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가 15연승을 했다. 6월 1일 창원 두산전에서 시작돼 19일 수원 kt전까지 이어졌다. 21일 창원 한화전에서 2-8로 패하면서 16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1위 팀을 꺾고 시작된 연승이 최하위 팀에 지면서 끝났다. 그래서 공은 둥글고, 야구는 모른다. NC의 연승 행진은 6월 내내 야구계의 화제였다. 과거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또 다른 연승의 역사도 NC 덕분에 재조명을 받았다.
2010년 5월 4일 넥센을 3-0으로 제압하고 16연승을 기록한 SK의 김성근 감독이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김 감독은 연승 행진을 이어갈 당시 수염을 자르지 않았다. 연합뉴스
15경기를 연속으로 이기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야구처럼 변수가 많은 게임에선 더 그렇다. 35년째를 맞는 KBO리그에서 15연승 이상이 나온 건 단 네 차례. 그것도 SK가 2회, 삼성이 2회를 각각 해냈을 뿐이다. 김경문 감독은 두산 사령탑 시절이던 2005년과 2008년에 두 차례 9연승을 해본 게 최다였다. 올해 두 번째 팀에서 15연승이라는 감격을 누렸다.
이보다 더 놀라운 건 NC보다 더 오래 이긴 팀이 있었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최강팀이었던 SK다. SK는 2009년 8월 25일 문학 두산전부터 이듬해인 2010년 3월 30일 잠실 LG전까지 총 22경기를 내리 이겼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위기감이 연승을 만들었다. SK는 2007년과 2008년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2연패했다. 그러나 2009년에는 8월 24일까지 정규시즌 3위로 밀려 있었다. 1위가 KIA, 2위가 두산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연승의 역사는 바뀌기 시작했다. 8월 25일, 두산과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나주환의 끝내기 안타로 3-2 역전극을 펼친 게 그 출발점이었다.
그 후 SK는 정규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마지막 20경기 성적이 19승 1무에 달했다. 13연승 이후 9월 13일 잠실 LG전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다음 날부터 다시 승리 행진을 이어갔다. 동시에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을 ‘19’로 늘렸다.
# 삼성 16연승, SK 이전까지 최다
SK 이전에는 1986년 삼성의 16연승이 최고였다. 무려 22년간 역대 최다 연승 기록으로 군림했다. 삼성이 연승 행진을 펼치던 당시, 프로야구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치러졌다. 전기와 후기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는 방식이었다. 삼성은 연승이 시작되기 직전인 5월 26일까지 23승 15패로 전기리그 3위였다. 1위 해태(28승 1무 11패)에 4경기 차로 뒤져 있었다.
삼성은 아예 전기리그 우승을 포기하려 했다. 전열을 재정비해 후기리그 우승을 노려보자는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그 시점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연승 행진이 시작됐다. 5월 27일 대구 OB전부터 전기리그 최종전인 6월 14일 잠실 MBC전까지 16연승을 내달렸다. 반면 해태는 그 기간 동안 6승 1무 7패에 그쳤다. 연승이 끝나자 삼성은 오히려 해태에 4경기 차로 앞서 있었다. 결국 전기리그를 39승15패(승률 0.722)로 마감했고, 1위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따냈다.
삼성은 후기리그 개막전인 6월 26일 대구 청보전에서 17연승을 노렸지만 상대 선발 투수인 재일교포 김기태에게 막혀 1-3으로 졌다. 그렇게 중단됐던 기록이 2000년대 후반에야 SK에 의해 깨진 것이다.
# 19연승으로도 우승 못한 SK, 다음 시즌 개막 3연승
삼성은 결국 전기 리그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SK는 19연승으로 시즌을 마치고도 정규시즌 1위가 되지 못했다. KBO는 그해 유일하게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한 뒤 승률을 계산했다. KIA는 81승 4무 48패, SK는 80승 6무 47패였다. 결국 KIA는 81승 52패로 승률 0.609, SK는 80승 53패로 승률 0.602가 됐다. 무승부를 아예 경기 수에서 제외하는 현재의 승률제로 계산하면 SK가 0.630, KIA가 0.628로 1위의 얼굴이 바뀌게 된다. 결과적으로 19연승 기간 동안 딱 하나 포함된 무승부 한 개가 순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다. SK는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3승 3패로 치러진 7차전에서 나지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왕좌 등극에 실패했다. 마지막 순간 눈앞에서 패권을 놓친 모양새가 정규시즌 우승을 놓친 과정과 흡사했다.
