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레임덕에 빠져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종이 호랑이’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최근 대규모 정무 특보단을 임명하는 등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시위하듯 보여주고 있다. 당내 통합신당파는 ‘노무현 왕따 작전’을 펴고 있지만 눈도 꿈쩍하지 않는 형국이다. 여당발 정계개편 소용돌이 속에서 엿보이는 노 대통령의 ‘복심’을 분석해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열린우리당 의원들 대부분은 그의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다.”
정치권 인사 A 씨는 노무현 대통령과 오랫동안 개인적 인연을 맺어왔고 청와대 386 측근들과도 친분이 깊어 그들과 사적인 만남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권발 정계개편의 갈등 가운데 ‘노무현 배제’가 핵심이 되고 있는 이유를 ‘달 이야기’를 빗대 표현했다.
A 씨는 “노 대통령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을 여당 의원들처럼 정권 재창출의 시각에서만 보지 않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 6월 노사모 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권 재창출은 내 문제가 아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문제다. 나는 향후 부산 경남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열린우리당 선장 역할에 올인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권 재창출보다는 정치개혁 등 국가적 과제에 올인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 대통령은 그 뒤 8월 노사모 모임에서도 ‘정권 재창출에 관심이 없다’, ‘(민주당과 통합은) 죽어도 안 된다’는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사실상 정권재창출을 포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다. 국가적 과제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본래 목적은 정권을 창출하는 데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두고 “노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동력이 있을 수 있겠느냐.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그럴 듯한 수식어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몽니’를 보면 노 대통령이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핵폭풍으로 작용할 여지는 충분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천정배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결국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민주당과 통합 쪽으로 가겠다는 얘기 아니냐. 천 의원은 천 의원대로 갈 길이 있고, 나는 내 갈 길이 따로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의 ‘내 갈 길’이란 무엇일까. 열린우리당 친노그룹과 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을 통해 ‘내 갈 길’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 대다수가 떨어져 나가 통합신당을 만들더라도 내년 대선 전까지 ‘열린우리당 사수파’와 함께 소수정당을 이끌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외부선장을 영입해 리모델링도 하고 제3의 후보도 깜짝 출현시킬 것이다. 제3의 후보에는 박원순 정운찬 씨 외에 영남후보론의 명분을 등에 업은 이수성 전 총리도 거명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그들에 대해 구체적 영입작업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이들은 아직까지 한번도 노출이 안 된 카드라는 점에서 노 대통령은 이들을 통해 정권 재창출의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난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의했던 대연정론이다. 이 배경에는 ‘여야 권력 분점을 통한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있다. 비록 이 제의가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유력 주자가 있다면 대선 막판에 극적인 연대를 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도 포함된다. 참여정부 내내 여야 갈등을 지켜본 노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대선에서 ‘연정’을 통해 이뤄진 거대정당의 출현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사수파는 대선에서 지더라도 18대 총선에서 살아남아 권력의 한 축으로 남을 것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최근 노사모 회원들에게 “언론 정치 환경이 선진국 수준이 되도록 임기가 끝나도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 그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외치는 ‘마이 웨이’는 민주당과의 통합이 아니라 소수로라도 열린우리당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