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낙천된 의원 26명 중 비박계는 20명이다. 그나마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 의원들은 ‘막말’ 파문의 윤상현 의원을 제외하곤 핵심 친박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사들이다. 비박계엔 친이, 친유승민, 탈박(탈박근혜) 등 다양한 의원들이 분포돼 있다. 대부분 친박과 악연이 있거나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의원들이다.
이로 인해 친박은 20대 국회에선 비박과의 머릿수싸움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19대 국회 때 국회의장 경선, 당 대표 및 원내대표 경선 등에서 번번이 비박에 밀렸던 ‘학습효과’가 공천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군다나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 출마가 유력한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관측엔 더욱 무게가 실린다.
내용을 따져 봐도 ‘친박’의 완승이라는 평이다. 친박은 지난해부터 비박과 마찰을 빚으며 밀어붙인 전략공천, TK(대구·경북) 물갈이 등을 거의 공천에 반영했다. 우선 전략공천의 경우 108곳(단수추천 96, 우선추천 12곳)이 단행됐는데, 이는 19대 공천의 47곳보다도 2배 이상 많은 수다. 친박계가 ‘진박 마케팅’을 펼치며 가장 공을 들인 TK 물갈이 역시 현실화됐다. 대구 지역에서만 현역 12명 가운데 8명(불출마 2명 포함)이 교체됐다. 이 중 권은희 김희국 의원 등은 친유승민계로 분류된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시퍼런 칼날을 휘두를 때 비박계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김무성 대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정치적 생명’을 걸고 추진하겠다던 상향식 공천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면서 김 대표 위상은 떨어졌다. 일각에선 김무성 대표가 측근 의원들 공천을 주기 위해 친박 핵심부와 이면계약을 했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이처럼 친박은 김 대표 등 비박계 지도부 발을 묶는 한편, 물밑에서 그려 온 총선전략을 달성해냈다. 그 선봉은 이한구 위원장이 맡았다. 이 위원장은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의 거센 반발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천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물론 이 위원장은 여러 차례 “친박도 비박도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오히려 이 위원장과 친박 핵심부 간 ‘핫라인’이 가동됐을 것이란 얘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핵심 친박 윤상현 의원이 컷오프된 것을 ‘박심(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작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윤상현이 누구냐.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누나’라고 한다는 실세 중 실세다. 그런데 그 누가 윤 의원 거취를 정할 수 있단 말이냐. 박 대통령뿐이다. 친박계에서 먼저 윤 의원 컷오프 얘기가 나온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아마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공산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친박 진영에선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으로 점쳐지는 윤 의원 지역구에 공천을 하지 말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독불장군’으로 불리는 이한구 의원이 공관위원장으로 발탁될 때부터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한 친박 의원은 기자와 만나 “공천 시나리오는 이미 마련된 상태였다. (박 대통령은) 과연 누가 이것을 실행해낼 수 있느냐를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 이 위원장이 낙점되긴 했지만 다른 사람이 됐더라도 지금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친박 핵심부 구상대로 (공천은) 흘러가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위원장을 임명하기 전에 이 부분에 대한 확답을 받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복수의 친박 관계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이 위원장과 청와대 간 긴밀한 라인엔 극히 소수만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 친박계 핵심 의원, 박 대통령 자문그룹 원로 인사가 그 장본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원로 인사는 이 위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쪽에서 박 대통령 ‘오더’를 받아 친박계 핵심 의원과 원로 인사에게 알리면 이를 다시 이 위원장과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이른바 공천 TF팀이 은밀히 움직였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의 한 원로급 인사는 “청와대에서 공천 얘기는 금기어다. 쓸데없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박 대통령도 언급을 안 한다. 그렇다고 모른 체할 수는 없지 않느냐. 박 대통령 의중을 잘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고 친박 의원들과 대화가 원활한 청와대 관계자가 이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공천 루트의 연결고리가 됐다고 한다. 이 위원장도 여러 번 그와 통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주요 사안은 청와대에서 가장 먼저 결정됐고, 그 다음 친박 핵심 인사들과 이한구 순으로 전달됐다”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