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7일1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남측 대표단전세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북측 방역 의사가 기내에서 대표단에게 사스검진을 위해 체온계를 나누어 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그동안 사스 환자가 발생한 지역은 모두 30개국. 경제 피해액만도 3백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캐나다와 유럽 각국 등 전 세계의 문명국가들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립자 앞에 속수무책으로 위협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바이러스가 무엇이길래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류가 이렇게 벌벌 떨어야만 할까. 사스의 출현을 계기로 바이러스의 세계를 짚어본다.
바이러스라는 이름은 이제 모든 사람들의 귀에 익다. 종류도, 형태도 다양한 바이러스는 동물 식물뿐 아니라 심지어 세균에까지 기생하는 전천후 미완성 생명체다.
인플루엔자, HIV, 에볼라, 사스 코로나바이러스(SCV)와 같이 새로운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관심이 새로와지는 것일 뿐, 바이러스는 태초부터 최초 생명의 출현과 함께해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며 사상가인 레비스트로스가 남긴 명저 <슬픈 열대>에는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구절이 있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서양문명이 황폐화시킨 광활한 열대에 대한 기록을 담으면서, 인간은 세계의 주인이 아닌 이 땅의 모든 것을 잠시 누리고 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의 지적처럼 인간은 지구에 출현한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건 안보이건 크건 작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
공존하는 생명체들은 서로 공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한 자가 살아 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통할 때도 있다. 바이러스와 인간의 관계도 이러한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의외로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들과 더불어 살아왔으나 이번 경우처럼 치명적인 바이러스와는 생존의 대결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 인간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는 그러나 미생물이라고 부르기에도 어설픈 미완성의 존재다. 사전에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DNA 또는 RNA)과 소수의 단백질만으로 구성된 작은 입자’라고 설명돼 있다. 이것을 생물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핵과 미토콘드리아 세포막 등으로 구성되는 생명세포의 최소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고, 스스로 번식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생체 세포의 구성물질인 핵산(DNA 혹은 RNA) 한가닥으로 구성된 머리에다 꼬리 혹은 다리를 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생체의 세포 안으로 뚫고 들어가 그 세포를 자신의 몸으로 삼는다. 그리고는 이 숙주 생물(바이러스에 감염된 생명체)의 세포를 이용해 번식하면서 점차로 숙주 생물을 병들게 하고 심하면 죽게 만든다.
모든 공생관계가 그렇듯 기생자는 특정한 종류의 생물만을 숙주로 삼는다. 바이러스도 어떤 숙주에 기생하느냐에 따라 동물바이러스 식물바이러스 세균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로 나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만 모두 4천종을 넘는다.
바이러스가 공생 가능한 특정 숙주에 기생하고 있을 때는 사실 숙주 생물의 생명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숙주의 죽음은 곧 숙주 생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자체의 소멸을 가져오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숙주의 생명을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기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바이러스가 위협적으로 변하는 것은 돌연변이를 일으켰을 때다. 예를 들어 새 종류에게 기생하던 바이러스 가운데 변종이 발생해 개과 동물에게도 기생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바이러스는 굳이 개과의 숙주를 보호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무차별하게 번식하고 급기야 목숨까지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야생동물에 흔히 기생하는 광견병 바이러스가 개나 사람에게 옮겨졌을 때 치명적이 되는 이유다.
사스 코로나바이러스(SCV)의 위협도 이같은 전이에서 생겼다. 원래 사람의 몸에서 발견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때때로 감기를 일으키는 흔한 감기 원인균의 하나인데, 사스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닌 다른 짐승에게서 기생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로 옮겨온 변종이다. 사스 환자의 조직에서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는 기존의 모든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 어떤 병원체와도 닮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돌연변이 바이러스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사스 바이러스는 형질이 안정된 바이러스도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지난해 11월 사스 발생 이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연구소에서 SCV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최소한 10여종의 상이한 SCV가 발견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줄리 거버딩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한 줄기의 RNA(리보핵산)으로 구성된 사스 바이러스는 자기 복제시 오류가 발생해도 이를 교정하는 시스템이 없어 새로운 세포에 자신을 복제할 때마다 염기서열이 바뀌고 있다. 돌연변이 자체가 아직 현재진행형인 미완성 바이러스란 의미다.
이는 SCV의 위험성이 알려진 것보다 한층 심각할 수 있음을 뜻한다. 홍콩대학 미생물학과 팰릭 페이리스 교수는 SCV가 계속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있어 “초기에는 폐만 손상시켰지만 이제는 신장 등 다른 장기까지 공격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발생 초기 4~5% 정도로 추정됐던 치사율도 이후 집계에서 점차 상향조정되어 나중에는 20%까지 올라갔다. 영국 임페리얼컬리지와 홍콩 보건당국이 공동 분석해 내놓은 지난 7일 발표에 따르면 2월부터 4월까지 홍콩내 환자 1천425명(평균연령 50세) 가운데 치사율은 60대 이상에서 43~55%까지로 나타났다. 60세 이하 환자의 치사율이 13% 정도에 머문 것이 요행이랄까.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해마다 변종이 발생되어 새로운 위협이 되곤 한다. 이는 힘들여 개발한 백신을 무효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구나 SCV처럼 종잡을 수 없는 돌연변이를 잡는 것은 “이동표적을 맞추는 사격”이나 “계속 성형수술을 하면서 모습을 바꾸는 현상수배범을 잡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의사들은 토로하고 있다. 이처럼 능수능란한 변신술 때문에, 현대의학은 세균성 질병을 극복하듯 바이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1892년 러시아 과학자 이바노프스키가 담배잎에 생기는 모자이크병을 연구하던 중 병원체가 세균여과기를 통과하는 것을 보고 세균보다 더 작은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을 첫 발견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때만해도 세균이 아닌 병원체는 독성뿐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라틴어로 독(毒)을 뜻하는 바이러스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게 된 것이다(대부분의 최초 의학적 명칭들은 라틴어를 사용했다).
잘 알려진 바이러스로는 일본뇌염 유행성출혈열 간염 광견병 인플루엔자 홍역 풍진 두창 천연두 사마귀바이러스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인간이 의학적으로 정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천연두뿐이다. 최근에 나타난 것으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을 일으키는 HIV, 70년대 아프리카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에볼라와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등이 있다.
인류의 피해도 컸다. 1918년 스페인에서 시작된 독감 바이러스는 유럽지역에서 2천5백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비교적 현대인 1950년대에도 아시아지역에 다시 나타나 1백만의 사망자를 냈다. 1968년 홍콩독감은 70만명을 사망케 했다.
이밖에 식물과 가축들이 당하는 바이러스 피해도 크다. 최근까지도 수시로 출몰해 가축에 피해를 입히는 구제역도 일종의 바이러스다. 바이러스에는 약이 없다. 출현한 바이러스를 근거로 백신을 만들어 접종하고 발병 후 대증요법과 합병증을 막는 것이 대응법이다.
국립보건원 바이러스부 윤재득 과장은 그러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드는 데는 대개 수년 이상이 걸리고 만들지 못한 사례도 허다하다”며 사스 또한 현재로선 예방이 최선이므로 위험지역 여행 자제와 손씻기 등 위생관리를 평소보다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은영 건강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