그러나 강팀은 강팀이다. SK는 연승과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후유증을 모두 금세 잊었다. 2010년이 시작하자마자 개막 3연승을 달렸다. 두 시즌에 걸쳐 이어진 22연승 행진. 2000년대 최고 강팀의 위용을 마음껏 뽐냈다. 이뿐만 아니다. 4월 14일부터 5월 4일까지 다시 16연승 행진을 달렸다. 2010년에는 끝내 다시 우승의 한을 풀었다.
# 연승 팀의 공통점, ‘미쳐야 산다’
당시 SK의 연승은 현재의 NC와 공통점이 많다. NC는 외국인 에이스 에릭 해커가 빠진 가운데 연승 가도를 달렸다. 대체 선발 정수민이 공백을 메웠다. SK는 에이스 김광현과 주전 포수 박경완이 나란히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도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김광현의 빈자리는 불펜을 전 방위로 활용해 메웠고, 박경완 대신 출장한 포수 정상호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긴 연승 때 꼭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팀이 한번 연승의 흐름을 타면, 원래 주전이 아닌 비주전 선수들 가운데 꼭 ‘미치는’ 선수가 하나씩 나온다. ‘아, 오늘 연승이 끝나나’ 싶은 순간, 기대하지 못했던 투수가 호투를 하거나, 어렵게 기회를 잡았던 선수 한 명이 호수비나 결정적인 안타로 승리를 만들어 낸다. 그런 경기가 한두 게임은 꼭 끼어 있다”고 증언했다.
결국 연승을 하는 팀은 선수층이 두껍고,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한 구단 감독은 “연승을 할 수 있는 전력은 따로 있다. 그런 팀은 주전 한두 명이 끌고 가는 팀이 아니라서, 핵심 선수가 빠져도 다른 선수들이 충분히 자리를 메울 수 있다”고 했다. 또 “냉정하게 말해 우리 팀은 연승을 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베스트를 다 하면 상위권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장기간 연승을 할 팀은 아니다”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실제로 15연승 이상을 해낸 SK, 삼성, NC는 그해 우승을 했거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팀들이다.
# 연승을 위한 주술, 수많은 징크스들
김성근 감독의 ‘수염’은 아직까지도 연승 징크스의 전설적 사례로 꼽힌다. 2010년 지휘봉을 잡았던 SK가 16연승을 이어가자 계속 수염을 깎지 않았다. 우연히 면도를 안 했다가 팀이 계속 이기자 혹시라도 부정 탈까봐 아예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흰 수염이 얼굴을 뒤덮었고, 사정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시냐”는 인사까지 받았다. 이뿐만 아니다. 발톱도 깎지 않아 양말에 구멍이 나는 일이 허다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SK 선수들조차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같은 이유에서다.
많은 야구인들은 “징크스에 연연하기 위해 오히려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승리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야구장에 출근할 때 매일 같은 길로 가거나, 첫 승리 때 밥을 먹은 식당을 매일 찾아가는 일은 애교에 가깝다. 같은 유니폼, 같은 양말로도 모자라 같은 속옷까지 매일 입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고생길’이 훤히 열린다.
