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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국회사진기자단(왼쪽), 노무현 대통령.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선거 참패에 대한 원인 진단과 책임론을 둘러싸고 당·청 간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고 지도부 재편 문제도 계파간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표류하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당 해체론’을 주장하고 있고 당 안팎에서는 정계개편과 관련한 갖가지 시나리오만 무성히 나돌고 있다.
5·31 후폭풍으로 이미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향후 어떤 식으로든 중대 변화를 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 과정에서 살아 있는 권력인 노 대통령과 차기 권력을 넘보는 DY 간의 물밑 권력암투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두 주역이 나눌 수 없는 속성의 권력을 놓고 본격적인 ‘이별 전쟁’을 벌이게 된 형국이다.
노 대통령과 DY는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자 긴밀한 상호 협력 관계로 맺어진 정치적 동지였다.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끝까지 완주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경선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이 잇달아 사퇴하며 자칫 흥행 실패로 이어질 수 있었던 민주당 경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노 대통령의 승리가 빛날 수 있었던 것도 DY의 ‘아름다운 완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DY는 또 대선 본선 때는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노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DY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감의 표시였던 걸까. 대선 직전 명동 거리 유세 당시 노무현 후보는 DY를 ‘차기 대권주자’로 치켜세웠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정몽준 의원의 ‘노무현 지지철회’를 유발하는 단초가 돼 위기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의원의 막판 지지철회는 친노세력을 결집시켜 노 대통령 당선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다보스포럼 및 주변 국가에 DY를 보내 자신의 메시지를 대신 전달토록 하는 등 DY에 대한 믿음과 신뢰감을 보였다. 또 청와대 및 내각 인선 과정에서도 DY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해 여권 내에서 차기 대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DY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DY가 초대 의장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대권 입지를 확대해 나가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서로 나눌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이 서서히 두 사람의 우호적 관계를 견제 대상으로 변질시킨 것. 물론 칼자루를 쥔, 살아 있는 권력(노 대통령)에 차기를 넘보는 DY가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었다.
노 대통령도 당시 분당과 창당 과정을 거치면서 ‘여소야대’로 전락한 정국을 반전시키고 지지율를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DY의 인맥과 대중적 인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DY는 노 대통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04년 4·15 총선을 진두지휘하며 열린우리당을 원내 1당(152석)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물론 당시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는 ‘노 대통령 탄핵’ 정국이 동력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DY의 대중적 인기도 총선 결과에 반영됐다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4·15 총선 이후 DY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탄탄해졌고 여권 내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노 대통령과 친노 직계 세력들이 DY를 집중 견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너무 ‘급성장’한 DY를 그대로 방치했다간 레임덕 조기화는 물론 차기 후보도 호남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영남권 친노세력을 자극했던 것.
노 대통령이 2004년 7월 DY와 당내 대권 경쟁자인 김근태(GT) 최고위원을 동시에 입각시킨 이면에는 DY를 견제·관리하고자 하는 포석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DY가 통일부 장관으로 외연을 확대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남북문제를 총괄하는 수장이 된 DY는 한반도 최대 현안인 남북문제를 자신의 대권 전략과 연계시키는 듯한 모양새를 취해 반대 세력들에게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DY는 장관 재임시절인 지난해 6월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는 등 차기 주자로서 비교적 탄탄한 대권행보를 이어갔다.
반면 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일부 친노세력들은 이러한 거침없는 DY의 대권행보를 그냥 ‘묵과’해서는 안 될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였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DY와 GT의 ‘당 복귀’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일부 친노 인사는 힘든 게임이 될 것으로 예상되던 5·31 지방선거의 짐을 DY에게 떠안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DY계 인사들은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이른바 ‘정동영 죽이기’ 플랜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로 여권의 지지율 하락세가 지속되자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대연정’ 카드를 다시 꺼내 들어 정국을 뒤흔들었고 이러한 혼란은 두 잠룡의 ‘복귀론’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측에서 당 복귀 기류를 감지한 GT 측은 이를 수용할 반응을 보인 반면 일부 친노세력의 ‘의도’를 의심한 DY 측은 5·31 이후로 복귀를 늦추려고 했다.
