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왼쪽) 이임식에 참석한 이명박 시장(오른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렇게 되면 대권주자들도 영남 공략에 더 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반면 한나라당은 역사적인 이유로 호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아왔기 때문에 ‘호남 배제’ 아니면 ‘호남 무시’ 전략을 펴왔다. 그런데 지난 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런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등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은 ‘시간만 나면’ 호남으로 달려간다. 모기 소리만 한 박수를 받을 줄 알면서도 그들은 줄기차게 ‘Go West’(서쪽으로!)를 외치고 있다. 왜 그럴까. 박-이의 호남 쟁투사를 들여다봤다.
17대 국회 들어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등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들은 그동안의 호남 포기 전략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호남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다. 왜 그들은 ‘변심’했을까.
먼저 한나라당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호남 포기 전략을 선택했던 것이 전략적 실수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물론 호남의 표가 대선 승부의 결정적 변수가 되진 못한다. 하지만 호남의 민심이 수도권의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호남의 지지율 상승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과 충청권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였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최근의 호남 민심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10.4%라는 ‘경이적인’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 ‘서진(西進) 정책’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두 자릿수의 지지율까지 오르게 된 것은 박 전 대표와 이명박 시장의 끊임없는 ‘호남 다가서기 전략’이 서서히 효과를 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 주자의 호남 끌어안기는 그동안 어떻게 전개돼 왔을까. 먼저 박 전 대표의 경우를 보자.
박 전 대표는 지난 2004년 7월 대표 취임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해 “아버지 시절에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밝힌 뒤 본격적인 호남 다가서기 행보를 시작했다. 박 전 대표는 대표로 선출된 이후 첫 지방 방문 일정을 광주 5·18묘역 참배로 잡았다.
그는 또한 지난 2005년 3월 미국 방문 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조언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DJ 측은 북·미 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론을 전했고 박 전 대표도 그 조언을 충실히 따르며 미국 정치인들을 만났던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대표는 귀국 직후인 그 해 3월 29일에는 ‘민생투어’를 대외적 명분으로 DJ의 고향인 광주와 신안군을 찾았다. 당초 신안군 하의도까지 직접 들어가 DJ 생가를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주변의 만류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신 하의도를 찾았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또 비슷한 시기에 DJ 측에 메신저를 보내 “선친께서 생전에 선생님께 많은 고초를 안겨드렸음에도 선생님께서 집권 후 ‘박정희 기념관’을 짓기로 해주신 데 대해 (비록 노무현 정권 때문에 실현은 안 됐으나) 저를 비롯한 저희 남매들은 더없이 감사하고 있다”는 뜻도 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 차기 대선에 대한 DJ의 생각도 은연중 타진했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의 호남 다가서기는 올해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5·31 지방선거의 첫 유세지역도 광주였다. 박 전 대표는 2년 3개월간 대표로 재직하면서 호남을 16차례나 방문했다. 같은 기간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영남을 17차례 방문한 것과 비슷한 수치다. 그만큼 호남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는 왜 이토록 호남에 뜨거운 사랑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까.
정치권에선 그 대답을 정계개편의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한나라당 K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벌써 오래 전부터 영남의 박 전 대표와 호남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서 횡축연합’을 이룰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것은 ‘호남 지지율 제고’라는 정치적 전략 외에 동서화합, 그리고 개발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진정한 화해라는 확실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호남 민심의 변화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동교동계의 한 전직 의원은 “호남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사라진 게 사실이다. 만약 DJ가 박 전 대표와의 연대를 발표한다면 호남 민심은 노무현 대통령을 받아들인 것처럼 박 전 대표를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 호남 보수층들의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도 박 전 대표를 긍정적으로 보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전남도청 개청식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오른쪽)와 이명박 시장(왼쪽). | ||
이 시장 측은 “공식·비공식적 행사를 합쳐 올해 들어서만 열 차례 이상 호남 지역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이 시장은 그동안 호남의 기독교 신도들과 대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강연정치’를 계속했다. 이 시장은 퇴임 뒤에도 ‘호남 우선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그의 퇴임 후 첫 공식 행사는 호남 지역에서의 농촌 봉사활동이 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다. “7월 초께 전남 지역의 농촌을 방문해 하루나 이틀간 대학생들과 어울려 봉사활동을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서울시장의 호남 구애는 박 전 대표의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선거전문가인 ‘민기획’ 박성민 대표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영남이라는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기 때문에 서진정책이 시너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의 경우 영남 출신이긴 하지만 확실한 지지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다. 지역구도 서울 종로였고 행정수도이전 문제 등에서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했기 때문에 영남 주자라는 이미지가 박 전 대표에 비해 약하다. 그래서 영남에서 확실한 기반을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설프게 호남 공략까지 나설 경우 ‘집토끼’마저도 놓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장은 박 전 대표보다 적극적으로 호남 다가서기 전략을 펼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성민 대표는 “그런데 최근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호남의 젊은 층 사이에서 정동영 김근태 두 여권 주자의 인기 하락과 함께 이명박 시장을 그 대안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장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지 못할 경우 호남 민심이 ‘노무현과도 손을 잡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이 시장을 여권 주자로서 받아들일 가능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박 전 대표와 이 시장의 이 같은 ‘호남 쟁투’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지지율을 통해 간접 비교해보는 것도 ‘해답’에 다가가는 한 방법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1%대에 머물렀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경에는 4%대까지 올라섰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박 전 대표가 조금 우세한 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이 시장은 6% 미만이고 박 전 대표는 6~10%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서진 전략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그동안 한나라당에 보여온 것과 같은 적대적인 반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에 대해서는 “호남과의 스킨십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고 행정수도 문제 등에 서도 지방 우선이 아니라 수도권 중심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아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6월 3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주자의 호남 지지율은 앞서의 결과와 사뭇 다르다. 고건 전 총리가 65.4%, 이명박 시장 6.9%, 박근혜 전 대표 1.7%로 나타난 것이다. 호남 지역에 연고가 있는 고 전 총리에 이어 이 시장이 2위를 기록했던 것. 한나라당 박 전 대표의 네 배나 된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12월 조사 때만 해도 이 시장의 지지율은 박 대표에 비해 낮았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중앙일보>는 “테러 사건과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압승 등 박 대표에게 유리한 환경에서도 이 시장이 호남에선 꽤 선전했다”고 평가했다. 이 시장 측도 “영남(포항) 출신의 이 시장이 호남에 쏟아 부은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조사 결과만 가지고 이 시장이 박 전 대표를 크게 앞서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조사를 했던 한국갤럽의 한 관계자는 “보통 전국 여론조사의 샘플은 1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한다. 그 가운데 호남은 100샘플 정도 된다. 호남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한다. 그런데 100샘플의 표본오차는 플러스마이너스 10% 정도 된다. 샘플 수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이 시장이 박 전 대표를 5%가량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은 오차범위 내의 수치이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다. 그것만으로 이 시장이 박 전 대표보다 호남 지지율이 높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체로 박 전 대표나 이 시장의 호남 지지율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건 전 총리의 압도적 지지율에 비해 ‘오십보 백보’이기 때문에 데이터로서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호남 지지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더욱이 지금의 지지율이 대선에서 그대로 표로 연결될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한다. 견고한 호남 지역 정서를 바꾸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박-이’의 호남 공략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두 주자가 한나라당의 대선 필승 전략 중에서 ‘부족한 2%’를 호남에서 ‘꼭’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표’보다 더 중요한 ‘동서화합’이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