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국, 파푸아뉴기니 등지에서 커피 관련 자료를 모으며 약 5년간 준비해 집필한 팩트 소설!
“커피는 단순한 기호음료가 아니다. 커피콩 하나하나에는 가난한 원주민들의 삶과 고뇌, 전통과 문화가 눈물처럼 배어 있다. 그리고 배에 실려 세계를 여행하는 커피콩의 운명과 여정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리는 이러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 잔의 커피에 서려 있는 깊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장편소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의 집필을 준비하는 동안 직접 방문한 일본 고베의 커피 박물관에 실제로 적혀 있는 글귀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저자는 “5년 전 파푸아뉴기니의 산속에 있는 커피농장에서 비로소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고뇌를 알 수 있었다. 한 잔의 커피에 담긴 깊은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커피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서 이 소설을 썼다. 커피를 알기 위해 현지 농장도 가고 원주민들과 손짓 발짓을 하면서 커피콩을 따본 적이 있다. 바리스타나 로스터가 아니지만 그들과 생두를 볶아보고 머리를 맞대고 커피를 내려보기도 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특히 저자는 일본에서 ‘음식 값보다 커피 값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 비용 출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세세한 정보가 녹아 있는 부분이 제2장 ‘일본의 카페 순례’와 제4장 ‘커피 칸타타’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커피숍부터 최근 오픈한 ‘블루보틀’ 매장, 숙성 커피 전문점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독특한 카페들이 책 곳곳에 흥미롭게 등장한다.
저자 장상인은 르포형 칼럼을 개척한 칼럼니스트로서 커피에 대한 사실적 정보 전달에 충실하면서도, 2009년 단편 《귀천》으로 문학저널에 등단한 작가로서 탄탄한 플롯과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구상해냈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빠져들어 빠르게 책장을 넘기는 동안, 커피의 역사와 가공 과정, 종류 등 커피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저절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묘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의 생생한 대화를 통해 전달되는 ‘커피 상식’
커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삐딱한 사랑과 성장의 스토리
‘강리나.’ 그녀는 매혹적인 눈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의 눈에는 산사 같은 고요와 폭풍 같은 분노가 블렌딩되어 있다. 그녀는 이란성 쌍둥이며 나이는 37세이다. 유명 여자대학을 중퇴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리나는 남자친구와 사랑의 불장난을 하다가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대학을 중퇴했다는 것이다. …그녀도 세월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이제 마흔 살을 목전에 두고 있는 여인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외모와는 딴 판으로 강철보다 강한 여성으로 변질되었다. 살면서 겪어야 했던 모진 세파가 그녀를 그토록 강하게 담금질하였기 때문이다. 소녀 시절에는 실개천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처럼 도란도란 했건만.(프롤로그 중에서)
남다른 우여곡절을 겪었고 15년 이상 미국에서 살다 한국에 정착할 계획인 강리나. 그녀는 그저 커피를 좋아할 따름이라고 말하지만, 커피에 대한 지식이 가히 전문가 급이다. 그런 그녀는 쌍둥이 남동생의 후배이자 커피 수입업자인 원배와 커피숍을 차리기로 한다. 여기에 원배의 후배이며 바리스타인 김지훈이 가세한다. 리나, 원배, 지훈은 여러 준비 과정을 거쳐 커피숍 ‘천사와 악마 1호점’을 오픈한다. 그 사이 지훈은 6살 연상인 리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이 감정은 집착에 가까운 비뚤어진 형태로 표출되고 결국 그들 사이의 분열을 야기한다.
한편, 리나의 눈과 입을 통해 전달되는 파푸아뉴기니의 커피농장과 커피체리에서 생두까지의 가공 과정, 커피가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노동자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눈길을 끄는 흥미 요소다. 또한 일본의 커피 박물관, 독특한 카페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커피숍 등에 대한 소개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커피 한 잔이 절로 떠오르는 음악과 문학의 절묘한 블렌딩!
소설 속 주인공들의 첫 만남은 ‘브람스’라는 카페에서 시작된다. ‘한 개의 음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던 꼼꼼한 음악가 브람스.’ 마치 강리나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듯하다. 이 외에도 베토벤의 ‘합창’, 비발디의 ‘사계’,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등 클래식은 물론 마이 웨이, 러브 스토리, 커피 룸바, 바흐의 오페라 ‘커피 칸타타’,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등 다양한 음악이 소설 곳곳에서 잔잔히 흐른다.
또한 세네카의 《인생론》, 단테의 《신곡》,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등 고전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의 초상》, 딘 사이컨의 《자바 트레커》, 로이드 존스의 《미스터 핍》 등 여러 책들도 줄줄이 등장해, 주인공들의 감정과 생각을 보다 더 풍성하게 전달해준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음악과 책들을 음미하다 보면 문득 은은한 커피 향이 느껴지고 절로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진다.
이진수 기자 brownstoc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