하지만 10·26 재보선 참패로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한 당을 외면하기에는 DY가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감이 너무 컸다. 결국 두 잠룡은 청와대의 의도대로 지난해 말 당으로 복귀했고 DY는 2·18 전당대회 때 당 의장 재선에 성공했다.
다시 당권을 장악한 DY는 노 대통령과 보이지 않은 힘겨루기를 지속했다. 창당 초 청와대와 당을 이끌며 상호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던 두 사람의 ‘우호적 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었다. 1·2 개각을 전후해 DY계는 유시민 의원의 입각을 내놓고 비판했고 골프 파문에 휩싸인 이해찬 전 총리의 거취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DY는 노 대통령의 복심과는 달리 ‘사퇴 불가피론’을 펼쳤다. 이후 한명숙 총리 내정 과정에서도 DY는 자신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간접적으로 과시해 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은 결국 5·31을 전후해 폭발했다. 선거를 10여 일 앞두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이 터지면서 전패 위기에 몰리자 친노세력의 대표주자인 김두관 최고위원은 ‘선거 전 DY 사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친노파인 조경태 의원 등은 선거 직후 ‘당 해체’라는 극약처방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내 최대 계파인 DY계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였던 셈이다.
결국 DY는 지난 1일 당 의장 사퇴와 함께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원외인 DY가 의장직을 던지는 것은 당권은 물론 향후 대권가도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DY는 선거에 반영된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DY가 ‘대망론’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억눌렀던 정치적 채무와 버거운 짐을 훌훌 털어 버리고 새 출발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과거 정권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권의 지지율이 낮을 경우 후계자들은 하나같이 전임자인 현직 대통령을 밟고 일어섰다. 92년 김영삼 후보는 노태우 대통령을, 97년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을, 2002년 노무현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과 각각 맞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는 동시에 지지율 반전에 성공했다.
과거 사례는 전임자의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던 반면 노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도 1년 7개월가량 남아 있는 상태다. DY가 당내에서 노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 권력 싸움을 벌이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시기상조론’이 대세다. 하지만 DY의 당 의장 사퇴와 백의종군 선언은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전제로 한 결단이라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와 관련해 DY계의 한 측근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지난해 당 복귀론과 맞물려 친노세력의 ‘정동영 죽이기’ 플랜을 어느 정도 감지했지만 DY의 정면돌파 의지가 강했다”며 “DY가 당 복귀 및 의장 출마를 5·31 책임론까지 감안하고 결심한 만큼 그 대안도 마련해 놨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이번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노 대통령과 DY의 이별 전쟁은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DY계는 “선거 참패의 가장 큰 요인은 참여정부의 개혁정책 실패에 따른 지지층 이탈 현상과 노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때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왜 DY만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울분을 삼키고 있다. DY의 사퇴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 결코 대권을 포기했거나 친노세력의 의도에 휘말린 게 아니라는 논리다.
따라서 DY계는 당 수습 추이를 지켜보면서 향후 정계개편이 본격화될 경우 주도권 및 핵심 키워드를 쥐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여권 분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민주대통합론’을 명분으로 중도개혁세력을 DY 중심으로 결집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고건 전 총리 등 제 세력과의 전략적 연대도 불사한다는 전략이다.
DY는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며 건강을 추스르는 데 전념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권가도가 그리 녹록지 않은 현 상황을 감안해 조만간 ‘대망론’을 전면 재수정하는 미래 구상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개발과 정치지도자로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해외 선진국 순회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선을 통해 본격적인 대권경쟁에 뛰어들 것이란 분석도 무게를 얻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과 DY의 결별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서로 엇갈리는 차기 구도에서 찾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악의 경우 차기 대선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역주의를 허문 정권으로 남는 길을 택하려 하기 때문에 비호남권, 특히 ‘영남권 주자’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 반면 DY는 이번 지방선거 등 몇 차례 선거를 통해 호남의 재결집 없이는 대선 승리도 없다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에 노 대통령과는 갈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개혁정책에 방점을 찍기 위해 끝까지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과 여당의 대주주로서 부활을 꿈꾸고 있는 DY의 ‘이별 전쟁’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 향후 정계개편 움직임과 맞물려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