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여옥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사실 여부를 떠나 한나라당 내에서도 전 의원의 발언에 대해 대체로 “전 의원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전 의원의 발언 이면에 이명박-박근혜 간의 알력 다툼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전 의원의 발언이 박 전 대표 측 내부 단속용이며 이 전 시장 측에 날리는 견제구라는 것. 과연 전 의원의 발언 뒷면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사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 한나라당을 기웃거린다는 소문은 한 달 전부터 여당 내에서 나돌던 것이었다. 주로 지역에서 민심을 잃은 충청권 의원들이 다음 총선을 보장받기 위해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은 한나라당 입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요신문>도 지난 11월 29일자(758호) ‘열린우리당 탈당 리스트 10여 명’ 제하의 기사를 통해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탈당설의 실체를 게재한 바 있다. 당시 취재결과 열린우리당 탈당 리스트에 거론되고 인사는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등 모두 10여 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인사들은 한나라당행을 비롯한 고건 신당 합류와 민주당 입당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전 의원의 발언은 이런 이야기들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작 실명이 거론되는 의원들은 모두 언론을 통해 “근거 없는 헛소리” “금시초문이다” “제안을 받은 적도 없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과거 정치공작이 난무하던 시대에 주로 쓰던 아니면 말고식 정치공작이다”라며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다른 당 의원들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하는 정치술수는 국민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원혜영 사무총장도 “전 의원은 ‘공작녀’라는 오명을 쓰지 않도록 발언해 주길 당부한다”라고 말했고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전 의원의 발언이 불쾌했지만 전 의원의 발언이 우리당 내부를 단속시켜 준 효과도 있었다”라고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 의원을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이슈로 변질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이명박 간의 알력 다툼의 양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의 출발점은 이 전 시장이 영남의 한 중진의원에게 ‘한나라당으로 오려는 여당 의원이 누구인지 파악해달라’고 부탁했다는 풍문에서 시작한다. 거론되는 여당 의원들은 대부분 관료 출신들로 지역별로는 인천 일부와 충청권 의원들이다. 특히 충청권 의원들이 7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박 전 대표에 비해 열세인 이 전 시장으로서는 충청권 공략 차원과 외연 확대 차원에서 이들의 영입 가능성을 타진할 만하다는 내용이다.
▲ 이명박 전 시장 | ||
충청권 여당의원의 입장에서도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압승한 곳으로 한나라당 의석 수가 총 24석 중 3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은 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지지를 얻고 있는 지역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한나라당의 기반이 강한 충청권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충청권이 원래 보수적이고 관료 출신 의원들은 정치색도 덜하니 다음 총선에서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한나라당 쪽으로 고개가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들 여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보장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소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한나라당 내 충청권 원외 당원협의회장(옛 지구당위원장)들이다. 이 원외 당원협의회장들 대부분은 박 전 대표에게 공천장을 받았거나 박 전 대표가 재임하던 시절 임명장을 받았던 친박 성향의 인사들이다. 지역에서 이런 말들이 오가자 친박성향의 전여옥 의원이 이 전 시장 측에 견제구를 던지며 이 지역 원외 당원협의회장들에게 ‘안심하라’는 사인을 보낸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측도 “영입은 당 공식 창구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 이 전 시장이 당 대표도 아니고 당직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니다”며 “유력한 대선주자이지만 아직 정치권 밖에 있는데 영입의 주체가 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 전 시장의 조해진 공보특보도 “그런 움직임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다. 이 전 시장도 전 의원의 발언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며 “평소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다른 기류도 읽힌다. 당의 한 인사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11명이 한나라당으로 들어와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외연확대와 세몰이 차원에서 여당인사 영입을 고려해 볼 수도 있지 않나. 물론 시기적으로 앞서기는 하지만 때가 되면 고려해 볼 수도 있는 문제인데 굳이 지금 ‘절대 안 된다’라고 말할 필요까지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또한 박 전 대표도 전 의원의 발언 이틀 후인 지난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입당을 희망하는 여당의원들 문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해 전 의원의 발언을 뒤집었다. 박 전 대표 측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맞다면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사실상 문호를 열어두겠다는 의미다.
늘 선거철이 다가오면 ‘철새 정치인’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여권이 처한 어려운 정치상황을 감안하면 물밑에서 얼마든지 활동이 시작됐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정치권에서 이들 철새 정치인의 활동도 하나의 정치다. 다만 정치인들의 계산법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