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한나라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왼쪽)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국회사진기자단 | ||
현재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지율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다른 모든 주자들을 20% 차이로 여유 있게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부자 몸조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신년 인사회가 침체된 분위기를 ‘업’ 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 향후 대대적인 조직정비에 착수해 본격적인 추격전에 나설 계획이다.
사실 경선을 앞두고 양측의 대결투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최근 당내에서는 참정치운동본부가 친박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져 이 전 시장을 ‘표적 검증’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등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국지전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나라당 이-박의 경선 목장의 대결투를 그려봤다.
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스케줄이 대략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고되고 있다. 먼저 양측의 전운은 후보 검증을 둘러싸고 피어오르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는 지난 11월 22일 설치된 참정치운동본부(참정치본부 공동본부장 권영세 유석춘)가 유력 대권 후보에 대한 공개 검증을 실시할 것이며 그 결과도 발표할 예정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친박 성향을 보이는 참정치운동본부를 동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표적 검증’해 지지율 만회를 노리고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확산되고 있다.
사실 참정치본부는 출범 때부터 그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박 전 대표와 ‘심증적 연대’를 하고 있는 강재섭 대표가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친박 그룹의 또 다른 친위부대’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공동본부장에 임명된 유석춘 연세대 교수도 그의 부친이 박정희 대통령 아래에서 청와대 정무수석과 공보처 장관 등을 역임했던 유혁인 씨라는 점 때문에 박 전 대표와의 인연이 남다를 것이라는 해석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최근의 후보 검증 논란에 대해 유석춘 본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권 후보들의 공개 검증에 대한 기본 계획이 확정된 건 전혀 없다. 그것을 우리가 해야할지 아니면 당 차원에서 할지 아직까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입장에선 후보들 공개 검증을 진행하고 싶긴 하지만 당과 협의가 끝나지 않았고 당에서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줄지 안 줄지도 아직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부친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도 남다른 친분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부친의 친분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박 전 대표와는 독대 한번 한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이 박 전 대표와 가깝다는 건 정설이다. 친박 그룹에서 유 본부장을 자주 불러주기 때문에 양측이 자주 만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런데 유 본부장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을 해 ‘참정치본부의 객관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기도 했다. 유 본부장은 인터뷰 당시 “시중에 떠돌고 있는 의심들에 대한 구체적 검증 작업에 들어가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 변동이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검증 과정 없이 무조건 인기가 많다고 대선 후보로 뽑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던 것. 또한 유 본부장은 “검증작업에서 밝혀지는 내용의 실체에 따라 지지도가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유 본부장이 향후 전개될 공개 검증을 앞두고 이 전 시장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것 아니냐. 그가 박 전 대표와 가깝다는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은 “인터넷 매체 D 사가 내 발언을 왜곡해 보도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내가 말한 진의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내려간다고 단정한 게 아니라 오를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는 일반론을 얘기한 것’이었다. 현재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높긴 하지만 앞으로 검증 과정이 자연히 따를 것이고 그것을 거치면서 지지도도 오르든지 내려가든지 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일부 인터넷 친여 매체가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이간질시키기 위해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유 본부장은 한나라당 대권 후보들의 공개 검증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나라당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학습효과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이 전 시장이 경험도 많고 업적도 훌륭하지만 때도 많이 묻었을 것 아닌가. 그에 비해 박 전 대표는 그 동안 일한 경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때도 안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 전 시장이 털면 먼지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검증)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약간 흥분하면서) 이 전 시장도 검증 자체를 거부하지 말고 먼저 치고 나가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방어적으로 반응하면 크게 당할 수도 있지 않느냐. 국민들은 이 전 시장이 공개 검증을 거부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면 ‘뭔가 구린 것이 있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후보 검증이 어디에서 진행될지는 당 고위직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 연합뉴스 | ||
반면 박 전 대표는 공개 검증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여야 후보가 나오고 검증이 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막중하기 때문에 국가관, 정책검증 등을 거쳐서 국민들이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대권 후보들의 검증을 통한 지지율 반전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앞으로 참정치본부가 대권 후보에 대한 공개 검증 작업과 일부 비리 연루 의혹 의원들에 대한 자체 조사를 강행할 경우 그 편파성 여부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곧 ‘이-박의 대리전’으로 비화돼 경선 대결투의 결정적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오픈프라이머리 실시를 포함한 경선 방법을 두고도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혈투’가 전개될 조짐이다. 최근 강재섭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경선 방식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이왕 만든 원칙을 지키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일단 룰대로 하는 게 좋겠다. 준비위에서 (경선 방식과 시기에 대해) 논의를 하지 않겠느냐”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환영하는 모습이다. 그는 최근 “한나라당은 공당이기 때문에 몇몇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바꾸고, 싫다고 해서 이대로 가자 이렇게 하면 되겠는가. 현 규정은 당원들의 의견을 들어서 만든 것인데 이런 규정을 바꾸려면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지 열린우리당이 하니까 따라서 하자는 것은 명분이 아니다”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쪽은 “일단 현행 방식대로 하자”는 강 대표의 발언이 편파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대중적 지지도가 높긴 하지만 ‘당심’을 말하는 대의원 대상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의 근소한 차이로 박 전 대표를 앞서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또한 이 전 시장 캠프의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시장이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경선 승리와 새로운 중도 성향의 집권 세력 창출 등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 전 시장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선호하는 배경에는 ‘한나라당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이 전 시장은 한나라당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기존 경선 방식을 취할 경우 ‘구세력’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고, 정작 당 개혁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됐을 때는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그러나 오픈프라이머리를 할 경우엔 이 전 시장은 훨씬 자유로운 위치에 놓이게 된다. 국민지지도가 높은 만큼 당내 세력의 특별한 도움이 없어도 경선에서 이길 수 있고, 이는 결국 구세력과 홀가분하게 결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이러한 인식은 이 전 시장 쪽에서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신당론’과도 근본적으로 연관되는 것이다. 현재 상태라면 굳이 그런 위험이 수반되는 행보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경선 구도가 여의치 않을 경우 이 전 시장으로서는 ‘수구꼴통’ 세력을 떼어낸 후 당 밖의 또 다른 중도보수세력들과 연합하는 중도보수신당의 밑그림을 그리려고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픈프라이머리 성사 여부는 이 전 시장에게 경선 승리와 중도보수신당 창당의 두 마리 토끼를 노릴 수 있는 양수겸장의 효과가 있다”라고 밝혔다.
현재의 지지율 추세가 지속된다면 오는 12월 19일 한나라당 후보가 청와대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예선이 곧 본선’이 된다는 점에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의 ‘경선 대결투’는 정치 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