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의가 ‘이명박 대세론’을 깨고 대권구도를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명박 전 시장 측은 덤덤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안국포럼 캠프는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추진을 발표하기 한 시간 전쯤인 1월 9일 오전 10시경 자체 정보망을 통해 미리 그 내용을 입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즉시 참모 회의가 소집됐다고 한다. 회의 결과는 무대응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게 대세였다고 한다.
이 전 시장 측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정국 조성을 ‘정략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그 파괴력은 극히 미미해 현재의 ‘이명박 대세론’을 깨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캠프 관계자 A 씨는 이에 대해 “옛날 같으면 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하겠다고 하면 온 나라가 뒤집어질 만큼 큰 변화의 조짐이 보였을 것이다. 시민단체 등도 들고일어나 ‘정치권 각성하라’며 개헌 당위성에 대해 대대적인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개헌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노 정권 아래에서는 반대라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이다”라고 전제하면서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제외한 대야당 설득작업을 전혀 하지 않았고 국민 여론 조성에도 실패했다. 정무역할을 하는 메신저가 사전에 정지작업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 특유의 깜짝쇼를 대연정 제안 때처럼 재연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고 본다. 여론의 지지 없는 개헌 정국 조성은 이제 불가능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 씨는 노 대통령이 개헌 정국을 조성하며 기대했던 계획에 대해 “노 대통령은 개헌에 대한 찬반 토론으로 그 자체가 정국을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되면서 대권 구도가 이명박 대 반이명박 구도에서 개헌 대 반개헌 구도로 갈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명박 중심의 판을 개헌과 같은 전혀 다른 판으로 갈아보자는 게 청와대의 기획안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되려면 개헌에 찬성하는 세력의 규합이 필수적인데 지금은 민주노동당마저 떨어져 나가면서 개헌 대 반개헌 세력의 구도 설정이 불가능한 측면이 강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전 시장측은 “앞으로 여권이 어떤 폭탄 변수를 던지더라도 현재의 구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만큼 노무현 정권 실정에 대한 국민 여론의 응집력이 높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전 시장의 지지율만 굳힐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분석을 기반으로 이 전 시장 측이 안심할 수가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B 씨는 이러한 분석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을 포함한 한나라당 세력이 이번에 개헌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부메랑이 돼 앞으로 여권의 잇단 돌발 공격에 대해 점점 그 대응력을 상실할 것이며 결국 분열의 길로 들어갈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B 씨는 “이번 개헌 제안은 대연정 때와는 다른 것이다. 대연정은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제안한 사항에 대해 한나라당이 그냥 ‘노’라고 하면 그만인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 개헌은 대통령이 발의를 하면 정부 조직이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공개적인 사안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대통령 중임제(연임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앞으로 국회에서 개헌 문제가 공론화되고 노 대통령의 또 다른 제안이 계속될 경우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기대하고 있는 개헌 정국 조성을 통한 ‘이명박 대세론 뒤집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정치권에서 나오는 분석과 B 씨의 의견을 토대로 전망하면 이렇다.
먼저 노 대통령은 개헌 발의에 대해 애초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금부터 개헌발의가 예상되는 2~3월까지는 소강국면으로 판단하며 일부 방송 매체를 동원해 대 국민 여론 조성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국민들도 현 정권에서의 개헌 추진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높기 때문에 개헌론이 사멸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말대로 결국 개헌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과정을 거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 경우 만에 하나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을 계산에 넣고 있다는 이야기다. 즉 현재 개헌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 여론의 ‘휘발성’을 변수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한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야 4당이 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을 거부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61.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는 개헌에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지지자들 가운데 42.5%나 포함돼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한다. 이는 개헌에 대해 반대하는 철옹성 같은 여론이 언제 쉽게 무너질지 알 수 없는 대목이라는 것이 개헌론의 폭발력에 기대를 거는 측의 희망사항이다. 여기서 기대하는 것은 한나라당 주자들에 대한 여론의 변심이다.
