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열린우리당 창당 3주년 기념식에서 김근태 당의장을 비롯한 당내 인사들이 축하 촛불을 끄고 있다. 10%대의 낮은 정당 지지율에 당내 계파들의 갈등 속에서 위기에 처한 열린우리당의 해법이 주목된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처럼 당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만큼 “나라도 살고 보자”는 개인플레이도 심심찮게 감지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당 안팎에서 이른바 ‘탈당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수도권 5~6명 충청권 3~4명 호남권 2~3명 등 모두 10여 명이 고건 신당이나 한나라당행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탈당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의원들은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을 떨쳐버리기 위해 여권 핵분열이 시작되는 시점을 전후해 탈당을 결행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 탈당설’의 진상 및 그 실현 가능성을 진단해 봤다.
“이제 더 이상 미련이 없다.” 14일 기자와 만난 열린우리당 중진 A 의원이 던진 일성이다.
기자는 당초 열린우리당 비대위원인 A 의원을 통해 지도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 문제 등과 관련한 궁금증을 듣기 위해 만남을 요청했다. 하지만 A 의원은 기자에게 어려운 당내 분위기를 화두로 꺼내며 정계개편과 관련한 제 계파들의 중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속내를 내비쳤다.
A 의원은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비대위를 중심으로 당의 진로 및 정계개편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미 힘이 빠진 비대위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일부 비대위원들이 당내 계파들을 접촉하며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푸념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각 계파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고 있어 이를 통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모두가 만족하는 정계개편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결국 분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A 의원은 이런 분석과 함께 놀랍게도 비보도를 전제로 당내 일부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을 언급했다. “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금배지다. 자신의 정치생명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정계개편이나 정권재창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정권재창출은 명분일 뿐 대다수 의원들의 시선은 이미 차기 총선가 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이 보장된다면 언제든 배를 갈아 탈 수 있는 게 정치인의 현주소”라고 A 의원은 설명했다.
누가 탈당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A 의원은 “구체적으로 실명을 밝힌 순 없다. 열린우리당 간판으론 차기 총선 승리가 불안한 인사들이 탈당을 고려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A 의원의 말처럼 최근 여당 안팎에선 뒤숭숭한 분위기와 맞물려 ‘탈당 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의도 국회에 파견된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탈당파 의원들의 실명이 꽤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15일 기자와 만나 “열린우리당내 일부 의원들이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며 “수도권을 비롯한 충청권과 호남권 등에서 모두 10여 명이 ‘탈당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귀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비교적 지역색이 얕은 정당으로 평가받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지난 총선 때 ‘지역주의’ 벽을 극복하고 원내 1당으로 자리매김 한 배경에는 ‘탄핵’이라는 핵탄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차기 총선에는 다시 ‘지역 패권주의’가 부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불안한 의원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이미 10% 대로 추락했고 수도권을 비롯한 충청권과 호남권에서조차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밀리고 있다. 지난 10·25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또다시 완패를 당했다는 사실은 여당이 처한 어려운 정치 입지와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현재 여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탈당 리스트’에는 수도권 5~6명, 충청권 3~4명, 호남권 2~3명 등 모두 10여 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인사들은 여당발 정계개편이 본격화되면 그 틈새를 노려 고건 신당에 합류하거나 한나라당행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도권 의원 중에는 관료 출신에 보수성향이 짙은 Q, L, 또다른 L, A 의원 등이 한나라당을 검토하고 있고, 고건 전 총리와 가까운 J, H, A 의원 등은 고건 신당이 현실화 될 경우 합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자민련 해체 이후 지역맹주 다툼이 치열한 충청권 의원들도 선택에 고심하고 있다. 이들 충청권 의원들은 정계개편은 물론 자신의 향후 거취 문제와 관련해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불안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계개편 방향과 관련해서는 ‘재창당론’보다 ‘통합신당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금자리를 찾겠다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호남권 의원들의 진로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당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론 외에 호남권을 중심으로 한 ‘고건 신당’에 이어 노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역할론에 기댄 ‘영호남 대통합론’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등 범 여권세력을 끌어안는 통합신당론을 지지하자니 ‘도로 민주당’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창당 초심만 강조하자니 차기 총선이 불안한 게 이 지역 의원들의 솔직한 심경이다. 여기에 호남의 상징인 DJ가 노 대통령과의 회동 이후 정계개편의 한 축을 형성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호남권 의원들은 당내 대권주자인 정동영(전북) 전 의장과 천정배(광주·전남) 의원을 중심으로 일단 행동을 통일한 후 범여권 정계개편 과정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광주·전남권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호남 민심이 민주당으로 기운 만큼 이곳저곳 눈치 보지 말고 민주당에 합류한 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개혁세력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전남 해남 출신인 최재천(서울 성동갑) 의원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합신당 창당에 대해 노 대통령과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표명한 반대 입장을 비판했다. 최 의원은 1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 창조적 파괴를 통한 새로운 대안세력으로의 진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도로 민주당’이라는 언어 프레임에 가두려는 ‘정치적 수사’ ‘정치공학’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통합신당 반대론에 제동을 걸었다.
