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핵실험 파문으로 국정감사가 당초 일정보다 이틀 늦춰진 가운데 이번 국감은 ‘대권주자 흠집내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본격적인 국정감사에 돌입한 여야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밀명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 이후 국민들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북핵 후폭풍’에 쏠려 있지만 정치권은 ‘대어’ 사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국감스타’를 노리는 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상대당 대권주자의 개인비리나 사생활 관련된 자료를 전방위로 취합하는 등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정국주도권 장악과 유리한 대권고지 선점을 위한 여야 수뇌부의 국감 전략도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상대당 유력 대권주자들을 타깃으로 국감 상임위별 공격분야를 분담하는 등 작전에 돌입한 상태다. 파괴력이 큰 차기주자들을 제물로 정국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북핵’ 해법을 둘러싼 각 정당의 이해관계와 차기주자들을 겨냥한 폭로전이 어우러지면서 올해 국감은 대혈투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준비하고 있는 잠룡들의 X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또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지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는 국감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올해 국감은 북핵 사태로 당초 일정보다 이틀 늦어진 지난 13일부터 내달 1일까지 실시된다. 예상치 못한 북핵 파문으로 각 정당의 국감 전략이 다소 수정되긴 했지만 여야 소장파 의원들은 정국 분위기를 확 뒤집을 수 있는 대형 폭로건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국정감사는 정부기관과 산하단체 등을 대상으로 국정의 공정집행 여부를 감사하는 게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야권보다는 여권주자들이 주 타깃이 될 수 있다. 또 전직보다는 현직으로 활동 중인 인사들에 대한 집중포화가 예상되나 여야 소장파는 전·현직을 망라하고 대권주자들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한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과 야권은 이번 국감에서 대북정책을 비롯한 노 대통령과 현 정부의 각종 실정을 집중 추궁하는 동시에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들에 대한 공세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사행성 게임비리 사건을 비롯한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불거진 각종 권력형 비리를 재점화시키는 동시에 여권 내 차기주자들과 실세들의 연루 의혹을 부각시킨다는 방침이다. 야권이 겨냥하고 있는 주요 권력형 비리 사건은 사행성 게임비리, 윤상림 게이트, 김홍수 게이트, JU그룹 사건, 썬앤문 사건, C&그룹(옛 세븐마운틴 그룹)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전략팀은 이번 국감 때 이들 사건들에 대한 의혹을 재조명하면서 여권을 궁지로 몰아넣자는데 공감하고 정기국회 전부터 관련 사건에 대한 자료를 전방위로 취합 해 왔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전략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들 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 배후에 여권 실세와 특정 차기주자가 연루돼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법사위와 문광위, 건교위 등 해당 상임위에서 관련 의혹들을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행성 게임비리 사건과 김홍수 게이트가 터졌을 때 정치권 주변에서는 여권내 차기주자인 A 씨와 핵심 실세인 B 씨, 노 대통령 핵심 측근 C 씨 등의 실명이 나돌았었다. 따라서 이번 국감에서 이들 대형 사건들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과 여권 내 거물급 인사가 연루됐다는 정황이 드러날 경우 여권은 또 한 차례 심한 홍역을 앓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야권이 국감 타깃으로 삼고 있는 주요 인사는 열린우리당 정동영(DY) 전 의장과 김근태(GT) 의장, 예비 잠룡인 천정배 의원과 유시민 복지부 장관 등이다. 이들 인사들은 행정경험과 공정한 대권 경쟁이라는 노 대통령의 차기구상과 맞물려 이미 장관직을 수행했거나 현직 장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야권은 이들 인사들의 장관 재임기간중 실정을 집중 추궁하는 동시에 개인비리 의혹 등 이른바 ‘X파일’ 공개도 불사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DY에 대한 공격에는 통외통위원들이 선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DY가 국감정국 최대 이슈로 부상한 북핵 등 대북정책을 진두지휘했던 통일부 장관 출신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DY는 통일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6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이후 주가가 상승하면서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진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을 면담하고 돌아온 DY는 “북한의 핵 포기 의지는 확고하다고 믿는다”고 호언하면서 “북핵 등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대북문제도 점차 잘 풀릴 것”이라는 긍정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따라서 야권의 통외통 위원들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하는 동시에 DY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DY의 가족사 등 개인사생활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DY는 그동안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선친의 친일행적 문제가 일부에서 계속 언급돼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숙부와의 송사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열린우리당과 호남권 맹주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은 DY 선친의 친일 의혹을 재점화시키는 동시에 집안 어른과 송사를 벌인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의 도덕성 문제를 거론한다는 전략이다.
전·현직 복지부 장관인 GT와 유 장관에 대해선 국민건강과 직결된 복지부의 실정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특히 현직인 유 장관은 입각전 청문회 과정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따라서 야권의 보건복지위원들은 유 장관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면서 복지부 수장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재검증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또 GT에 대해서는 대북정책을 비롯한 여권의 실패한 개혁정책을 들춰내 집권당 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묻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GT 또한 가족의 과거사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권주자 흠집내기 차원에서 야권의 집중포화가 예상된다.
