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과의 인터뷰는 지난 25일(한국시각), 샌디에이고 원정 경기 중에 진행됐다. 한국에서도 그와 인터뷰한 적이 몇 차례 있었지만 가장 편하게 인터뷰 아닌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 한·미·일 스트라이크존의 차이
일반적으로 투수들이 새로운 무대에 적응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존이 한국, 일본에 비해 넓은 편인지를 묻는 질문에 정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건 심판 성향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 나라별로 스트라이크존의 기준은 있다. 단, 심판에 따라 낮은 볼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선언하는 심판도 있다. 그걸 한·미·일 야구 스타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단, 한국은 어느 정도 스트라이크존의 기준이 비슷한 반면에 메이저리그는 심판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는 경우가 있다.”
오승환은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1회부터 5회까지 타자의 성향과 함께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을 유심히 살펴본다고 말한다. 심판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스트라이크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심판의 성향을 파악하면 투구할 때 생각하면서 던지는 편이다. 높은 볼 잡아주는 심판을 상대로 굳이 낮은 볼을 던지진 않는다. 그래봤자 볼이니까.”
한국과 일본, 미국을 두루 경험했고, 경험 중인 오승환한테 각 나라별 타자들의 스타일을 비교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메이저리그는 1번부터 9번까지 누구나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다”는 말로 각 나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크게 봤을 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기본적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어느 타순도 쉽게 상대하기가 어렵다. 일본은 3, 4, 5번을 치는 선수들이 장타를 노린다면 나머지 타순의 선수들은 방망이에 맞추는 콘택트 능력과 세심함이 뛰어나다. 한국은 최근 타자들의 파워가 크게 향상됐다. 미국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떠난 지 3년이 되는데 그새 선수들의 파워가 더 커졌다는 생각이 든다.”
# 주무기가 돌직구에서 슬라이더로?
오승환의 주무기는 ‘돌직구’.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선 심심찮게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할 때가 있다. 오승환은 패스트볼 말고 제일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볼이 슬라이더라고 말한다.
“맞지 않으려고 슬라이더를 던지는 거다. 한국, 일본에서 던진 슬라이더랑 차이가 있다면 좀 더 회전을 많이 준다는 거? 슬라이더 던질 때 이전보다 힘을 주는 편이다. 그래서 각이 좀 더 커지고 빨라졌다는 얘길 듣는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구종 추가에 대해 얘기했다. 빠른 볼과 슬라이더만으론 메이저리그에서 버티기 힘들다면서 구종을 추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난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내가 던질 수 있는 볼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던지는 게 우선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조금씩 보완하고 연습하다 보면 슬라이더도 선수 입장에선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오승환은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레퍼토리에 변화를 주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정교함을 덧입히려 했다. 그는 “몸쪽 사인이 나면 좀 더 정교한 제구력으로, 슬라이더 사인이 나면 좀 더 정확하게 던질 수 있게끔 집중한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오승환이 절친인 팀 동료 투수 맷 보우먼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가운데는 통역 구기환 씨.
# 오승환에게 몰리나, 로젠탈이란?
오승환이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하면서 가장 관심을 받은 부분이 포수 야디어 몰리나(34)와의 궁합이다. 야디어 몰리나는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내셔널리그 포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차지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다.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자연스레 몰리나와 배터리를 이룬 오승환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때마다 몰리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다.
“난 그동안 한국, 일본에서도 운 좋게 최고의 포수들을 만났다. 메이저리그에선 몰리나 포수가 워낙 많이 부각되고 있고, 선수 자체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많은 편이라 외부의 시선을 받는 것 같다. 올해는 내가 첫 시즌이라 몰리나한테 주로 의지하는 편이다. 몰리나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많은 선수이고, 선수들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포수다. 그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정말 던지기 싫은 공 사인이 나오기 전까진 몰리나의 리드에 맡기는 편이다.”
그래서 오승환에게 삼성의 진갑용과 세인트루이스의 몰리나 중 어느 포수와 배터리를 이루는 게 더 편한지를 물었다.
