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CD·DVD 판매대여업체이자 최고의 라이프스타일기업으로 꼽히는 ‘츠타야(TSUTAYA)’. 츠타야의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65)는 소상인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인물이다. 1983년 작은 서점에서 출발해 지금은 일본 전국에 1400여 개의 츠타야 매장을 운영, 매출액이 무려 연간 2조 원 이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마스다 무네아키 대표. 출처=민음사 ‘지적자본론’
마스다 대표는 자신의 직업을 일종의 ‘기획자’라고 소개한다. 날마다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발상으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13년 전 일찌감치 포인트 카드 사업을 시작했다.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대신, 고객의 구매패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기업에 되파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지금은 편의점과 음식점, 호텔 등 100개가 넘는 업체와 제휴를 맺고 있다.
또 스마트폰과 인터넷서점에 밀려 오프라인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자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도 개척했다. 바로 도쿄 명물로 떠오른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이다. 2011년 마스다 대표는 도쿄 시부야구의 한적한 동네 다이칸야마에 건물 3개를 통째로 쓰는 파격적인 서점을 선보였다.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휴식이 어우러진 복합공간을 지향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가령 요리책 코너에는 식기를 나란히 진열하고, 여행책자 옆에는 관련 영화 DVD가 함께 자리한다. 서점이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베스트셀러 코너를 없앤 대신에 안락한 의자와 탁자를 곳곳에 배치했다. 고객이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몇 시간이고 책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각 장르에 정통한 직원들이 고객의 기분에 맞게 음악과 책도 추천해준다. 이제 츠타야서점은 일본인들에게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으로 손꼽힌다.
#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든다
다이칸야마에 서점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대다수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가뜩이나 출판계가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왜 하필 서점이냐”며 반문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게다가 “조용한 주택가에 대형서점이라니” “쯧쯧 잘 될 리 없다”고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츠타야서점은 큰 성공을 거뒀다. 마스다 대표는 “책을 팔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니 책이 팔리더라”고 성공비결을 밝혔다.
츠타야의 주요 역사. 1983년 오사카 히라카타에서 CD·DVD대여업체로 출발, 카페와 서점이 결합한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 2003년 롯폰기 츠타야, 2011년 다이칸야마 츠타야 오픈. 출처=T-SITE
남들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지만, 마스다 대표는 결국 해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사업모델을 잇달아 제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해 NHK 교양프로그램 <프로페셔널 일의 방식>에 출연한 그의 모습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마스다 대표의 참신한 기획들은 즉흥적으로 떠오른 것들이 아닌, 착실한 작업을 통해 축적되어 나온 결과물이다.
그는 사장이라고 해서 가만히 책상에만 앉아 있지 않는다. 마케팅조사를 거듭하는 건 물론, 틈만 나면 시내 가게를 돌아다니며 유통실태를 살핀다. 딱딱한 정장보다 캐주얼차림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저하게 고객의 입장에서 검토해야 고객이 원하는 걸 알아채고, 단순히 그것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혁신적인 서비스를 낳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객조차 미처 깨닫지 못한 걸 제안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획”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요컨대 마스다 대표가 말하는 기획이란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영은 무조건 빨리 많이 만들어야 성공했다. 하지만 과거의 연장선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넘쳐나는 물건과 서비스 속에서 기업은 고객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고, 제안해야만 살아남는다. 이것이 마스다 대표가 ‘기획’에 매달리는 까닭이다. 오늘도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행복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궁리로 가득하다.
# 어린 시절 왕따, 위성방송사업 실패
또 하나. 3000여 명의 사원을 이끄는 리더로서 마스다 대표가 중요시하는 신념은 “실패를 허용하자”다. 지금은 승승장구하는 마스다 대표이지만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1951년 오사카 출생인 마스다는 토건업을 하는 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 낀 외아들이었던 터라 약간은 소심하고, 더러는 여자애처럼 구는 고분고분한 아들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무척이나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마스다 대표의 과거 사진. 출처=NHK ‘프로페셔널 일의 방식’ 방송화면
그런데 어느 날, 마스다는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기고 만다. 이 흉터로 그는 초·중학교 시절 내내 ‘이지메(집단따돌림)’의 표적이 됐다. 매일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설상가상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힘든 상황에서 어머니는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어 가며,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나약하기만 했던 아들은 어느새 성공을 꿈꾸고 있었다.
먼저 연약한 자신을 바꾸고자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레슬링부에 가입했다. 몸을 단련한 뒤에는 따돌림을 주도했던 친구들에게 당당히 맞섰다.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이때 그는 ‘제 의지로 주어진 환경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패션회사에 입사했고, 32세에 회사를 관두고 츠타야서점을 차렸다.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10년 만에 600개 점포로 늘리는 등 ‘시대의 총아’로 떠올랐다. 거칠 게 없어 보이던 그였지만, 실패도 찾아왔다. 미국에서 시작된 다채널 위성방송을 일본에 도입했다가 재산과 신용, 둘 다 잃는 쓰라린 경험을 맛봤다.
마스다 대표는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 결코 성공을 낙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출 제로에도 경영이 기울지 않도록 계산하는 편이다. 즉 실패를 전제로 사업계획을 세우고, 사원들에게는 항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고 독려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해도 공감을 얻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아예 수확이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실패로 끝나더라도 요인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개선한다면 혁신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믿음에서다. 마스다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는 ‘기획’ 일은 실패투성이다.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사업이 되질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세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준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과거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