그래도 연승은 즐겁다. 올해는 선수들의 승리 수당, 일명 ‘메리트’가 공식적으로 전면 금지됐다. 위반하면 제재도 받는다. 그러나 과거에는 연승에 걸린 메리트가 쏠쏠했다. 주로 강팀들이 연승을 많이 했으니, 연승은 1위 싸움이나 포스트시즌 티켓과 자주 연관됐다. 이 때문에 구단들은 연승을 할 때마다 1승에 걸린 금액을 더 올렸다. 은퇴한 한 야구인은 “이겨서 신나고, 지갑에 현금이 들어와 신나던 나날들이었다. 3연승을 넘어 4연승쯤 되면 선수단이 잔칫집 분위기였다”고 귀띔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머니볼’ 오클랜드 2002년 기적의 레이스 막판 4경기 연속 역전승…20연승 신화 화룡점정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은 90년간 깨지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전신인 뉴욕 자이언츠가 1916년 26연승을 달렸다. 미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이 기록을 넘어선 구단은 아직 없다. 이 26연승에는 무승부가 포함돼 있다. ‘무승부 없는’ 순수 연승 기록은 1935년 시카고 컵스가 세운 21연승이다. 이 기록도 벌써 71년을 묵었다. 그래서 오클랜드의 20연승 행진은 더 큰 화제와 관심을 모았다. 샌프란시스코와 컵스는 모두 내셔널리그 팀이다. 오클랜드가 속한 아메리칸리그 최다 연승 기록은 190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1947년 뉴욕 양키스가 각각 달성한 19연승이었다. 두 명문 구단이 수십 년간 보유하고 있던 기록을 ‘머니볼 구단’ 오클랜드가 2002년에 깼다. 1950년 이후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나온 최다 연승 기록이기도 했다. 기적의 레이스였다. 오클랜드는 2002년 8월 13일(이하 한국시간)까지 68승 51패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3위였다. 지구 1위 시애틀에 4.5경기 차, 2위 애너하임(현 LA 에인절스)에 2.5경기 차로 뒤져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인 8월 14일, 토론토전에서 에릭 차베스의 2타점 결승타를 앞세워 4-2로 이겼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17일엔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선발 코리 라이들이 7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해 1-0으로 승리했다. 3연승. 20일엔 클리블랜드를 6-3으로 꺾고 7연승을 찍었다. 이날 4개월 만에 지구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1연승 중이던 26일에는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7회까지 3-7로 뒤졌다. 선발 애런 하랑이 3.2이닝 6실점으로 난조를 보였다. 그러나 8회 선두타자 그렉 마이어스의 솔로 홈런을 시작으로 5점을 한꺼번에 뽑았다. 극적인 역전승으로 12연승이 완성됐다. 9월 1일에는 당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였던 미네소타와 만났다. 7회까지 3-1로 앞서다 8회초 2점을 내줘 3-3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8회말 곧바로 3점을 더 얻어 승기를 다시 가져왔다. 그렇게 17연승이 됐다. 동시에 오클랜드가 ‘빅 마켓 구단’ 양키스의 19연승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지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짜 드라마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2일 미네소타전. 오클랜드는 8회까지 4-2로 앞섰다. 선발 마크 멀더는 내친 김에 완투승까지 노렸다. 그러나 9회초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잇따라 솔로 홈런 두 방을 내줬다. 4-4. 결국 오클랜드 마무리 빌리 코치가 나왔지만, 다시 홈런을 맞았다. 4-5 역전. 그러나 모든 게 정해진 시나리오 같았다. 미겔 테하다가 1사 1·2루서 상대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끝내기 역전 3점홈런을 터트렸다. 18연승이 완성됐다. 19연승 타이 기록이 걸린 다음 날 캔자스시티전에서도 승리는 안심할 수 없었다. 9회말 공격이 시작될 때 스코어는 6-6. 그러나 1사 만루서 다시 테하다가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마침내 양키스의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끝내기 안타 두 개는 테하다가 그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34홈런·131타점을 기록하고도 57홈런·142타점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당시 텍사스)를 제쳤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왔다. 역시 영화 같았다. 5일 캔자스시티전. 오클랜드는 3회에 이미 11-0 리드를 잡았다. 고지에 손쉽게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방심한 사이 11점을 따라 잡혔다. 4회 5점, 8회 5점을 각각 내줬고, 9회에 끝내 동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9회말 스캇 해티버그가 다시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4경기 연속 역전승으로 20연승 신화의 화룡점정에 성공했다. 기어이 오클랜드가 아메리칸리그의 역사를 바꿨다. 아쉽게도 오클랜드는 다음 날 미네소타 에이스 브레드 레드키를 만나 0-6 완봉패를 당했다. 23일간 이어져온 기적의 드라마를 종영했다. 그리고 그해 103승 59패로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다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21연승을 저지시킨 미네소타를 만나 2승 3패로 탈락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많은 야구팬은 2002년의 메이저리그를 ‘오클랜드’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20번을 연속으로 이긴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펼쳐진 승부들이 워낙 극적이고 짜릿했기 때문이다. 당시 오클랜드의 ‘얼굴’이던 영건 3총사 허드슨, 멀더, 지토는 도합 14경기에 선발 등판해 11승을 합작했다. 이들 가운데 지토는 23승을 올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도 수상했다. 여러모로 오클랜드 역사에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