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전 의장(왼쪽)과 김근태 의장. | ||
정당의 정체성 훼손 및 선거법 위반 논란 등이 상존하고 있어 제도 시행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으나 기존 대권주자와 당원들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계파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기득권 포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 최대 주주로 일찌감치 대권행보를 걸어온 정동영(DY) 전 의장과 김근태(GT) 의장 입장에서는 적신호가 켜졌다. 반면 고건 전 총리 등 범여권 잠룡들에게는 대망론을 부추기는 청량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100% 개방형 경선을 둘러싼 차기주자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릴 경우 수면위로 부상한 정계개편론과 맞물려 여권 분열을 부추기는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으로 가장 곤혹스런 사람은 DY와 GT다. 당원들의 기득권 포기는 곧 두 사람이 그동안 당내에서 구축해 온 대권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사람은 당내 최대 계보인 당권파(DY)와 재야파(GT)를 이끌며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지난 5·31 지방선거 이후 백의종군하고 있는 DY와 당권 장악 후에도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GT가 지금까지 대망론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든든한 당내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완전 경선제가 도입되면서 두 사람이 유지해 온 당내 기득권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물론 현 시점에서 두 사람과 기타 범여권 잠룡들의 유·불리를 명확히 계산할 수는 없지만 기득권 포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람은 DY와 GT가 될 것이라는 분석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들의 지지율은 현재 한 자리 수에 머물고 있어 당외로부터의 충격에 민감한 실정이다. 더구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세력들이 두 사람의 대권행보를 보이지 않게 견제해 온 친노사단이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사실상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권주자로 상정함으로써 만들어진 한 제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제도 시행 과정에서 또다른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오픈프라이머리가 수면위로 부상한 여권발 정계개편 문제와 맞물려 범 여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 여권 일각에서는 코너에 몰린 DY와 GT가 당분간 전략적 연대를 통해 위기정국을 정면 돌파할 것이라는 이른바 ‘김근태-정동연 연대론’도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당내 최대 계보를 이끌며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선의의 대권경쟁을 펼쳐왔지만 5·31 지방선거 이후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백의종군을 결심한 DY는 대권 경쟁자인 GT에게 의장직 승계를 정중히 요청했고 GT는 고뇌 끝에 이를 받아 들였다. 어쩌면 두 사람은 이 때부터 ‘적’이 아닌 ‘동지’로 관계를 재설정했는지도 모른다. 두 사람 모두 한 자리 수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에 위기감을 공감하고 있었고 친노세력들의 세력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뭉치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두 사람을 경쟁 관계에서 동지 관계로 변하게 한 동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GT가 10월 1일 귀국한 DY를 공항으로 직접 마중나갈 방안을 검토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비록 10월 1일 오전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 GT가 참석해 두 사람의 ‘공항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GT는 당초 DY를 마중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당 의장이 전직 의장을 직접 공항까지 나가 마중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내부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체면’ 보다는 ‘실리’를 챙기겠다는 GT의 복심이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DY 측도 GT의 이러한 배려에 고무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DY 측 한 의원은 9월 29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국가적 행사로 GT의 공항 영접이 취소되긴 했지만 현직 의장이 전직 의장을 마중하겠다는 마음 자체가 고마운 것 아니냐”며 “당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전·현직 의장이 상호 협력하고 상생의 정치를 펼쳐 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부 DY 측근들은 오는 10·25 재보선에 DY가 직접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범여권 통합론 등 정계개편론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 원외로 활동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논리다.
DY 측이 검토하고 있는 지역은 지난 9월 14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호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남동을. 이 지역은 유권자의 30%가 호남 출신이어서 한나라당 후보로 누가 나서더라도 6:4 정도로 열린우리당이 우세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DY 측근들은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DY의 출마를 설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야파인 이 전 의원이 GT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공천 과정에서 GT의 의중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위기의식에 공감하고 있는 DY와 GT가 그 해법 차원에서 전략적 연대를 모색할 징후가 감지되고 있는 만큼 DY가 출마를 결심할 경우 GT가 물밑 지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으로 대권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DY와 GT. 두 사람이 오픈프라이머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남아 최후의 결전을 벌일 수 있을지 지금 최대의 고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