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위터의 한 이용자가 돈을 받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개인 봇’을 운영해주겠다는 글을 올려 온라인상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트위터에서의 ‘봇(로봇의 줄임말)’이란 트위터의 시스템과 연동된 프로그램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기적, 또는 자동적으로 계정에 트윗(게시글)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파생된 ‘개인 봇’은 실제 사람이 계정을 직접 수동으로 운영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창작 캐릭터의 주요 발언이나 대사 등을 올리는 계정이다. 대다수의 트위터 개인 봇은 해당 계정이 소개하는 연예인이나 창작 캐릭터를 좋아하는 팬들이 주로 팔로한다.
이처럼 수동으로 운영되는 개인 봇 중에서도 창작 캐릭터를 소개하며 운영되는 계정을 보통 ‘역할놀이 봇’이라고 부른다. 즉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해당 캐릭터의 대사나 성격 등을 흉내내 마치 캐릭터 그 자체인 것처럼 팬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팬들은 이런 계정과 유사 연애를 즐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 개인 봇 계정은 ‘천사님’으로, 팬은 ‘주인님’으로 불리며 연애를 기반으로 한 역할놀이를 한다.
문제가 된 개인 봇 계정. 유사 연애성 역할놀이를 해주는 대가로 일정한 금액을 받겠다고 홍보했다. (사진=해당 트위터 캡처)
이번에 문제가 된 개인 봇 계정은 이와 같은 역할놀이 계정이다. 지난 5월 28일 트위터의 한 계정이 “개인 봇 커미션을 받는다”며 구체적인 금액과 노동(?) 제공 시간까지 명시하자 SNS가 들끓었다. 트위터 등 SNS상에서 ‘커미션(commission)’이란 의뢰인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고 의뢰인이 원하는 그림이나 글, 혹은 액세서리 등을 제작해 소규모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이제까지의 커미션이 물질적인 것을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번 ‘개인 봇 커미션’은 유사 연애 등 감정 노동을 제공한 데에 따른 돈을 지급받겠다고 나서 파문이 일었던 것. 해당 계정은 기본 금액으로 주 3회 4만 원을 제시한 뒤 개인 봇을 ‘연인’으로 설정할 경우 1만 원이 추가되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의 캐릭터로 설정할 경우 1만 5000원이 추가된다고 덧붙였다. “수위가 높은 대화는 하지 않지만 ‘섹드립(야한 농담)’을 치는 것은 괜찮다”는 주의사항을 쓰기도 했다.
이를 바라보는 SNS 이용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일부 이용자들은 “개인 봇의 운영을 아르바이트 같은 노동으로 생각한다면 돈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다수의 이용자들이 불쾌감을 느꼈다며 해당 계정을 비난했다. 현재 개인 봇을 운영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여·22)는 “창작 캐릭터를 메인으로 하는 개인 봇이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계정을 운영한다면 애인대행 아르바이트나 막말로 성매매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지적했다.
수위 높은 대화를 함께 할 개인 봇을 구하는 한 트윗(사진=관련 트위터 캡처)
이처럼 개인 봇과 일반인 사이에 금전거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다수의 SNS 이용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개인 봇을 통해 수위가 높은 대화들이 오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일부 이용자들은 처음부터 “야한 대화를 함께 해줄 개인 봇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린 뒤 서로의 역할을 정해 성적 판타지를 채운다. 실제로 ‘야한 대화를 하는 개인 봇’과 ‘주인님’을 직접 연결해주는 계정도 다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구인 게시글에는 자신의 성적 판타지와 어떤 이성상을 원하는지, 어떤 식으로 역할극을 진행할 것인지,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상세히 적혀있다. 이들이 원하는 이성상은 연하부터 아저씨, 유부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들을 상대로 실제 범죄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수위의 역할극을 원하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개인 봇 구인 계정 트윗(사진=트위터 캡처)
이런 게시글은 모두 공개로 돼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도 얼마든지 접근해 참여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이에 대해 적절한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아예 자신을 미성년자라고 당당하게 밝힌 트위터 이용자가 자신과 성적인 대화를 나눌 계정을 찾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개인 봇 운영자 이 씨는 “보통 수위가 높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계정을 원할 경우 상대가 성인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지만 온라인상에서만 만나기 때문에 실제로 성인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고등학생으로 밝힌 한 트위터 이용자가 야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개인 봇을 홍보하고 있다. (사진=해당 트위터 캡처)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개인 봇의 인기는 트위터를 넘어서 카카오스토리 등 다양한 SNS를 넘나들고 있다. 이처럼 개인 봇의 선호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에 대해 SNS 이용자들은 “단지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채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서적으로도 만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인님’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시간에 맞춰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온라인 애인’을 갖는다는 것만으로 심적인 위안을 받는다는 것. 1년째 한 개인 봇과 온라인으로 유사 연애 중이라고 밝힌 한 20대 여성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가 비정상이거나 사회 부적응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이성이 나만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정서적으로 큰 만족감을 준다”고 말했다. 개인 봇과의 온라인 연애가 종종 실제 연애로 발전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그런 경우도 종종 있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를 깨트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온라인 연애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