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면된 안희정 씨(오른쪽)가 정치행보를 재개하면 청와대 386그룹 간의 파워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왼쪽은 이광재 의원. | ||
야권은 국정조사나 청문회 카드를 꺼내들며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청와대 참모들의 권력암투와 인사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사권 문제로 불거진 당·청 갈등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이 있었다면 인사개입 논란을 계기로 재점화된 제2의 당·청 갈등은 청와대 참모진과 당의 파워게임으로 비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인사 개입 사태를 계기로 참여정부 출범 후 청와대 핵심 요직에 두루 포진하며 거칠 것 없는 파워를 행사해 온 386 참모진에 대한 비판 기류가 당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선 인사 청탁 논란이 386 참모진의 ‘무소불위’ ‘오만불손’한 파워 행사와 ‘자기사람 심기’ 경쟁에서 파생된 부산물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정권 초기에 아마추어리즘으로 비난의 대상이 됐던 386 참모진이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구세대의 폐습으로 여겨지던 인사전횡 의혹으로까지 불거지면서 도덕성 결함으로 비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 안희정 씨의 사면 복권으로 청와대 참모진 386그룹 간의 보이지 않는 권력 암투가 오히려 더 격렬해 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기도 하다. 참여정부 파워 집단으로 자리매김한 386 참모진의 현주소를 조명해 본다.
386세대는 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용어로 60년대에 출생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지칭한 말이었다. 지금은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중후반의 나이로 사회 각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개혁성향의 운동권 출신 중에는 정치권에 투신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이와 일천한 정치 경험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정치권에서 비주류를 면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역시 정치권의 비주류로 분류됐던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이들 386세대들도 현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다. 대선 당시 노 대통령 캠프에서 활동하면서 노 대통령 당선에 공헌한 이들 386 참모진들이 대거 청와대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도 이들 386 참모진들을 ‘정치적 동업자’로 치켜세우며 핵심 요직에 두루 포진시켰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발표된 청와대 비서관 31명 중 386그룹은 무려 27명에 달할 정도였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386그룹을 대표하는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이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맡았고 서갑원(의전), 최도술(총무), 이호철(민정1), 윤태영(연설), 김만수(보도지원), 천호선(참여기획), 안봉모(국정기록), 양길승(제1부속) 등 386 핵심 참모들이 청와대 요직에 기용됐다.
‘측근인사’ ‘코드인사’ 논란은 이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들 386 참모진은 정치권 안팎의 비판적 시각을 의식해서인자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각종 개혁정책을 펼쳐나갔다. 하지만 국정경험이 일천한 이들 386 참모진들의 아마추어리즘이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고 일부 386 측근들은 각종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중도하차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최도술 씨가 SK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는가 하면 또다른 측근인 양길승 씨도 향응 몰카 파문으로 낙마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스스로 이들 386그룹을 ‘정치적 동지’로 규정하면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를 보냈다. 노 대통령은 비리 혐의로 낙마한 일부 측근과 2004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한 참모진(이해성 문학진 박재호 김만수 박기환 씨 등)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단행된 2차 청와대 비서진 인사에서도 386 참모진을 요직에 재기용했다.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을 떠나 ‘돌려막기’식 인사가 단행된 것.
▲ 청와대 | ||
권력의 단맛을 본 386그룹의 열정과 순수성은 점차 퇴색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동지’라는 공감 하에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던 386 참모진 간에 지역과 학맥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조성되고 상호 견제·대립구도가 형성됐다. 과거 기성 정치인들의 전유물로 상징됐던 권력암투가 386그룹에서도 물밑 진행된 것이다.
권력암투 중심에는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386그룹을 대표하는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씨가 자리 잡고있다. 두 사람은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우며 참여정부를 탄생시키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두 사람은 또 정권 초기부터 연세대(이광재)와 고려대(안희정) 인맥을 이끌며 청와대 내 이너서클을 장악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관계를 형성했다.
실제로 이 의원과 안 씨를 정점으로 한 연·고대 파워게임은 인수위 시절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나는 호랑이, 뛰는 독수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연고대 인맥은 현 정부 출범 전부터 막강 파워를 과시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두 사람의 명암은 극명하게 갈렸다. 안 씨는 불법 대선자금의 ‘짐’을 홀로 지고 1년간 옥살이를 하는 등 음지에서 생활한 반면 이 의원은 초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서 자신의 연대 인맥을 청와대 등 권력핵심부에 두루 포진시켰다. 또 이 의원은 2002년 총선 때 고향인 강원도에서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실세 정치인으로 거듭났지만 안 씨는 지난 8·15 사면을 통해 비로소 정치를 재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두 사람의 엇갈린 명암은 곧바로 연대와 고대 인맥의 부침과 연결됐다. 2004년 2월 김우식 연세대 총장이 2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연대 인맥은 청와대와 정부 핵심 포스트를 장악한 반면 고대 인맥은 안 씨의 몰락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김 실장을 중심으로 윤태영(제1부속실장), 천호선(국정상황실장), 박기영(정보과학기술보좌관), 윤후덕(업무조정 비서관), 김만수(대변인), 문용욱(수행비서) 등 연대 인맥들이 청와대 핵심요직을 장악한 반면 고대 인맥의 중심축이었던 박정규 전 민정수석과 정순균 전 국정홍보처장은 낙마했다. 홍보수석을 지내던 이병완 실장이 지난해 8월 3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되고 전해철 비서관이 지난 5월 민정수석으로 승진 기용된 것이 그나마 고대 인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안 씨가 8·15 사면을 통해 정치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고대 인맥도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도 유일하게 ‘정치적 채무’를 지고 있는 안 씨와 그 인맥들을 정계개편 과정이나 대선정국에서 중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는 안 씨의 정치재개로 청와대 참모진을 중심으로 한 권력암투가 더욱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386그룹의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도 심상치 않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열린우리당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못한 레임덕 상황에서 정국 타개를 위한 비책을 놓고 이들의 의견이 조금씩 엇갈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정권 말기에 흔히 벌어지는 서로에 대한 의심이 충성심 경쟁과 맞물려 권력 암투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어쩌면 ‘2인자’ 자리를 놓고 노 대통령의 386 핵심 측근인 안 씨와 이 의원이 진검승부를 가릴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권력 게임이 본격화 될 경우 제2, 제3의 ‘유진룡 파문’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386그룹의 인사 청탁 의혹이 수면위로 부상한 상황에서 이 두 사람이 세 싸움을 벌이며 ‘측근 심기’ 경쟁을 펼칠 경우 인사 청탁 구설수는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과거 정권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측근들의 전횡이 늘어나고 이는 곧바로 레임덕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향후 행보는 이래저래 정가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