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 28일 신당 창당 추진을 전격 합의한 김근태 의장(오른쪽)과 정동영 전 의장. 원안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 ||
열린우리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김근태(GT) 의장과 정동영(DY) 전 의장이 지난 12월 28일 신당추진을 공식 선언하는가 하면 범여권 제3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충청 중심론’을 피력하는 등 심상찮은 행보를 걷고 있다. 더구나 몇몇 정치적 발언 이후 정 전 총장의 지지율은 고건 전 총리를 단숨에 뛰어 넘었고 GT는 고 전 총리와 거리를 두며 정 전 총장과 교감을 나누는 흔적도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GT와 DY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노 대통령과 결별을 선언해 향후 정계개편 주도권을 둘러싼 친노그룹과 대혈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대권 경쟁자 관계였던 GT와 DY가 손을 맞잡고 ‘노 대통령과 결별’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든 배경은 무엇일까. 또 두 사람 모두 5% 미만이라는 바닥권 지지율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 창당’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두 사람이 처한 어려운 정치상황과 정운찬 전 총장의 숨겨진 대망론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세 사람의 정치상황과 대권 이해관계가 맞물린 ‘JJK(정운찬-정동영-김근태) 대권플랜’이 가동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범여권 정계개편 향배는 물론 차기 대선구도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는 ‘JJK 대권플랜’의 실체 및 그 실현 가능성을 진단해 봤다.
“‘신 DJP연대’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2월 28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A 의원이 던진 말이다. GT계 중진인 A 의원은 이날 오전 GT와 DY가 신당 창당에 합의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말문을 열었다.
A 의원은 “GT와 DY는 이제 대권 경쟁자 관계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호 협력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입장에 처해 있다”며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정권재창출은 물론 차기 총선에서도 필패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두 사람이 대승적 차원에서 손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GT와 DY가 힘겨루기를 계속할 경우 여권은 그야말로 공중분해 될 것이고 그 정치적 책임은 두 사람이 안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당이 산산조각난 후에 대권이고 당권이고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GT와 DY의 현 지지율을 감안하면 신당이 성공적으로 태동한다 해도 두 사람의 대권 지지율이 제고될 것이란 보장이 없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의원은 조심스럽게 “대권 경쟁자였던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는 것은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해서도 상호 밀약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지 않겠느냐”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대권을 또 한 사람은 당권을 담보로 빅딜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이 처한 정치상황에 비춰볼 때 두 사람 모두 기득권을 버리고 대승적 차원에서 제3후보를 밀어주자는데 합의점을 도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제3후보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의원은 “두 사람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정운찬 전 총장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느냐”며 “‘정운찬 대권카드’로 세 사람이 힘을 합칠 경우 호남(정동영)-충청(정운찬)-수도권(김근태)을 아우를 수 있는 그야말로 ‘신 DJP연대’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A 의원의 말처럼 GT와 DY가 자신들의 대망론을 버리고 ‘정운찬 카드’로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권 승부수를 던졌을지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두 사람이 처한 어려운 정치현실과 정 전 총장의 일련의 움직임에 비춰볼 때 세 사람이 정치 빅딜에 교감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지난 연말 이후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JJK 대권플랜’이 물밑 가동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시각과 무관치 않다.
여권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GT와 DY가 통합신당 추진에 전격 합의한 것은 28일이지만 그 이전부터 양 진영은 물밑 접촉을 통해 당 진로 및 정계개편 방향에 대해 상호 의견을 조율해 온 것으로 안다”며 “대권주자인 두 사람이 정계개편 방향과 관련해 합의점을 도출했다는 것은 차기 대선구도와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누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치에 관심 없다’던 정운찬 전 총장이 GT와의 회동이후 대권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는 등 심상찮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GT-DY 대권 밀약’이 투영돼 있을 것”이라며 “GT와 DY가 동반 불출마를 조건으로 정 전 총장의 대망론에 불씨를 지폈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 전 총장은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정가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 전 총장은 지난 12월 20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발언한 이후 대권출마 가능성까지 열어 놓는 등 진일보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정 전 총장은 지난 26일 ‘충청인 중심론’을 피력해 정치권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날 재경 공주향우회 송년모임에 참석한 정 전 총장은 “충청인이 나라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왔다”며 “공주분들께 2007년은 특별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제가 미력하나마 공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는 공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서울로 떠나왔지만 변함없이 저를 품어줘서 감사하고 영광스럽다”며 충청도가 지역 연고임을 강조했다.
