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열린우리당 무계파 초선 모임인 ‘처음처럼’ 소속 의원들이 국정쇄신과 당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계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인물과 지역이다. 특히 차기 권력을 창출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거물급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그 계파가 형성돼 온 게 사실이다. 그들에게 정책을 결정하는 이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한 계파 내에서도 중요한 정책 결정을 두고 뒤죽박죽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현재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는 다양한 계파가 존재한다. 특이한 것은 ‘여저야고’ 현상이다. 여당은 정동영 김근태 두 대권 주자의 권력 창출 가능성이 낮아지자 그들의 계파도 갈수록 와해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은 7·11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퍼지면서 친박 계파가 대폭 늘어났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의 계파 분포는 17대 국회 초반에 비해 더욱 분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동영 김근태 두 유력 대권 주자의 대중적 인기와 집권 가능성의 부침에 따라 계파 분포도 연동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계파 붕괴 조짐이 심각한 곳은 정동영 전 의장 쪽이다. 정 전 의장의 가장 큰 계파 모임은 바른정치실천연구회(대표 이강래 의원)다. 이 모임은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 동교동계에 맞서는 ‘소장파 의원모임’으로 출발했다. 김한길 이강래 천정배 정동채 이종걸 의원 등 열린우리당의 핵심 의원들이 포진했다. 17대 총선에서 압승한 뒤 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하며 사실상 열린우리당을 이끌어온 친 정동영계의 친위조직인 셈이다.
하지만 이 모임은 신기남 의원이 부친 친일 논란으로 모임을 탈퇴하면서 첫 번째 생채기가 났다. 신 의원은 그의 ‘낙마’ 과정에서 정 전 의장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 강한 배신감을 느껴 반 정동영계로 돌아섰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신 의원은 그 뒤 ‘신진보연대’라는 독자적인 계파를 만들었다. 이 모임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당 복귀를 환영하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 측은 천 전 장관의 복귀에 대해 “바른정치연구회 소속 의원들 일부가 천 전 장관으로 지지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 의원과 천 전 장관은 앞으로 ‘협력적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친 정동영 계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른정치연구회 소속 초선 의원들의 ‘이탈’도 눈에 띈다. 그들은 모임에 처음 가입할 때만 해도 열혈파들이었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의 인기 하락과 함께 그들의 행보도 다변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양다리 걸치기’에 해당한다. 친 정동영 계보로 통하는 초선 의원들 대부분은 최근 만들어진 초선 의원의 무계파 모임 ‘처음처럼’과 ‘국민의 길’에도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이 모임에 속한 의원들은 “계파 정치를 지양하고 민생을 우선하는 생활정치를 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의 순수한 의지와는 달리 그들의 무계파 모임 설립 배경에는 “‘주군’을 찾지 못한 ‘미아’들이 일시적으로 ‘피난처’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지금 당내에서는 계파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다. ‘튀면 죽는’ 분위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파색을 띠지 않는 소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내에서는 10월 이후 당이 깨질 것이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때가 되면 다시 유력한 대권 주자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허약한 계파가 정동영 계보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초선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한 운동권 출신 의원은 “솔직히 이들이 뭘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정 대선 주자의 세 확대 차원이라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또한 당내에서는 ‘정동영 계 어떤 의원이 제3후보 지지로 돌아섰다’, ‘어떤 의원은 고건 전 총리와 자주 접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이런 점 때문인지 이제는 당내에 완전한 정동영 계보로 분류되는 열성 지지자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의원도 있다.
정 전 장관을 지원하는 또 다른 당원조직으로는 ‘국민참여1219’가 있다. 이 조직은 정동영 전 장관이 당 의장으로 선출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만큼 정 전 장관에 가장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동영 지지에 너무 힘을 쏟아 위기를 맞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되면서 한때 ‘해산’까지 검토한 바 있다. 정청래 의원은 ‘처음처럼’ 같은 초선 모임에 일체 가입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진로 모색에 힘을 쏟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친 정동영계의 한 의원은 계파의 분열 현상에 대해 “진보적인 이론으로 똘똘 뭉친 김근태 의장 계보에 비해 결집도나 충성도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도 무계파 의원으로 분류되는 의원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정 전 의장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바른정치연구회는 7월 28일 3박 4일 일정으로 러시아 바이칼로 휴가를 다녀오는 등 계파 결속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근태계의 경우는 김근태 의장이 당을 장악하고 있고 ‘결속력’이 강한 운동권 출신 성향에다 진보적인 이론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동영계에 비해 강한 응집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대권과 관련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대권 주자로 김근태만을 고집한다’는 정서는 약화된 지 오래다. J 의원은 이에 대해 “더 이상 운동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뭉치기가 쉽지 않다. 정치인으로서 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나름대로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민평연은 국가보안법 개폐 등에 있어서 비교적 한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의원들끼리 대립과 반목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들어 김 의장의 리더십에 대한 여러 말들도 나오고 있다. 7·26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뒤 김 의장이 앉아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더 이상 기대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김 의장이 킹메이커로 돌아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특히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설이 나온 이후 민평연 소속 의원들이 고 전 총리와의 교감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는 점도 민평연의 분열을 가속화시키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민평연 한 핵심 관계자는 민평연의 활동 위축에 대해 “그동안 계파 활동을 많이 자제해왔다. 하지만 재보궐 선거 뒤 김근태 리더십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8월에 충남 공주시에서 민평연 정기총회 및 하계수련대회를 갖고 김 의장의 리더십 보완 방안을 집중 토론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당내 또 다른 축인 친노그룹 모임도 주목된다. 이광철 유기홍 의원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속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와 이광재 이화영 의원 등이 속한 ‘의정연구센터’(의정연) 등은 당내 제3의 세력이다. 이 두 모임은 정동영 김근태 두 대권 주자로는 권력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제3의 후보 찾기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먼저 참정연은 김두관 전 최고위원이 사퇴, 모임의 ‘간판’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침체를 겪고 있다. 특히 모임의 노선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한 모임 참석자는 “참정연 내부에서는 그동안 정당개혁 문제에 집착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앞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일부 참여 의원들은 참정연 탈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면서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우리 모임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 알게 됐다.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은 정치 결사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앞으로 계파 활동보다는 외연 확대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정연은 28개 지역 순회간담회를 거쳐 오는 8월 전체토론회와 총회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 모임이 시민네트워크에 기반한 외연확대를 모색하는 것도 결국에는 당심과 민심이 따로 놀았던 결과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들이 외면하는 모임에 계속 참여할 의원들이 있겠는가. 앞으로 모임 탈퇴를 선언하는 의원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친노그룹 386 의원모임인 ‘의정연구센터’는 모임의 결속력을 오히려 강화하는 분위기다. 최근 이 모임은 이화영 윤호중 백원우 최재성 의원과 민병두, 김형주 의원 등 10여 명이 1주일가량 유럽정당연수를 다녀와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씨가 합류해 정가에선 친노그룹의 정권 재창출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연수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결속력이 생겼다”는 평가를 하면서 “앞으로 당내 개혁 방안과 진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새로운 모임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당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고 발족한 ‘소통과 화합의 광장’(광장모임)의 행보도 주목된다. 문희상 유인태 원혜영 의원 등 중진이 중심을 이룬 광장모임은 ‘정동영 김근태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앞서의 친노그룹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이 그룹은 내각제 개헌을 염두에 둔 정계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참여 의원들끼리 자주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이 모임도 결국에는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유력한 대권주자의 조직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