여당 소장파 의원들도 맞불작전으로 대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당이 이번 국감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는 야권 인사는 다름 아닌 한나라당 ‘대권 빅3’로 분류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이다.
이들 ‘빅3’ 모두 당 대표직과 단체장에서 물러난 상황이라 국감을 통해 압박할 수단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정보력 등 여권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이 전 시장과 손 전 지사와 관련해서는 이 두 사람이 재임기간에 발주한 건설공사 등 대형 관급공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와 경기도는 대형 관급공사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로비 의혹 등 각종 구설수가 끊이질 않았다. 서울시의 경우 청계천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뇌물 사건과 상암동 DMC사업 특혜 분양 의혹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지난해 5월 이 전 시장의 측근인 양윤재 서울시 행정부시장과 김일주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을 각각 특가법상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했고, 당시 이 전 시장의 비서관 등 서울시 관련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여당은 당시 청계천 비리 사건과 관련해 국정조사와 특검을 실시하자고 주장하면서 한나라당과 이 전 시장을 압박했지만 검찰 수사결과 이 전 시장의 연루 혐의는 드러나지 않았다.
상암동 DMC 사업용지 특혜 분양 의혹도 끊이질 않고 있다. 최재성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가 한독산학협동단지(KGIP)의 상암동 DMC 입주 계획을 승인한 가장 큰 이유는 독일대학컨소시엄(KDU)이 2억 유로(약 2000억 원)를 투자해 외자를 유치하게 된다는 것이었지만 KGIP의 사업계획서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며 특혜 분양 의혹을 다시 제기하면서 정부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최 의원은 또 “주독한국교육원을 통해 컨소시엄 회원이라는 독일 8개 대학 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4개 대학의 회신을 받은 결과, 일부 대학은 2억 유로 투자건을 모른다고 했고 심지어 컨소시엄 회원이 아니라는 대학도 있었다”며 “2억 유로 투자 사실이 없는데 KGIP의 허위 사업계획서를 근거로 서울시가 용지를 공급해준 것은 특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최 의원은 “서울시가 자본금 2억 9000만 원에 불과한 무자격 업체에 평당 4000만 원을 호가하는 DMC 택지를 1100만원에 공급하고 업체는 상가나 오피스텔 분양을 통해 5000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일요신문>은 KGIP 측의 ‘설립자문위원 명단’을 단독 공개해 또다른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이 명단에는 DY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재계 유력 인사 10여 명이 포함돼 있었다. 따라서 상암동 DMC 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된 건교위와 교육위 국감장은 여야 차기주자인 이 전 시장과 DY를 겨냥한 책임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도 역시 최근 불거진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 등 대형 건설공사 과정에서 정·관계 고위 인사들의 뇌물 수수 혐의가 드러나는 등 커넥션 의혹이 끊이질 않았던 곳이다. 손 전 지사 재임기간에 터진 대표적인 사례는 ‘오포비리’ 사건이다. 박혁규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 실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고 손 전 지사의 측근인 한현규 전 경기개발원장과 김용규 전 광주시장 등 상당수 유력 인사들이 사법처리됐다.
실제로 당시 정가 주변에서는 손 전 지사 등 야권 거물급 인사들이 이른바 ‘오포 리스트’ 명단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손 전 지사 등 다른 거물급 인사의 연루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당 의원들은 관련 상임위를 통해 오포비리를 비롯한 최근 불거진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한다는 방침이다.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국감 전략도 물밑 진행 중에 있다. 우선 통외통위에선 북핵사태로 야권의 전방위 공세가 예상되고 있는 만큼 지난 2002년 11월 박 전 대표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한 사실을 부각시키며 맞불작전을 펼친다는 각오다. 여야 차기주자 중 김 위원장을 만난 사람은 DY와 박 전 대표가 유일하다. 두 사람은 그동안 김 위원장을 면담한 사실을 강조하며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핵 등 대북문제 해결사임을 자임해 왔다. 따라서 여당은 박 전 대표도 이번 북핵파문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나라당의 대여 공세를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여당이 그동안 산발적으로 전개해 온 이른바 ‘박근혜 때리기’를 또다시 시도할지도 관심사다. 실제로 참여정부는 출범 이후 과거사 청산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꺼내들었고 박 전 대표는 그 표적이 되었다.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 문제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지난해 국정원 발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는 ‘박근혜 죽이기’ 차원의 정치공세라며 강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과거사 문제가 박 전 대표의 대권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가 주변에서는 여권 수뇌부가 이번 국감 때 북핵사태로 빼앗긴 정국주도권을 일시에 만회할 수 있는 대형 폭로건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 폭로건에는 야권 특정 대권주자의 사생활과 관련된 충격적인 내용이 담길 수도 있다는 게 정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일부 대권주자는 출생 비밀과 관련한 갖가지 억측이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유포되고 있고 또다른 잠룡은 문란한 사생활 소문이 확산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북핵파문 와중에도 여야 정치권이 상대당 차기주자를 겨냥한 폭로전과 ‘흠집내기’를 시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의도 정가는 태풍전야의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있다. 또 국감 목표물로 지목된 여야 잠룡들은 폭로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국감기간 동안 잠 못 이루는 가을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