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정상명 검창총장 | ||
사시 동기(17회)로 막역한 사이인 노 대통령과 정상명 검찰총장의 관계를 감안하면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기류가 왠지 “낯설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하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취임 당시부터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강조해 왔고 검찰 내부에서도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는 점차 퇴색되고 있는 추세다. 대형 권력형 비리 등 정치적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이나 수뇌부들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먼저 도전장을 내민 곳은 검찰이다. 검찰은 5·31 지방선거 이후 각종 ‘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수사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금융브로커인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를 불구속 기소하고 진념 전 부총리도 김 씨에게 1억 원을 수수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대가성이 없고 공소시효가 지나 내사 종결했다.
검찰은 또 기획부동산 업계 대부로 알려진 이른바 ‘김현재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로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실세였던 김상현 전 의원을 구속하는 등 정·관계를 겨냥한 마지막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두 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인사들은 과거 정권 실세들이 대부분이다. 노 대통령과 현 정권이 그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사건인 셈이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썬앤문 게이트’나 법조브로커 ‘김홍수 게이트’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특히 노 대통령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을 겨냥해 검찰이 다시 칼날을 세웠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썬앤문 게이트’는 2004년 2월 구성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팀’도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부실 수사’ 논란만 부추긴 채 막을 내린 사건이다.
검찰이나 특검팀 모두 집권 초 막강한 파워를 지닌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게 당시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와 여권을 향해 칼날을 세우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찮다. 사시 동기인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명 검찰총장의 행보도 관심을 모은다. | ||
검찰은 또 썬앤문 그룹에 대한 압수수색과 전·현직 자금 담당 관계자들을 상대로 집중 조사 결과 문 회장의 수백억 원 횡령 및 탈세 혐의를 일부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검찰은 문 회장의 횡령 혐의가 확인되면 사용처 수사로 확전할 방침이고, 미완의 수사로 막을 내렸던 ‘썬앤문 게이트’에 대한 전면 재수사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대선자금 수사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 경우 노 대통령은 물론 핵심 측근들이 또다시 수사선상에 오를 개연성이 높다. 청와대와 검찰이 정면충돌하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는 형국이다.
외형상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비춰지고 있는 이른바 ‘김홍수 게이트’ 중심에도 현 여권 실세들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까지 ‘김홍수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사들은 대부분 전·현직 판검사와 변호사, 경찰 고위간부 등이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결과 ‘김 리스트’에는 여권의 대권주자 A 씨와 핵심실세 B 씨도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일요신문> 740호)
특히 B 씨가 현 정부에서 장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직을 역임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도덕성 시비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검찰의 칼날이 현 정부 실세와 권력심장부를 겨냥할 움직임을 보이자 여권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갑자기 검찰의 아킬레스건인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법안 카드를 꺼내든 것도 반격 전략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썬앤문 게이트’에 대한 전면 재수사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김홍수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여권이 검찰의 발목을 잡는 카드를 제시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력 심장부를 겨냥할 수 있는 검찰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자 하는 복심이 투영돼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여권의 반격 움직임에 검찰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일부 소장파 검사들은 여권이 현 정부 실세들이 연루된 각종 게이트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이를 제어하기 위해 공수처 법안을 다시 들고 나온게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는 한 평검사는 “현 정부 출범이후 일선 검사의 사건 수사에 대한 검찰 수뇌부의 입김이 개입될 여지가 줄어드는 등 검찰 문화가 많이 변했다”며 “여권이 꺼내든 공수처 법안 카드는 검찰조직의 사활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오히려 검사들을 자극해 현 정부 실세들이 연루된 각종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