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가 볼티모어 오리올스 입단을 확정짓고 한국을 떠나면서 한 말이다. 스프링캠프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해피 모드였던 김현수가 시범경기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볼티모어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볼티모어 댄 듀켓 단장과 벅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에게 마이너리그행을 제안했지만 김현수는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메이저리그에서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자는 지난 시즌까지 볼티모어 수석 국제 스카우트로 활약했던 레이 포이트빈트 씨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볼티모어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4월 1일, 김현수의 국내 에이전시 리코스포츠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한다고 밝히면서 “김현수는 기존 계약이 성실하게 이행되고 공정하게 출전 기회를 보장받아 볼티모어 구단에서 메이저리거로서 선수 생활을 원만하게 이어갈 수 있길 바라고 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이는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한 공식 답변이다. 그동안 김현수는 구단으로부터 마이너리그행에 대한 압박을 받아왔지만 볼티모어와의 계약상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고 있던 그는 구단의 움직임에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러나 볼티모어 댄 듀켓 단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여전히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을 재촉했다. 김현수의 공식 입장이 나온 1일 <볼티모어선>과의 인터뷰에서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 준비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단이 그에게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준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는 상황을 설명했다. 구단의 입장을 충실히 따르는 벅 쇼월터 감독도 김현수와 세 번째 미팅을 갖고 정규시즌 25인 로스터에 올릴 수 없다며 김현수가 마음을 바꿔주길 설득했지만 김현수는 그 자리에서 “마이너리그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수는 벅 쇼월터 감독의 마이너리그행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메이저리그에서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3월 초만 해도 벅 쇼월터 감독은 시범경기가 시작된 후 3경기 연속 무안타로 침묵했던 김현수를 제대로 감쌌다. “5월이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말로 김현수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기도 했다. 더욱이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 맞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얘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김현수는 현재 미국에서의 삶과 빅리그의 페이스에 맞춰가는 중이다”며 “5월 중순 정도는 돼야 그에 대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김현수는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고 믿음을 보였다. 이어 “김현수는 현재 트리플A에서 빅리그에 막 승격된 상황과 같다. KBO리그를 트리플A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환경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뛰어난 투수를 계속해서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다”고 말했다. 댄 듀켓 단장도 마찬가지의 입장이었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처음 경험하는 김현수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주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토록 호의적이었던 구단의 태도가 갑자기 뒤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김현수가 보인 시범경기에서의 성적이다. 첫 7경기에서 21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김현수는 이후 7경기에서 19타수 8안타(0.421)를 기록했다. 그러다 이후 두 경기 4타수 무안타에 그치자,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4월 1일 현재, 김현수는 44타수 8안타로 타율 0.182를 기록 중이다. 8안타 중에서도 장타는 한 개도 없었다.
쇼월터 감독은 최근 볼티모어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현수의 거취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할 말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없다. 단, 조이 리카드가 개막전 좌익수다”며 김현수를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제외시킬 뜻을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선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다. 듀켓 단장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떠넘겼다.
김현수 대신 볼티모어의 좌익수를 맡게 될 조이 리카드는 2012년 탬파베이 레이스 입단 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됐다. 지난해까지 탬파베이 트리플A에서 활약했던 리카드는 2015 시즌이 끝난 뒤 룰 파이브 드래프트를 통해 볼티모어로 이적했고, 올 시즌 초청 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합류해선 시범경기 기간 동안 타율 0.390(59타수 23안타), 1홈런 7타점 15득점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기자는 볼티모어 구단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고, 최근까지 볼티모어 스카우트로 활약했던 레이 포이트빈트(Ray Poitevint) 씨와 전화 통화를 하며 김현수 사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레이 포이트빈트 씨는 2014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로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레전드 인 스카우트 어워드’에서 최고의 스카우트에게 주는 상을 수상한 인물로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지역의 유망주들을 스카우트한 인물로 유명하다.
LA 에인절스, 밀워키 브루어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에서 60년간 스카우트로 활약하며 박철순의 밀워키행부터 조진호, 이상훈, 송승준, 김선우, 김병현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지난해 은퇴해선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생활하는 그는 뉴스 등을 통해 김현수에 대한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레이 포이트빈트 씨는 볼티모어 구단이 잘못된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댄 듀켓 단장은 국제 스카우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구단 관계자들 중에 스카우트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볼티모어 국제 스카우트 부서에는 그럴 만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볼티모어는 현재 김현수란 선수를 700만 달러를 주고 영입한 데 대해 크게 후회할 것이다. 구단주는 700만 달러를 투자했기 때문에 그만한 이익을 뽑아내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낼 경우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이 포이트빈트 씨는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김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마이너리그를 평정할 만큼 최고의 타자가 되지 않는 한 웬만해선 그를 빅리그로 부르지 않을 수 있다. 설령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 해도 그가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었느냐, 아니냐가 메이저리그로 돌아오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올 시즌 전체를 마이너리그에서 보낸다면 내년 시즌도 마이너리그에서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팀에선 선수의 성적과 자신감 회복을 위해 마이너리그에서 준비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 볼티모어가 일하는 방식은 굉장히 잘못된 부분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볼티모어 구단의 태도에 강도 높게 비판했다. 추신수는 다른 메이저리그 팀들은 볼티모어처럼 비신사적으로 선수 문제를 처리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시범경기에서의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파기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에서 적응해야 하는 선수에게 볼티모어 구단이 보인 태도에 화가 날 정도다. 김현수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현수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걸 반대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어야 한다. 다른 팀도 아닌 볼티모어라면 특히 더 그렇다.”
