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은 사무총장 적임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 원혜영 의원을 직접 설득한 끝에 겨우 동의를 받았다. | ||
열린우리당은 당초 6월 말에 마무리하려던 후속 당직개편을 수차례 연기한 끝에 결국 7월 둘째 주까지 끌고 왔다. GT(김근태)가 당의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체제를 정비하는 셈이다. 정동영 전 의장이 취임 이틀 만에 신임 사무총장을 임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당직개편은 늦어도 한참 늦다.
이유는 사무총장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 처음에 후보로 거론된 인물은 원혜영 김영춘 의원 등이었다. 원 의원은“얼마 전까지 정책위의장을 지냈는데 또 사무총장을 맡는다면 설득력이 없다”며 한사코 사양하다가 GT가 직접 설득한 끝에 수락했다고 한다.
GT는 ‘40대 전진 배치’를 인사 원칙으로 내걸고 지난 6월 30일 김영춘 의원을 직접 만나 사무총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러나 김 의원 역시 완곡하게 고사하고 이틀 뒤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
김 의원은 떠나기 직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지만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과 경청과 숙고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창당 멤버였고 주요 당직을 맡아 당을 이끌어왔던 책임감 때문에 어떤 요청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용히 사색할 때”라며 자신의 심경을 정리했다.
김 의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침묵’을 원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주변의 추천을 받아 몇몇 의원들에게 의사를 타진했지만 사무총장을 맡으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무총장은 당의 살림을 맡아 관리하는 주요 직책으로 과거에는 막대한 정치자금을 주물렀던 자리다. 지금도 여전히 ‘조직의 실세’로 통한다. 그래서 당으로서는 아무나 앉힐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당내 주요 인사들이 사무총장 자리를 기피하는 이유는 “권한은 없고 숙제만 잔뜩 쌓였다”는 인식 때문이다. 우선 정치자금이 없어지면서 사무총장의 ‘금권’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사무총장이 일정한 지분을 갖고 공천권도 행사했지만 지금은 그것도 없다. 후보 내기가 어려운 당의 현실을 감안하면 공천권 자체가 이제는 ‘권한’이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여기에 당 운용이 당의장과 원내대표의 투톱 체제로 바뀌면서 역할이 축소된 점도 사무총장의 인기를 떨어뜨린 요인이다.
이처럼 권한과 역할은 대폭 축소됐지만 열린우리당의 현재 사정은 사무총장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당장 조직을 슬림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사무총장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당의장이 바뀔 때마다 자기 사람을 데려오면서 중앙당 조직이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며 “정당법에 규정된 중앙당 정원을 넘어서는 바람에 소속은 국회에 두고 파견 형식으로 당에 나와 있는 참모들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로 내정된 원혜영 사무총장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당내에서 조직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면 GT가 신임 원 사무총장에게 큰 힘을 실어줄 것이란 전망도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의 구인난은 당직 개편에 그치지 않는다. 7·26 재·보선 공천 과정을 보면 열린우리당을 통해 정치권에 발을 담그려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3일 공천 신청을 마감했을 때 서울 성북 을과 송파 갑 지역에는 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열린우리당은 거물급 인사를 영입해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고 싶어 하지만 지명도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지방선거에 나타난 여당에 대한 민심을 알기에 누구도 선뜻 후보로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이다.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한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지속적인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끊임없이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은 맥이 끊겼다”며 “여당 공천을 받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누가 공천을 받으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거물급 공천이 무산된 이후에는 여성 기업인과 구청장 출신 인사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6일 발표한 공천 명단은 결국 대부분 청와대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일찌감치 경기 부천 소사 지역에 공천을 받았고 조재희 전 청와대 국정과제 비서관(성북 을), 정기영 열린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송파 갑), 김성진 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부산 마산 갑) 등 모두가 참여정부 초기 멤버들이다.
GT가 당의장 취임 이후 야심작으로 추진했던 ‘서민경제회복추진본부’ 또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용두사미’로 전락한 경우로 꼽힌다. 열린우리당은 당초 당의장 직속 기구로 추진본부를 설치해 서민생활과 관련된 각종 경제 현안들을 책임 있게 다룰 방침이었다. GT가 강한 의지를 보였고 당내에서도 이 기구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GT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본부장 영입을 위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과 접촉했다. 하지만 역시 허락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열린우리당이 추진본부 출범을 수차례 연기한 끝에 결국 영입에 성공한 인사는 GT의 서울대 상대 1년 선배인 오해진 전 LG CNS 사장이다. 당초 계획에 비해 수장의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오 전 사장과 함께 GT가 공동 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러한 시선을 감안한 조치라는 시각이 많다. 기구의 성격도 ‘본부’에서 당내 ‘위원회’ 수준으로 위상이 약화됐다.
한 재선 의원은 “당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이 때문에 인재들이 당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딜레마”라며 “열린우리당의 위기 극복은 앞으로 어떤 인재를 얼마나 영입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과연 여당의 ‘구인난’은 얼마나 계속될까.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