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빛가람혁신도시 한전 본사 전경
[일요신문] 정성환 기자 =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한국전력이 감전사 논란을 불렀던 ‘직접 활선공법’을 25년 만에 폐지하기로 발표했으나 불과 이틀 만에 근로자 감전 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두고 전국건설노조와 업계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12일 오전 10시 50분쯤 광주 북구 각화동 거리에서 전선 교체 작업을 하던 근로자 이모(31)씨가 감전돼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뒤 서울로 긴급 후송됐다.
이 씨는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전선을 교체하는 ‘직접 활선 공법으로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상태다.
한전이 ‘직접 활선공법’을 폐지하기로 발표한지 채 48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공법으로 작업을 하다 감전을 당한 것이다.
한전은 지난 10일 지난 25년간 시행된 직접 활선공법을 원칙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대신 전선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바이패스 케이블 공법을 가능한 활용하고 장비 설치가 불가능한 지역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직접 활선 작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건설노조가 줄기차게 폐지를 주장한 ‘직접활선 공법’은 전기를 끊지 않고 시공하는 ‘무정전 이선공법’으로도 불린다. 정전 피해를 줄이고 작업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장점 때문에 도입됐다.
그러나 이 공법은 2만2천V의 고압전기가 흐르는 전선에 ‘절연커버’만 씌운 채 작업이 이뤄지는 관계로 커버가 벗겨지면 감전에 따른 사망·부상 등의 사고가 속출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감전사 등 사고 위험이 커 대체 방식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활선공법 때문에 13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고 140명이 화상, 손목·팔 전단 등의 사고를 당했다.
건설노조 측은 공법이 도입된 이후 2년 동안 55명이 감전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은 작업자의 안전을 위한 기술개발과 시스템 보완에 5년간 약 2천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작업자가 전선을 직접 만지지 않고 절연 막대를 이용해 작업하는 ‘스마트 스틱(Smart Stick) 근거리 활선공법’과 ‘미래형 첨단 활선로봇공법’도 개발할 예정이다.
그러나 건설노조와 현장에서는 한전이 이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않아 ‘공염불 대책’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공법을 당장 채택하기 위해선 현재 팀당 8명인 작업 인력을 10명으로 늘려야 하고, 바이패스용 케이블, 개폐기 등의 장비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광주전남 한전 협력업체의 경우 대부분 등록 당시 활선공법을 시공 공법으로 선택해 ‘스마트 스틱’, ‘케이블’ 등 고가의 자재와 공구를 제때 구하지 못해 새 공법 채택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협력체들은 최근 한전이 내려 보낸 직접 활선공법 폐지 지침에도 불구하고 이 공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한전 대책 따로, 현장 시공 따로인 셈이다.
실제 <일요신문>의 취재결과, 광주전남 72개 업체 중 71개 업체가 기존 공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선 한전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 비난 화살을 비켜가기 위한 ‘물타기 카드’로 졸속으로 발표했다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장 사정을 모르는 탁상공론식 대책이다. 공문만 내려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면서 “협력업체 등의 참여 저조로 당장 실효를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책 중에는 “장비 설치가 가능한 지역을 전제로 이 공법을 채택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직접 활선작업을 그대로 시행한다”는 ‘애매모호한 문구’도 들어 있어 ‘눈가리고 아웅’식 대책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거야말로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상석하대(上石下臺)’아니겠냐”면서 “‘불가피한 경우’라는 문구가 모호해 이를 확대 해석할 경우 얼마든지 활성공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광주전남본부 관계자는 ”한전은 직접 활선공법을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실행 방안은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며 ”사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한전의 발표는 공염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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