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북한 당국은 36년 만의 빅 이벤트인 7차 당대회를 앞두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대한 일선 간부들의 반발도 목격됐다.
북한이 이번 당대회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약 4500만 달러(한국 돈 약 52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1990년대 이후 고질적인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결코 적잖은 돈이다. 사실 북한의 당 대회는 지난 6차 당대회 이전까지만 해도 통상 5~10년 주기로 개최돼 왔다. 그간 당대회 개최가 감감무소식이었던 배경에는 역시 1990년대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북한 내부의 경제적 상황과 직결된다. 내세울 수 있는 성과도 잡고자 하는 목표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대회는 북한 체제가 그동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뤘던 숙제나 다름없다. 2대 지도자 김정일은 어렵사리 북한 체제의 생명줄을 잡아 놓고 삼남 김정은에 지휘봉을 넘겼다. 선대 지도자 집권 시기에도 당대회를 개최하지 못한 상황에서 김정은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북한 최대 이벤트인 당대회는 김정은이 무리수를 둬서라도 이행해야 하는 ‘과업’이었다.
올 초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당대회를 앞둔 북한 당국으로서는 비상이 걸렸다. 당대회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한 이벤트였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상적인 예산 집행조차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돈줄이었던 중국 시장과 무역 통로마저 막히면서 북한은 올 초 극심한 ‘돈 가뭄’에 빠졌다.
필자가 이 과정에서 처음 접한 내부소식은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3월 30일,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에 중앙당 부부장급 간부가 전격 파견된다. 이 부부장급 간부는 중국 현지의 무역 참사관들과 대표부 인사들을 총집결시킨 뒤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 주제는 여명거리 조성사업에 필요한 자금확보 문제였다. 여명거리 조성사업은 평양 용남산 지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초대형 토목사업이다. 이는 지난 3월 김정은의 지시로 계획됐다. 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기존 건물 해체작업과 더불어 4월 3일 착공식이 진행됐다. 해당 지역에는 고층 건물군을 중심으로 건설이 진행될 예정이며 평양 내 현대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된다.
여명거리 조성사업은 이번 7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보여주기 식 성과물’에 다름없다. 착공식 당시 김정관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여명거리 건설을 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뜻깊은 올해에 기어이 완공해야 한다”며 “당의 두리(중심)에 일심 단결된 선군조선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온 세상에 떨쳐나가자”라고 해당 사업을 직접 당대회와 연결 짓기도 했다.
문제는 건설자금이었다. 앞서 베이징 회의는 곧 중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주재 인사들에 자금 상납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이것이 당시 회의장에서 불을 댕겼다. 다층적인 대북제재와 압박으로 북한 주재관들의 중국 현지 사업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북한식당의 릴레이 폐쇄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무역 사업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의 무역일꾼이 직접 중앙당 부부장에 상납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크게 반발했다. 이어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파견간부 한 명도 앞서 무역일꾼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회의 직후 이 두 명의 간부들은 비자금 착복으로 붙잡힌 또 다른 한 명의 간부와 함께 곧바로 중앙으로 연행됐다. 이어 회의를 주재한 부부장은 ‘반동의 대가’를 들먹이며 상업 완수를 엄포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이 사건이 당 안팎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당국의 예산 집행을 위한 상납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비슷한 시기, 유사한 또 다른 사건이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당에선 3월 말 각 도당 간부들을 소집했다. 역시 회의의 주요 의제는 당대회 사업 예산 집행을 위한 각 도당의 예산 충당 문제였다. 특히 이 부담감은 무역을 젖줄 삼았던 북-중 접경 북부 지역 도당들에게 집중됐다. 그도 그럴것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후 중국과의 공식적·비공식적 무역이 가로 막히면서 북부 지역 도당들은 상납 압박에 시달렸다. 비공식 무역의 핵심이었던 마약 무역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접경을 마주하는 한 도당 각 분야 비서급 간부들 일부가 중앙당에 거칠게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현재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적인 예산 충당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다 결국 중앙으로 붙잡혀갔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러한 고위급 간부 회의에서 발생한 반발 사건은 하부에도 곧바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당대회는 곧 당의 가장 큰 행사다. 이 때문에 내부에선 ‘더 이상 어머니 당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당대회 준비 과정에서 감지된 문제는 내부 반발뿐만이 아니다. 강도 높은 대북제재 탓에 북한 당국 스스로 기존 노선을 변경하는 일도 감지되고 있다. 우리 군과 정부도 예상한 부분이 바로 북한의 ‘핵 이벤트’였다. 부족한 경제적 성과를 벌충하기 위해 북한 당국 스스로 그동안 쌓아 온 군사적 성과를 내세울 수 있고, 이는 곧 당대회를 즈음한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는 당대회 개막 막바지까지 이를 극도로 의식했다.
하지만 필자가 내부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미 4월 13~14일 고위급 집중 회의를 통해 기존의 노선을 전격 변경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4월 21일 리수용 외무상의 방미 이전이다. 당시 리 외무상은 “핵실험 중단은 없다”고 국제사회에 엄포를 놓은 바 있다.
북한의 노선 변경은 4월 초 중국이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계획으로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 정부가 당대회 시기 핵실험을 직간접적으로 예고한 북한 당국에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북한에 전달된 중국의 메시지는 ‘마지막 기회’ 수준이었다고 한다.
결국 긴급 소집된 당시 북한의 고위급 집중 회의에서 핵심 인사들은 김정은을 설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노선 변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김정은의 체제 장악력과 지도력이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한편으론 강력한 외부 압박의 증거이기도 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북한 체제는 이번 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앞서 공개한 일련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기본이 되는 예산의 집행 문제도 그렇지만, 실제 공식석상에서 권력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훗날 김정은 체제에 위협적 요소로 다가올 수 있다. 이 후유증은 곧 김정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리영길 숙청’ 실패 후폭풍…軍도 심상치 않다 다만 김정은이 올 초 리영길의 숙청을 시도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파악된다. 리영길의 숙청 배경에는 올 초 그의 1사단 방문 행사와 관계가 깊다. 리영길이 1사단 방문 당시 사단 관계자 및 장병들은 김정은의 방문과 비견될 정도로 과다한 충성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화려한 환영 행사는 곧 강원도당 보위부를 통해 중앙당과 김정은에 보고됐고, 이 이유로 리영길 숙청을 시도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리영길은 이전 군부 인사와는 많이 달랐다. 리영길은 이전 당 간부들과 달리 비 만경대(혁명 유자녀 출신들의 특수학교) 출신으로 오로지 실력으로 높은 자리를 꿰찬 인사였다. 그에 대한 군 내부의 존경심은 대단했다. 그의 숙청 시도에 대한 군 내부의 반향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이었다. 강원도당 보위부를 중심으로 리영길의 숙청을 위한 예심이 진행됐지만, 군 내부 반향을 고려해 계급 강등 및 격오지 배치 수준으로 마무리됐다. 문제의 핵심은 ‘김정은이 리영길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김정은의 군 장악력에 대한 이상징후가 감지되는 신호인 셈이다. 군 내부에서 김정은의 입지가 후에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반드시 지켜볼 대목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