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훈 전 의원은 범여권의 신망이 두터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2004년 대통령 탄핵 철회를 요구하던 삭발 시위 당시. | ||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눈길을 끄는 모임이 있었다. DJ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며 반평생 동고동락을 해온 ‘동교동계’ 모임과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전직 의원들로 구성된 ‘이목회’(二木會, 매달 두 번째 목요일에 만나는 모임이란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가 나란히 있었다. DJ의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레 이들도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모임은 공식적으로는 친목모임이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모임을 가질 것으로 알려져 정계개편 과정에서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동교동계 모임이었다. 동교동계는 국민의 정부가 끝나가던 2003년 1월 DJ가 “동교동계라는 말이 나와서도 안 되고 동교동계라는 모임이 있어서도 안 되며, 이를 이용해서도 안 된다”라는 말이 있은 후 역사적으로 해체됐고 정치적으로 소멸했다. 그런 이들이 다시 ‘동교동계’라는 이름으로 회동을 했으니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눈길을 준 것은 최근 정계개편에서 ‘DJ변수’ 때문이다. 누구보다 DJ의 의중을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움직임은 바로 DJ의 의도로 비춰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날 모임에는 민주당 한화갑 대표, 배기운 사무총장, 정균환, 김옥두, 남궁진, 최재승, 윤철상, 이협, 박주선 전 의원과 박준영 전남지사, 지난 9월 의원직을 상실한 DJ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모임에 참석한 윤철상 전 의원은 “단순한 친목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식사를 함께하는 정도다. 지난달에는 재보선 때문에 못 만나 이번에 모임을 가진 것”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날 오찬을 함께 하며 향후 정계개편과 민주당의 진로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윤수 전 의원은 “우리가 움직인다고 정계개편이 되겠나. 다만 DJ의 뜻은 이어받아야하지 않겠나. DJ가 이 시점에 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겠나”며 “우리가 두 번이나 정권을 창출했고 아직도 민주당 당원이니 정계개편의 한 매개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교동계는 열린우리당에도 포진해있다. 문희상, 배기선, 정동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열린우리당이 창당하면서 정치적 입장을 달라졌지만 정계개편을 앞둔 현 시점에서 이들 대부분은 통합신당론에 찬성하고 있다. 당초 이날 모임에 참석할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던 이들과 모임에 참석한 이들 간에 그리 거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설훈 전 의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당 분당을 반대하고 2004년 민주당에서 ‘대통령 탄핵 철회’를 요구하며 탈당,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범여권의 신망이 두텁고 전략통으로 꼽힌다. 설 전 의원은 문희상, 배기선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언제든지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막후의 메신저라고 정계에서는 보고 있다.
설 전 의원은 “여권 일각에서 노 대통령을 배제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모두 의미 없는 일이다. 큰 승부를 앞두고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야지 친노 배제를 운운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임기가 끝나면 자연히 정치에서 손을 뗄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한화갑 대표도 분당 책임론 운운하고 있지만 그건 민주당 대표다 보니 민주당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민주당 측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이윤수 전 의원도 “모임에서 한 대표에 대해 여러 조언도 많이 해줬다. 호남에만 의존해 정치해선 안 되고 포용정책에 대해 오락가락한 것 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동교동계는 조정과 가교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지만 이들은 스스로의 한계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한 인사는 “어차피 통합은 현역의원들이 하는 것이다”며 말을 아꼈다. 또한 고건 전 총리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느 특정후보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틀만 만들어 놓고 국민들이 심판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지난 8월 DJ 도쿄 피랍 생환 33주년 기념행사에서도 한 자리에 모인데 이어 지난 2일 열린 ‘김대중 도서관 후원의 밤’ 행사에서도 우의를 다졌으며 다음달 열리는 ‘DJ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정치적으로 결속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최근 이목회의 움직임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목회는 16대 국회의원들의 친목 단체로 열린우리당의 조성준 허운나 김성호 전 의원과 민주당의 배기운 설훈 전갑길 김성순 전 의원 등 2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다.
배기운 설훈 전 의원의 경우 이날 있었던 동교동계 모임과 이목회에 모두 참석했다. 이목회는 이날 추미애 전 의원을 초청해 특강을 들었다. 추 전 의원은 “이 자리에는 분당을 막으려 애쓰며 아픔을 나눴던 분들이 있지만 감정이 대통합이라는 대의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분당의 책임과 통합은 별개라는 말이었다. 모임에 참석한 황창주 전 의원은 “민주세력 대통합은 국민들의 요구다. 대통합에 이목회도 힘을 모아야 된다. 그 동안 관망만 해왔지만 ‘이젠 전면에 나서야하지 않나’라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황 전 의원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헤쳐모여식’ 통합신당에 동의하며 ‘통합신당 추진위원회’ 구성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목회는 12월 모임에 민주당 한화갑 대표를 초청해 특강을 들을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한물간 정치인들이 공천이나 받아보려 하는 것 아니냐는 싸늘한 눈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의도에 몰아닥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서 이들 전직 의원들이 나름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