또 광주 지역의 한 초선 의원도 16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일부 친노세력들이 통합신당 논의에서 비단 민주당만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지역주의 회귀 반대’를 명분으로 정계개편 주도권을 쥐겠다는 나름의 전략”이라며 “호남 의원들은 결코 친노파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빠진 호남권 의원들은 차기 총선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으며 열린우리당의 정계개편논의가 쉽게 가닥을 잡지 못할 경우 고건신당이나 영호남 대통합론을 지지하든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일부 호남권 의원들의 조기 탈당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과 북핵 해법 등 민감한 현안문제를 둘러싼 당·청간, 계파간 앙금이 깊어지고 있는 것도 탈당설을 부추기고 있다.
여권 내 유력한 차기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전·현직 의장과 천정배 의원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실정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이들 차기주자들의 부동산 정책 비판과 당내의 문책 요구가 빗발치자 청와대는 추병직 건교부 장관 등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3인의 사표를 수리했으며 이는 노 대통령 임기 말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열린우리당의원들의 대정부, 대청와대 공격은 야당 의원들 못지않다. 한광원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유 장관이 열린우리당의 정기를 다 가져가서 우리당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유 장관이라도 잘 돼서 참여정부를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고 독기어린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원내공보부대표인 노웅래 의원은 ‘창당 3주년을 보내며’란 제목의 글을 당 홈페이지에 올려 “한꺼번에 개혁하려고 너무 덤벼 과정에서 무리가 따랐다”며 “국민을 편하게 하기보다는 불편하게 했고, 때로 고통을 안겨드렸다”고 고백했다. 김근태 의장 비서실장직을 사임한 이계안 의원도 “무엇을 못했는지를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는가 하면 송영길 의원은 의정일기에서 “국민 참여는 둘째 문제이고 여당 국회의원 참여도 쉽지 않은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한다면 참여라는 말의 의미가 왜곡될 것”이라고 청와대의 태도를 비판했다.
야권 일각에선 “‘레임덕’이란 암 세포가 비단 노 대통령에게만 침투한 게 아니라 열린우리당과 여권 전체에 퍼져 누가 먼저 사망하느냐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당·청 갈등이 이제 치유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으며 동시에 당·청이 본격적인 ‘이별연습’에 돌입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여당 의원 10여 명 탈당설’도 결국 여권이 처한 어려운 정치상황 및 분열 국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계개편이니 정권재창출이니 하는 논쟁 이면에는 의원 개개인의 정치생명 연장 전략이 숨겨져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 정치사에서 ‘철새’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는 사실이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더 하고 있다.
현재 ‘탈당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들이 언제 어떤 명분으로 탈당을 감행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극도의 혼란기를 맞이하고 있는 여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설이 언젠가는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시기는 여당발 정계개편 뇌관이 폭발하는 시점이 될 것으로 정치권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