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친노세력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특단의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돌고 있다. 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이 9월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을 접견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청와대는 ‘바다이야기 게이트’와 김병준 전교육부총리 인사 파문 등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수석급 비서관을 비롯한 일부 참모진의 교체와 정무특보단 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성향 의원들은 통합 모임을 추진하고 있고 8·15 광복절 특사로 정치활동을 재개한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 씨와 신계륜 씨 등 외부 친노사단도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친노세력들의 발빠른 행보는 연말을 전후한 정계개편 및 차기 대선정국 플랜과 맞물려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부가 지난 2002년 대선 때 극적으로 승리한 감격을 다시 연출하기 위해 이른바 ‘어게인 2002년’ 대권 플랜을 극비리에 가동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노세력들이 뭔가 작심한 듯 통일된 계획과 전략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플랜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어게인 2002년’ 대권플랜의 가능성과 정계개편 전망을 진단해 봤다.
“현 구도가 그대로 유지된 정치 상황에서 차기 대선을 치른다면 여권은 필패다.”
19일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여권 중진 A 의원이 던진 일성이다. 노 대통령의 측근이자 선거 기획통으로 통하는 A 의원은 정계개편 시나리오 및 정권재창출을 위한 여권의 묘책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고심하다 익명을 전제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A 의원은 ‘여권 필패론’의 근거로 세 가지 요인을 들었다. 참여정부의 각종 개혁정책의 실패와 그에 따른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끝없는 지지율 하락, 그리고 작금의 어려운 정국을 타개할 뾰족한 대안의 부재가 그것이다.
“앉아서 정권을 내주진 않을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의원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문을 이어갔다. A 의원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의 속성인데 이념과 정책을 달리하는 정치세력에 권력을 그냥 넘겨주겠느냐”며 “친노직계 세력을 중심으로 정권재창출을 위한 모종의 플랜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 의원은 플랜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도 “아직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최상의 플랜을 강구하고 있는 단계”라며 “분당이 불가피 할 경우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색깔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차기주자로 나서고 탈당세력들도 독자적으로 대권노선을 걷다가 대선 막판에 힘을 합치는 전략도 한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A 의원은 또 “정치는 생물인 만큼 언제 어떤 식으로 정치 지형이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며 “여권이 구상하고 있는 대권 플랜도 아직 준비 단계인 만큼 중간에 어떻게 변형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A 의원의 말은 현 정국 움직임으로 볼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마디로 여권 내에 모종의 거대한 움직임이 물밑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A 의원의 말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여권 수뇌부가 현 구도로 정권재창출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하고 분당 후 재결합 등 차기 대선정국을 겨냥한 이른바 ‘어게인 2002년’ 대권플랜 등 특단의 전략을 강구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노 대통령과 친노세력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국내외 사정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31 지방선거 완패 이후 당·청 갈등이 잦아지는 등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했음에도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사수’ 의지를 재천명했고, 이후 여권 내 범 친노세력들이 잦은 회합을 가지며 재결집 필요성에 의기투합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 격인 안희정 씨 등 일부 측근 정치인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고 최근에는 청와대 정무특보단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친노세력들이 연말을 전후한 정치권 빅뱅 움직임과 내년 대선정국을 겨냥해 이미 ‘수읽기’를 끝내고 그 실행단계에 돌입한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이와 관련 친노직계로 분류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L 의원은 20일 기자에게 “당·청 갈등의 한 축이었던 노 대통령이 ‘탈당’ 카드 대신 ‘당 사수’ 입장을 확고히 한 것은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 및 차기 대선구도와 관련한 판세 분석이 끝났기 때문”이라며 “이미 통제 불능인 당과 차기주자들을 상대로 힘겨운 기 싸움을 벌이느니 차라리 불만 있는 세력들은 모두 당을 떠나도 좋다는 복심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L 의원은 또 “분당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에 남는 의원들이 10여 명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끝까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이념을 승계한다는 게 노 대통령과 친노직계 세력들의 일치된 생각”이라며 “외롭고 힘든 여정일지라도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 범개혁세력 결집에 일조할 것”이라 강조했다.
▲ 유시민(왼쪽), 강금실 | ||
다만 분당이 현실화될 경우 열린우리당은 친노세력이 장악할 것이고 당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대권주자로 나설 것으로 이들 소식통들은 관측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 유시민 복지부 장관, 강금실 전 법무장관 등 친노 성향 인사들이 대권경쟁에 합류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친노직계인 김두관 전 최고위원은 18일 모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해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혁규 전 최고위원 등이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우리당 고위 관계자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그 배경을 둘러싼 해석도 분분하다. 기존주자(정동영 김근태) 외에 그동안 여권 주변에서 예비 잠룡군으로 공공연하게 나돌았던 인사들을 거명한 것이라는 원칙론과 함께 영남권 친노세력을 대표하는 김 전 위원이 여론의 추이를 살피기 위해 친노 성향 인사들을 차기주자군에 포함시켜 거론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노세력들이 유시민 강금실 ‘대통령 만들기’ 플랜을 물밑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도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지난 1·2 개각 때 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해 유력한 차기주자군에 합류한 유 장관은 노 대통령과 정치적 이념과 코드가 제일 잘 맞는 인사라는 점에서 친노세력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강 전 장관 역시 노 대통령과 친노세력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지난 5·31 지방선거 전에 강 전 장관이 서울시장 출마를 계속 고사하자 ‘서울시장 선거에 떨어지면 대권에 도전하면 되지 않느냐’는 노 대통령의 권유를 받고 강 전 장관이 출마 결심을 굳히게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강 전 장관은 서울시장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의원들과 가끔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들 측근 의원들을 중심으로 ‘강금실 대통령 만들기’ 플랜이 물밑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정계개편 및 차기 대선정국을 겨냥한 친노세력들의 대권플랜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노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권 핵심부에서는 분당 후 재결합이라는 2단계 대권 플랜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저울질하고 있다. 여야를 망라한 차기주자 간 짝짓기 등 각종 연대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만큼 범여권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A 의원의 말처럼 현 구도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고 분당을 피할 수 없다면 범개혁세력(열린우리당)과 호남·민주화세력(민주당+분당세력 등)이 각자 독자노선을 구축한 뒤 대선 막판에 연대할 경우 그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양측의 후보가 누구이던 간에 정당한 ‘게임의 룰’을 통해 단일화를 이뤄낼 수 있다면 최고의 ‘대권 필승’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게 ‘분당 후 재통합’을 주장하는 인사들의 설명이다.
범여권 후보 간 재통합은 결국 ‘반한나라당’ 전선으로 대선구도를 만들 수 있고 열린우리당 후보는 개혁세력 외에 일부 영남 표심도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02년의 감동을 재연할 수 있을 것이란 공감대가 친노세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각종 연대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여권 분열 여부가 불투명하고 설사 분당이 불가피하더라도 범여권 세력이 열린우리당과 호남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으로 양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정계개편 이후 누가 각 정당의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대선정국은 급변할 수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차기주자간 연대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주류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시할 수도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친노세력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어게인 2002년’ 대권 플랜을 한나라당이 손 놓고 구경만 할 리도 만무하다. 강재섭 대표가 21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여권의 정계개편 시도를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배경에는 차기 대권과 관련한 여권의 수상한 행보를 철저히 감시하는 동시에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강한 의지가 내포돼 있다.
또 한나라당 지도부와 일부 대권주자들이 민주당에 ‘러브콜’을 보내며 이른바 한나라-민주 연대 내지는 정책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여권 주도의 정계개편을 차단하는 동시에 친노세력의 재통합 파트너인 민주당을 먼저 끌어안겠다는 전략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