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6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이임식을 마치고 손을 흔들며 차에 오르고 있다. | ||
가장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쪽은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 그는 박-이 두 주자에 비해 대중적 지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민심 밀착형 행보에 올인할 계획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방 강연과 외국 기업 탐방 등을 통해 민심 잡기와 정책 투어의 두 마리 토끼잡기에 나선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몸도 추스릴 겸 의정활동과 정책 공부에만 전념하는 ‘책상머리’형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이 벌이는 뜨거운 장외대결의 안과 밖을 들여다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처럼 현직에서 물러나도 ‘실업자’가 아니다. 그는 다른 두 주자들이 누리지 못하는 현역 국회의원의 프리미엄을 한껏 활용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당 대표로서 의정활동에 소홀했던 점을 만회하고 정책 개발을 통한 ‘비전 제시형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도 새롭게 제시할 계획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박 전 대표의 퇴임 뒤 대권 행보 콘셉트는 ‘책상머리’형으로 규정할 수 있다. 얼굴의 상처도 치료하고 지친 심신도 달래면서 정책 공부에만 전념할 계획인 것.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 전 시장과 손 전 지사는 퇴임 후 지지율을 올릴 계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지만 박 대표는 현역 의원이므로 원내 활동이 가능하다. 앞으로 각종 법안 제출과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차기 대권 주자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당 대표 때 소홀히 했던 상임위 활동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 정책 개발과 공부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당초 상임위 신청을 하지 않고 대권 정책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방침을 바꿔 오랜 기간 몸담아 온 과기정위를 떠나 ‘전략 상임위’로 불리는 행자위로 옮기고 지방자치와 행정에 관한 경험을 쌓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반면 피습으로 인한 얼굴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만큼 외부강연이나 해외여행은 한동안은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당초 7월 말이나 8월 초로 예상됐던 대권 선거캠프 구성시기도 8월 말 이후로 늦춰 잡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나면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그가 7·26 재·보선 출마자들의 지원유세 요청이 있을 경우 적극 나서는 방식으로 대권 행보를 본격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또한 박 전 대표는 건강을 회복한 후 중국과 인도,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해외 방문 계획도 줄줄이 잡아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9월께로 예상되는 중국 방문시에는 중국 공산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새마을 운동’에 대한 특강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 전 대표는 당분간 건강 때문에 책상머리형 행보를 보일 예정이지만 그를 지지하는 일부 의원들은 외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한국의 대처’형으로 다시 이미지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이 한다고 전해진다.
▲ 지난 6월 30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임식을 위해 서울광장에 나서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렇다면 박 전 대표가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박 전 대표 ‘캠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영국 대처 전 수상은 일반적으로 강경 보수의 상징으로 인식되지만 사실 그는 정책 개발과 국가 개조에 대한 이념이 분명하게 있었다. 그의 정책과 사상을 ‘대처리즘’이라고까지 부르지 않나. 박 전 대표도 이런 점에서 ‘근혜이즘’이라 부를 만한 정책 개발과 국가 경영에 대한 원칙을 빨리 세워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퇴임 뒤의 대권 행보가 ‘안국 프로젝트’로 불리는 게 싫지 않은 눈치다. 그의 대선 캠프 사무실이 안국동에 있는 점을 빗대 만들어진 말이다. 그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안국사무실’… 나라를 편하게 한다. 이름이 좋잖아요. 불안한 게 너무 많으니”라면서 ‘안국’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여기서 만들어내는 정책도 ‘안국 프로젝트’로 부를 예정이다.
