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주자로서의 행보를 연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친박계 사이에 최근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일요신문DB
반 총장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여론 역시 호의적이다. 반 총장은 차기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대부분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일보>와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6월 5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반 총장은 33.0%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2위인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16.8%)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치다. 한 달 전 발표된 조사와 비교해 봐도 반 총장 지지율은 10%포인트 상승했다.
‘반기문 대망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지율 1위 반 총장은 이제 더 이상 대권의 변수가 아니다. 명실상부한 상수다. 반 총장 스탠스에 따라 여야 차기 구도가 요동을 칠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반 총장 본인이 대권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대망론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물론 지금의 지지율 1위는 언제든 꺼질 수 있는 ‘신기루’나 다름없다. 그러나 반 총장이 대선의 핵심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소 주춤해 보이던 반 총장의 재부상에 친박계는 내심 쾌재를 부를 듯하다. 친박계가 반 총장을 ‘김무성 대항마’로 일찌감치 준비해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 총장은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회동을 가졌고,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핵심 친박 의원들도 반 총장을 직접 만나 향후 거취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한 친박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반 총장과 친박 간 라인은 이미 구축돼 있다. 그동안 친박 내에서 흘러나왔던 대권 전략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외치·총리 내치’를 골자로 하는 분권형 집권제나 충청대망론, ‘충청+TK 연합론’ 등 모두 반 총장을 전제로 하는 시나리오다. 이는 친박이 일찌감치 반 총장을 대선 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 총장 몸값이 올라가면 친박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도 많아진다. 그런 측면에서 친박 관계자들은 반 총장의 지지율 급상승을 기분 좋게 보고 있지 않겠느냐.”
그런데 친박 내부에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반 총장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다. ‘반기문 대체재’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린다. 그 밑바닥엔 반 총장을 믿기 힘들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박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의 한 원로 인사는 “반 총장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다. 우리 쪽 문제는 아니다. 반 총장 쪽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친박계는 반 총장에게 일종의 ‘로열티’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권 주자로 옹립해주는 대신 ‘친박 대통령’임을 명확히 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반 총장과 친박 사이에 불협화음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친박 원로 인사는 “어찌됐건 반 총장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인 것은 친박 아니냐. 반 총장은 이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외교관 출신이라 그런지 자꾸 이런저런 협상 카드로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면서 “‘마이웨이’를 선택한다면 조직이 없는 반 총장은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 측은 서두를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지율 1위를 석권하는 등 몸값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주판알을 두드리며 정치적 셈법을 따져보겠다는 얘기다.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12월까지인 만큼 시간적으로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 핵심부가 조급해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반 총장 측을 돕고 있는 한 외교관 출신 인사의 말이다.
“방한 후 지지율 급상승이 반 총장에게 자신감을 줬다. 물론 여권 주류인 친박의 지원은 조직이 전무한 반 총장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친박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과연 득표에 도움이 될지 이제는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반 총장은 비박계도 선호하고 있다. 또 야권에서도 원하는 세력이 있다. ‘친박 아바타’가 되느니 본인이 직접 결정을 해서 주도권을 잡고 가겠다는 게 반 총장 복심이다.”
반 총장 진영에선 전국 조직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후원 세력을 단일화하는 게 목표다. 이는 정치 기반이 전무한 반 총장의 선택지를 더욱 넓혀줄 수 있는 호재다. 동시에 친박으로선 악재다. 앞서의 반 총장 측 인사는 “반 총장이 혈혈단신으로 기존 정당에 들어가겠느냐. 본인의 조직과 사람이 있어야 대세론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일단은 세 구축에 공을 들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동안 반 총장에 ‘올인’하다시피 한 친박계는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반 총장과 틀어질 경우 그동안 구상해왔던 대권 전략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반 총장의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아군이 못 된다면 출마 자체를 막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 총장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이 주를 이르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친박 핵심부가 컨트롤하기에 반 총장 입지가 많이 올라간 게 사실이다. 반 총장이 지금까진 비상장주였다면 지금은 명실상부 장내 황제주 중 하나다. 당연히 반 총장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것이고 이는 친박과의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 친박과 반 총장 측간에 본격적인 수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점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