최고위원의 지지기반은 30대 후반과 40대의 사무직 종사자에 걸쳐 있는 반면 이 전 총리와 유 장관의 지지층은 20대 학생층과 30대 초반 사무직이 주를 이룬다. 지지층에 관한 한 이 전 총리와 유 장관이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선두를 달리는 정동영 전 의장이 무너질 경우 호남의 지역 기반은 이 전 총리에게 옮겨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전 총리는 충청·호남 지역에서 김 최고위원이나 유 장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 밖으로 눈길을 돌리면 정 전 의장이 ‘추락’할 경우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볼 수 있는 주자는 바로 지연과 지지 기반이 상당 부분 겹치는 고건 전 총리가 될 것이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