이 전 시장의 안국 프로젝트 요체는 ‘민심 밀착’과 ‘글로벌 리더십’의 두 마리 토끼 잡기로 압축된다. 퇴임 후 3~4개월간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전국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대 정책담론의 방향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이 전 시장은 퇴임 후 7월 한 달여 동안은 특강과 지방을 도는 정책투어를 가질 예정이다. 특히 그는 7월 12일부터 이틀간 목포대 학생들과 함께 전남의 한 시골마을로 농활을 다녀온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농촌으로 갈 생각이다. 요즘 젊은 농업인들이 농촌도 기업화하자고 하면서 나를 찾아온 일이 있다. 나보고 고문을 맡아달라고. 나는 농업을 안 해본 사람이라고 하니, 그래서 필요하다고 했다. 농업은 자기들이 하고 기업을 해본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더라. 현장에 가보니 아주 의욕이 있는데 경쟁력과 마케팅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올바르게 판단을 했더라. 그걸 보고 농촌에도 내 경험이 필요하겠다 해서 농촌에 가서 있으면서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국 민심 투어’의 여세를 몰아 8월 이후에는 아이슬란드 독일 네덜란드 등지의 해외 방문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이 시장 측은 “해외 방문 때는 한 곳에 네댓새 정도 머물면서 세계적 산업과 연구메카 등지를 꼼꼼히 살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의 ‘안국 프로젝트’는 국내외를 두루 방문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에 자신의 기업가 마인드를 접목시킨다는 전략이다.
▲ 지난 6월 30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이임식 후 ‘민심대장정’에 나서기 위해 수원역에서 열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
손 전 지사는 박-이 두 주자에 비해 갈 길이 바쁘다. 아직 대중적 지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번 ‘방학’에서 뭔가를 보여주어야 할 부담도 있다. 그래서 손 전 지사와 참모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나온 대답이 민심 대장정이었다. 이번 ‘민심대장정’은 조직을 만들고 세 몰이를 하는 기존 여의도식 구태 정치로는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손 전 지사의 구상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그를 잘 아는 한 인사는 “민심 대장정은 기존 정치인들의 민심투어와 완전히 다르다. 맨몸으로 국민생활의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가 국민과 함께 민생을 체험하고 고락을 함께 나누며 하루 24시간의 일상생활 전부를 민생의 현장과 함께하는 새로운 방식의 민생체험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순수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의 남미 무전여행을 통한 민생체험 등과도 비견될 수 있는 ‘국민속으로’ 프로그램이다. 국민들이 손 전 지사의 순수, 열정, 논리를 알게 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퇴임식을 마치자마자 100일간 전국을 순회하는 ‘민심대장정’에 곧바로 들어갔다. 그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서 2박3일간 첫일정을 소화한 뒤 해남으로 이동해 봉사활동을 계속하는 등 오는 7월 11일까지 호남지역을 돌며 민생 탐방을 할 예정이다. 손 전 지사는 오는 9월 말까지 전국을 순회한 뒤 이후 중앙정치무대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손 전 지사의 민심 대장정은 철저하게 ‘자유여행’이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수행원 없이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이동하면서 바닥민심을 들을 생각이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바로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있고 하룻밤 신세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계획이다. 숙식은 대부분 식당과 여관 또는 민박집에서 혼자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봉사현장이 있으면 자원봉사도 한다고 한다.
손 전 지사는 이에 대해 “이것이 당장 체계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말 그대로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민심을, 국민의 소리를 듣고 지역적인 현황도 파악할 생각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우리나라의 전체적 과제를 파악하고 민심을 챙겨서 궁극적으로는 국정운영의 비전, 국정 정책을 전체적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손 전 지사는 민심대장정이 끝나는 10월 중순 서대문에 대선 캠프로 쓸 작은 사무실을 열 예정이다. 손 전 지사 측은 “대장정을 마치는 10월 말쯤이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일종의 정책재단을 출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또 다른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아직 구체적 준비는 돼 있지 않다. 이름은 ‘동아시아미래복지평화재단’(가칭)으로 정할 예정이다. 이름이 손 전 지사의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지만 너무 길고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들어 바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정책재단에서 모든 대권 관련 프로그램들이 일관성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예전 손 전 지사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과 30, 40대의 젊고 새로운 전문가 그룹도 포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여름은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의 장외대결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