“이건 실력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아무래도 갑용이 형과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당연히 더 편할 수밖에 없다. 불펜에서 몸을 풀다가 마운드에 올라갔을 때 갑자기 사인이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야구장 조명이 어두우면 간혹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 때 갑용이 형은 따로 사인을 정해 놓은 게 없어도 편하게 던질 수 있다. 그만큼 많이 호흡을 맞춰봤기 때문이다. 몰리나 포수는 리그 최고의 포수이긴 해도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짧다. 아직은 갑용이 형에 비해 호흡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세인트루이스 마무리 투수는 트레버 로젠탈(26)이다. 시속 161km의 강속구로 지난해 48세이브를 올린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이다 보니 원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오승환은 팀 내에서 마무리가 아닌 중간계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기자가 현지에서 두 선수를 지켜본 결과 로젠탈은 오승환을 무척 많이 따랐다. 불펜 투수들이 외야의 수비 훈련에 나설 때 로젠탈은 줄곧 오승환 옆에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오승환 통역 구기환 씨의 도움으로 얘기를 주고받는 그들은 도대체 무슨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오승환이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
“주로 야구 얘기를 많이 한다. 로젠탈이 나보단 야구 경험이 적다 보니 내게 주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로젠탈의 고민 중 한 가지가 2년 전까지만 해도 1이닝의 투구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투구수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로젠탈이라면 빠른 볼 하나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볼 개수를 줄이려면 1 ,2구는 쉽게 가야한다고 말했다. 너무 코너 위주로 던지려다 보면 제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강속구의 피칭으로 파울 유도하면 투구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내가 그 선수에게 조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서로 야구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내 생각을 밝혔을 뿐이고, 다행히 로젠탈이 그 부분을 잘 받아들였다.”
오승환은 투수라면 로젠탈이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가를 알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구위 자체가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
# 지난 ‘겨울’, 유독 추웠던 오승환
한국과 일본에 비해 메이저리그 마운드는 조금 더 딱딱한 편. 환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투수 입장에선 이 마운드의 차이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난 메이저리그 마운드가 훨씬 마음에 든다. 한국과 일본은 이곳보다 덜 딱딱했다. 선발 투수나 앞 투수가 마운드를 사용한 후에는 땅이 많이 파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곳은 딱딱한 편이라 그 느낌이 덜하다. 마운드 환경은 메이저리그가 나은 것 같다.”
무실점, 퍼펙트 피칭…. 최근 오승환의 등판 이후 나오는 기사 제목들이다.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선수가 갖는 심적 부담도 커질 듯한데 오승환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내 기사에 달린 반응들을 보면 재미있다. 경기 결과에 따라 반응도 변화무쌍하다. 이 경기에서 이런 불만이 있었다면 다른 경기에선 또 다른 불만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좋은 글들이 훨씬 많지만 말이다. 그래도 전혀 부담이 되거나 스트레스로 작용하진 않는다. 그냥 지나치는 감정들이다.”
오승환은 자신이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는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세인트루이스의 구애가 지속적이었고, 마무리 로젠탈이 존재하는 걸 알면서도 그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내가 거쳐 온 삼성, 한신 그리고 지금의 세인트루이스, 모두 전통이 있는 팀들이었다. 항상 이기는 경기를 하고, 이길 줄 아는 팀이다. 그런 팀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 크다. 세인트루이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이렇게 좋은 팀에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무엇보다 불펜의 전력이 뛰어난 팀인데, 이곳에서 내가 자리를 잡는다면 다른 팀에서도 날 인정해줄 것이라고 본다.”
에피소드 하나. 오승환이 세인트루이스와 계약을 맺기 위해 출국했을 때 미국 중부 지역은 때 아닌 폭설로 공항들마다 결항 사태가 속출했다. 디트로이트에서 환승해 세인트루이스로 이동하려 했던 오승환은 디트로이트에서만 오랜 시간 대기 상태로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던 오승환. 그곳에 닿기까지 무려 25시간이 소요됐다.
“사실 지난겨울은 내가 살면서 겪었던 여느 겨울보다 몇 배나 더 추웠다.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5시간동안 발이 묶여 비행기 안에 머물 때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한파가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쉽게 오지 않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일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그렇다면 그 경험을 교훈 삼아 앞으로 잘 살자고 마음먹었다.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그 ‘겨울’의 일들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되새김질한다.”
오승환 입에서 처음 나온 ‘그 일’. 오승환은 기자가 묻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먼저 그 얘기를 꺼냈다. 겪을 때는 아픔이었지만 지나고 나면 그 또한 인생의 교훈이고 경험이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오승환은 분명 달라졌다. 야구와 인생 모두 ‘성숙’이란 색깔로 덧입혀졌다. 그래서일까. 그는 부쩍 웃는 일이 잦다. 웃는 오승환에게 세인트루이스 동료들은 먼저 다가갔다. 오승환과 세인트루이스. 정말 좋은 궁합을 보이는 선수와 팀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