추신수는 볼티모어와 좋지 않은 감정으로 헤어진 KIA 타이거즈 윤석민을 거론했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걸 석민이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석민이를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낼 때, 볼티모어 구단에선 몸을 잘 만들고 있으면 메이저리그로 부르겠다고 말했지만 볼티모어를 떠나기 전까지 그는 단 한 차례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구단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남기를 바란 추신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마이너리그로 향하면 순수한 실력으로 빅리그로 올라가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 사라소타의 볼티모어 캠프에서 김현수를 직접 만난 ‘뉴스엔’ 조미예 기자는 김현수가 이전과 달리 표정의 변화 없이 팀 훈련만 소화했다고 전했다. “캠프가 시작할 때만 해도 김현수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팀 분위기도 그렇고, 선수도 180도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특히 벅 쇼월터 감독은 훈련할 때나 시범경기 중에도 김현수를 철저히 외면했다. 3월 31일 경기 때는 아예 라인업 후보군에도 김현수의 이름을 빼놨더라. 김현수는 인터뷰 요청에도 자신은 할 말이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지켜보는 기자도 힘든데, 선수 입장에선 얼마나 이런 상황이 괴로울까 싶다. 아무쪼록 김현수 거취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벅 쇼월터 감독은 4월 5일(한국시간)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개막전 이전에 김현수 문제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윤석민도 정대현도…볼티모어는 한국선수들 무덤? 김현수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다고 알려졌을 때 기자는 순간 ‘볼티모어’란 팀 이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과 1년 전 윤석민이 플로리다 캠프에 갔다가 자신이 메이저리그 캠프가 아닌 마이너리그 캠프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고 짐을 싸들고 귀국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볼티모어는 그동안 한국인 선수들과 좋지 않은 관계를 형성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정대현(롯데)이다. 2011년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정대현은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볼티모어와 2년 총액 320만 달러(약 37억 원)에 합의했다. 그리고 볼티모어로 건너가 메디컬테스트를 받았지만 간 수치가 다소 높게 나왔다면서 계약을 무효화시켰다. 2012년에는 당시 대구 상원고 2학년이었던 김성민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지만 졸업년도 선수만이 국내외 프로구단과 접촉할 수 있다는 규정을 어기면서 입단이 무산됐었다. 이에 대해 당시 볼티모어 스카우트로 활약했던 레이 포이트빈트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성민의 경우엔 당시 17세였고,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뛰기에는 부족했지만 미래가 아주 밝았다. 그와 계약하기 위해선 커미셔너를 통해 허가를 받아야 했고, 신분조회도 필요했다. 이런 절차 없이 계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스카우트 일을 하면서 내가 그 정도의 법적인 절차를 몰랐다는 게 말이 되겠나. 구단 내에 법적인 서류 관련 모든 일들을 지시해 놓고, 난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체크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로 인해 모든 부분이 계획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갔다. 정대현의 경우엔 오리올스 자체가 메디컬 테스트와 관련해선 까다로운 잣대를 유지하고 있고, 간 수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치료 과정을 협의하는 상황에서 이견이 발생하는 바람에 계약이 무산되고 말았다.” 강경덕과 윤정현도 볼티모어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강경덕은 팀을 떠났고, 윤정현은 여전히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는 중이다. 쇼월터와도 좋은 인연은 아니다. 그동안 김병현(KIA), 박찬호(은퇴), 윤석민이 그를 사령탑으로 맞이했다. 그나마 김병현은 무난했다. 쇼월터는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지 2개월밖에 안 된 김병현에게 등판 기회를 줬다. 하지만 김병현을 마무리 투수로 기용한 감독은 후임 밥 브렌리였다. 이후 쇼월터는 2003년부터 텍사스 지휘봉을 잡았다. 2002년 FA(프리에이전트) 계약으로 이적했던 박찬호는 하락세에 있었다. 당시 쇼월터는 박찬호를 자주 강판시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윤석민은 2014년 시즌 내내 빅리그로 콜업하지 않았고, 2015년 스프링캠프를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게 만들었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