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12월 20일 박근혜 의원 등 당직자들이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패배 및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경청하고 있다. | ||
정치권 인사 A 씨는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전략 기획을 담당했던 멤버였다. 현재는 한 유력 대권 주자의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최근 최구식 의원이 밝힌 대선 ‘최후의 승부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윤여준 전 의원이 입안했던 여러 가지 카드 가운데 몇 가지만 채택되었어도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먼저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이 밝힌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최 의원은 최근 이 전 총재를 “원균보다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대선 직전의 상황에 대해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이회창 씨의 착각과 오판이 결정타를 날렸다. 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여론조사를 보고하는 참모에게 화를 냈다. (중략) 어느 전략가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최후의 승부수’를 측근에게 전달했다. 측근 역시 전략가로 통하는데 ‘이거다’ 하며 무릎을 쳤다. 선거일이 목요일이었는데 직전 토요일의 일이다. 월요일자 신문에 대서특필되면 판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학수고대했는데 감감 무소식이었다. ‘왜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이기는데 이렇게까지 해야겠느냐’는 취지로 말하더라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 의원이 말하는 ‘어느 전략가’는 누구이며 그 ‘최후의 승부수’는 과연 무엇일까. A 씨는 최 의원이 말하는 ‘전략가’가 윤여준 전 의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기자는 최구식 의원에게 그 사실을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그는 “(허허허) 그건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애매한 답변이었다. 최근 이 전 총재 관련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뒤끝이었는지 말을 조심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전 총재는 선거를 10여일 앞둔 12월 8일 밤 한나라당 선거기획통인 윤여준 의원을 긴급 호출했다. 사실 윤 전 의원은 2000년 총선 때 ‘부패정권 심판론’이란 논리를 개발해 성공시킨 뒤 한나라당의 대표적 전략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 전 총재의 총애를 받던 그는 2002년 5월 당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이 전 총재와 가까운 몇몇 중진들과의 갈등 후유증 등의 여파로 이 전 총재 주변에서 그를 멀리했고 결국 대선기획단에서도 멀어지게 됐다. 그런 그가 이 전 총재의 호출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다급했다는 방증이다. 윤 전 의원은 선거운동의 핵심 분야인 홍보와 미디어에 관한 전권을 쥐게 됐다. 이 전 총재의 윤 전 의원 중용은 그 동안의 선거 전략 시스템에 큰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이었다. 기존 전략팀에 대한 이 전 총재의 불신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앞서의 전략가 A 씨에 따르면 당시 선거 국면은 매우 비관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새로 컴백한 윤 전 의원과 특별팀을 만들어 막판 대 역전을 이룰 수 있는 ‘극약 처방’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당시 이 전 총재는 다른 전략기획팀을 물리치고 윤 전 의원을 전격 기용했기 때문에 최 의원이 말하는 ‘최후의 승부수’도 윤 전 의원의 팀에서 나왔다고 보는 게 맞다.
▲ 최구식 의원(왼쪽), 윤여준 전 의원 | ||
그런데 A 씨는 “7대 과제가 이 전 총재의 인정을 받고 정치권에서도 호평을 받았다고 판단했지만 그 후속타를 계속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전 총재에게 보고한 것이 섀도 캐비닛 발표였다”고 말했다.