여권내 신당파는 물론 친노그룹으로부터도 영입 공세를 한몸에 받고 있는 정 전 총장의 이 같은 발언을 놓고 정치권은 대권출마 선언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등 갖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의 대권 복심이 구체화 된 것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정치에 무관심했던 정 전 총장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의 관심도 바로 정 전 총장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모티브가 무엇인지에 쏠리고 있다. 정 전 총장이 입장을 바꾼 속내에는 여권발 정계개편 향배 등 복잡한 정치적 함수관계를 풀어줄 답안이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전 총장이 대권 출마를 결심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나는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고 또 하나는 대권 경쟁력이다.
이 가운데 경쟁력면에서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28일 발표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 정치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이 뽑은 범여권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정 전 총장이 26%로 고건 전 총리(23%)를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일요신문>이 지난 연말 국회의원 보좌진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바람직한 대통령, 당선 가능성 등 모든 면에서 고건 전 총리를 앞질렀다. 지금은 장외 블루칩에 머물고 있지만 상장이 되면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정치적 기반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정 전 총장은 전형적인 학자 출신이다. 정치적 이념과 비전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치적 기반은 전무하다. 그가 정치활동이나 대권 출마를 주저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조직이나 기반이 전무한 정치 현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많은 학자 출신 인사들이 대권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과거 사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전 총장이 최근 대권 행보로 오해받을 수 있는 언행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역으로 이러한 정치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전 총장이 지난연말 GT와의 회동을 전후해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고 이후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은 서울대 선후배 관계로 서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GT와 정 전 총장이 회동을 통해 상호 만족할 만한 정치적 교감을 이끌어 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치권 주변에서 이른바 ‘GT-정운찬 빅딜설’이 나돌았던 것도 이러한 가능성에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GT보다 더 많은 계파를 이끌고 있는 DY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두 사람간의 빅딜은 말 그대로 ‘설’ 수준에 머물렀다. 통합신당 창당을 전제로 정 전 총장이 GT의 지원을 받고 경선에 참여한다 해도 DY와 맞붙어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한 ‘설’로 묻혀버릴 수 있었던 빅딜설이 ‘GT-DY 신당창당 합의’ 이후 ‘JJK 대권플랜’이란 더욱 구체화되고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GT-정운찬 빅딜설’에 DY가 합세한다는 게 ‘JJK 대권플랜’의 핵심이다. 즉 GT가 불출마 등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경우 DY 또한 정치적 책임감에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두 사람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정운찬 대통령 만들기’에 교감을 나누고 노 대통령과의 결별도 불사한 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 전 총장 입장에서도 여권내 양대 계보를 이끌고 있는 GT와 DY의 지원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당내 경선은 물론 대선 본선에서도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란 나름의 계산이 도출됐을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세 사람의 정치적 연대가 현실화 될 경우 호남(정동영)-충청(정운찬)-수도권(김근태)을 아우르는 지역적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그럴싸한 대권연대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세 사람이 통합신당 창당을 전제로 한 지분 분담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GT와 DY가 정 전 총장을 통합신당 대선주자로 적극 지원하는 대신 통합신당 당권 및 대권 승리를 전제로 총리와 내각 지분을 GT와 DY가 양분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물론 아직도 대선까지의 일정은 많이 남았고 또 정치적 변수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또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인 권력 속성으로 보거나 GT나 DY 모두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대망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로 보거나 이러한 대권플랜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