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전 의장(왼쪽)과 천정배 전 법무장관. | ||
신기남 의원과 함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트리오를 이뤘던 두 사람은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이자 정치적 동지였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대망론을 일구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동지적 관계보다는 경쟁·대립 관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동안은 DY 측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그러나 DY가 5·31 지방선거 완패에 따른 책임론에 휩싸여 당의장직을 내놓고 백의종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면서 천 의원에게도 기회가 돌아왔다. 5·31, 7·26 양 선거에서 모두 참패함으로써 정동영 김근태 당내 두 선두주자에게 흠집이 생긴 상황에서 당에 복귀한 천 의원이 본격적인 대권레이스에 합류함으로써 경쟁·대립은 이제 막이 오른 것이다. 특히 DY와 천 의원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모두 ‘호남’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 간에 한판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천 의원이 당에 복귀하자 양측 모두 겉으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망론 해법은 상호 엇갈리고 있다. 대권 길목에서 만난 두 사람의 호남대첩이 본격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동지였던 DY와 천 의원이 경쟁·대립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호남이라는 지역적 공통분모와 대망론이 자리잡고 있다.
DY의 고향은 전북 순창이고 천 의원의 지역구는 경기도 안산이지만 전남 신안 출신이다. 전·남북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다.
또 두 사람 모두 대망론을 꿈꾸고 있다. DY는 5·31 지방선거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유력한 차기주자다. 천 의원도 그동안 대권과 관련해 직접적인 의사를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경쟁력 있는 제3후보로 평가받고 있으며 각 언론기관의 대권후보 여론조사도 천 의원을 빼놓지 않는다.
DY와 천 의원 중 한 사람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호남맹주 자리와 대권을 놓고 피 말리는 대혈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두 사람이 이미 대권경쟁에 돌입했다는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 독일에 머무르고 있는 DY가 절치부심 재기를 노리고 있고 천 의원이 당에 복귀해 본격적인 대권행보를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천 의원의 대권 행보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천 의원은 그동안 잠재적 차기주자로 분류돼 왔다. 하지만 천 의원 측근들과 여권 관계자들은 천 의원이 큰 뜻(대권)을 품고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천 의원은 법무장관에 취임하기 전부터 개인 연구소인 ‘동북아전략연구원’을 중심으로 대권 밑그림을 그려왔다. 천 의원의 대권 베이스캠프 성격을 띠고 있는 동북아전략연구소는 최근 사무실 이전과 조직 재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천 의원의 한 측근은 “동북아연구소는 조만간 시·도 및 권역별 지부 설립을 추진하는 등 전국조직으로 확대 개편할 방침이고 민심 수습과 지지율 제고 방안 등 대선을 겨냥한 밑그림도 그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도 서서히 대권 복심을 드러내고 있다. 천 의원은 당에 복귀한 7월 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당의 재건과 민생개혁의 전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필사즉생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겠다”고 밝혔다. 대권주자로서 큰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는 7·26 재보선 당일 법조 출입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조순형 전 대표와 추미애 전 의원을 열린우리당으로 데려오지 못한 점과 더 나아가 한화갑 민주당 대표를 끌어안지 못한 것이 이 정권의 한계였다”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친정인 민주당에 대한 호의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논란이 일고 있는 8·15 특별사면과 관련해서는 ‘사면권 남용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등 돌린 현 정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향후 정계개편 및 합종연횡 과정에서는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대권 구상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천 의원은 또 당 복귀 직전에 광주에 개인사무실을 열고 광주시당 당직자 및 지역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는 등 호남 지역 민심잡기 플랜도 물밑 가동하고 있다.
대망론을 재가동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DY도 복귀 명분과 시점을 저울질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15일 한 달 일정으로 독일로 떠난 DY는 독일발 대권구상에 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를린자유대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독일에 머물고 있는 DY는 외형상 강연과 집필 활동에 주력하고 있지만 귀국 후 정치활동 재개 및 대권 재가동 플랜을 백지상태에서 꼼꼼히 구상하고 있는 전해졌다.
DY의 한 측근은 7월 2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DY는 독일에 있지만 천 의원 복귀와 조순형 전 대표의 국회 입성 소식 등 국내 정치 현안을 측근들로부터 전해 듣고 있다”며 “8월 중순경 귀국하면 향후 정치활동 방향과 자신의 역할, 대망론 등에 대해서 나름대로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측근은 또 “7·26 재보선 참패로 또다시 여권이 내홍을 겪고 있어 연말로 예상됐던 정계개편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DY도 이러한 정치상황을 고려해 복귀 시점과 명분을 찾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당 복귀 후 대권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천 의원과 독일발 대권플랜 구상에 돌입한 DY.
호남지역 맹주와 개혁세력 대표주자를 놓고 본격적인 대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두 사람 중 호남민심은 누구를 선택할지 또 정치적 동지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대망론 해법과 맞물려 어떤 식으로 정립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