윤 전 의원은 ‘섀도 캐비닛’ 보고서를 들고 대전으로 향했다. A 씨는 이에 대해 “아들 병역 문제와 빌라 파문 등으로 이 전 총재의 대쪽 이미지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또한 모든 공격이 이 전 총재에게로만 집중됐다. 그래서 섀도 캐비닛을 미리 발표해 이 전 총재의 상처 입은 이미지를 보완시키려고 했다”고 밝히면서 “국무총리에는 깨끗하고 감성적인 이미지의 박근혜 의원을 기용해 이 전 총재의 딱딱함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보았다. 법무부 장관에는 대쪽 법조인이었던 심재륜 변호사를 내세워 빌라 문제 등으로 실추된 이 전 총재의 대쪽 이미지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노동부 장관에는 진보적이고 노동계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김문수 의원을 기용, 이 전 총재의 취약점인 진보 중도 세력의 결집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감안해 중요 부처만 미리 발표하고 그 다음은 선거 뒤 발표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전 총재는 윤 전 의원의 보고를 들은 뒤 “이기는데 왜 분란을 만드느냐”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만약 이 전 총재가 그 섀도 캐비닛 안을 받아들였다면 윤 전 의원 팀은 내부 토론을 통해 몇 개 부처의 장관을 추가로 발표해 분위기를 급반전시킬 계획이었다. A 씨는 이에 대해 “최구식 의원이 밝힌 ‘(목요일 선거전인) 월요일자 신문에 대서특필되면 판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학수고대했다’는 그 승부수가 바로 섀도 캐비닛 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이 부분에 대해서도 최 의원은 언급을 회피했다). 그런데 이 전 총재는 섀도 캐비닛이 발표되면 차기 정부에서 총리나 장관직을 노리는 다른 인사들이 크게 반발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 안을 거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장관 자리마다 10여 명이 물망에 오르는 등 인사 문제가 큰 골칫거리였던 게 사실이었다”라고 말했다.
▲ 지난 2002년 12월 20일 대선 패배 및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회창 전 총재. | ||
그런데 윤 전 의원은 또 다른 극약처방을 선거 이틀 전 마지막으로 이 전 총재에게 보고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사실 이 전 총재가 정치를 재개한다고 하는 마당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매우 조심스럽다. 그 분의 체면을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사실만 확인해줄 수 있다. 투표 이틀 전 이 전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정말 마지막으로 극약 처방을 한번 써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때 이 전 총재가 좀 화를 내더라. 극약처방이 효과도 있지만 위험이 따르는 것 아닌가. 아마 그런 것을 걱정해서 그랬는지…. 그런데 이 전 총재는 여전히 선거에서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굳이 그런 처방을 쓸 필요 뭐가 있느냐고 생각한 것 같다. 선거 열흘을 남겨두고 두 번에 걸쳐 극약처방을 써보자고 했다가 모두 거절당했다.”
그렇다면 윤 전 의원이 투표 이틀 전 마지막으로 던진 승부수는 무엇이었을까. 윤 전 의원은 조심스럽게 그 부분을 설명했다. 그는 “내가 만나본 유권자들 가운데 이 전 총재의 주변에 포진해있는 인사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 대한 일정한 선입견 같은 것이 있어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던 것이다. 그것이 이 전 총재 당선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봐서 그런 인식을 씻을 필요가 있었다. 주변 인사들에 대한 엄정한 관리를 해야 한다고 보고서를 냈지만 이 전 총재는 그럴 필요성을 안 느끼는 것 같았다. 요즘 이 전 총재가 다시 정치를 한다는 하는 판에 요즘 여론도 좀 안 좋고 언론도 그렇고 저까지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 버리면 한때 모시던 사람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게 된다. 이런 발언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서둘러 말문을 닫았다.
한편 최구식 의원은 이에 대해 “보스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참모들이 보고서를 가지고 갈 때마다 거의 울면서 가지고 갔다는 것 아닌가. 하도 짜증을 내니까. 후보는 경건한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에 대해서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전 총재 측은 ‘마지막 승부수’와 관련해 “최구식 의원이 밝힌 내용을 이 전 총재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때 상황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면 자칫 그 발언에 대해 오해를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총재가 덮어놓고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황이 맞지 않았거나 효과적인 측면에서 기대가 없었다거나…. 몇 년 지난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이 안 받아들여졌다고 하면 지나친 것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러한 극약 처방이 받아들여졌을 경우 반드시 당선됐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더구나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하지만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나름대로 기록될 가치는 있는 것이다. 더구나 2007년은 대선의 해이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