노 대통령은 향후 2~3개월 동안 친노성향의 인터넷 매체와 방송을 통해 반대 여론 무너뜨리기에 적극 나설 것이다. 그리고 개헌 발의 후 새로운 후속 카드로 이명박 대세론을 계속 흔들어 댄다는 계획도 세워져 있을 것으로 B 씨는 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카드가 남북정상회담이다. 노 대통령은 개헌 정국에서 개헌 대 반개헌 세력 구도를 상정한 여론 조성기를 지나 2단계로는 통일 대 반통일 세력의 구도로 재편한다는 전략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성사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유력 대권 주자의 오랜 측근으로 대미 전략에 밝은 C 씨는 이에 대해 “대북 정책에 정통한 한 소식통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노무현 정권이 오는 4~5월 경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을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핵 동결 또는 핵 포기 선언을 약속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총력 투쟁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과 명분을 줄 경우, 김 위원장도 한나라당의 집권을 방해하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에 응할지 모른다는 게 여권의 기대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가시적 조치를 이끌어내 대선에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정국이 통일 대 반통일 구도로 급속하게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렇게 될 경우 한나라당 주자들 중에서도 특히 ‘오로지 경제’만 외쳐온 이명박 전 시장이 통일 정책에 대한 콘텐츠는 별로 없다는 단점 때문에 개헌 통일 정국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C 씨는 또 “더욱 중요한 것은 개헌과 통일이라는 새로운 아젠다의 등장과 함께 그동안 노무현 실정론 때문에 전혀 뜨지 못하던 여권의 제3 후보도 이 전 시장이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이는 이 아젠다를 집중 거론하며 대항마로서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시나리오가 아니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한나라당의 분열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의 노 대통령의 측근 B 씨는 “이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집권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에 양측이 순순히 물러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누구라도 민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막판에 개헌을 받아들이며 대 타협을 할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상대방에 대한 그런 의심을 갖게 할 수는 있다. 이 전 시장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반대하지 않는다’며 박 전 대표의 ‘무조건 반대’와는 조금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국민 여론을 지켜보겠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무엇인가 정치 공작의 여지가 충분할 것이다”고 말했다. 특히 C 씨는 “노 대통령은 앞으로도 쓸 카드가 많다. 일단은 부인한 사항이기는 하지만 중·대선거구제 개편, 임기 단축 등을 적당히 꺼내들면 이-박 단일 연대에도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런 해석은 지난해 11월 열린우리당이 한 정치컨설팅업체에 의뢰해 보고 받은 ‘열린우리당 포지셔닝 전략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따르면 “이명박 대 박근혜 구도 하의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당 또는 후보 간 분리 또는 이탈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위한 최적의 정치적 환경은 바로 개헌정국”이라며 “개헌 논의는 정계개편의 변수로서, 이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고건 변수’에도 적용된다”고 적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재집권 시나리오와 정략지침서에 따라 여당의 지도부들이 잇따라 개헌론을 제기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 한나라당은 개헌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했지만 얼마나 단단한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의원 ‘입 단속’에 대해 원희룡 의원 등이 80년대 ‘보도지침’을 연상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상대적으로 야권이 분열될 소지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개헌 의결 시기가 후보경선 일정과 맞물리게 되면 개헌문제가 경선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개헌 통일 정국 조성을 통한 이명박 대세론 흔들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먼저 국민 여론이 노 대통령의 개헌론 제안에 대해 ‘순수한 진정성’에 기초한 게 아니라 정략의 산물이라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노 대통령이 ‘조기 하야’라는 대국민 카드를 꺼내든다 하더라도 여론은 오히려 ‘협박’이라며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탄핵 과정의 ‘학습효과’를 경험했던 국민들이 더 이상 노 대통령의 ‘깜짝쇼’에 속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헌논의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개헌 제안을 통해 정권 재창출을 노린다면 화살이 겨냥하는 표적은 한나라당이며 그 표적의 중심은 이 전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만큼 앞으로 펼쳐질 정국의 한 끝이 될 수밖에 없는 이명박 전 시장 측의 대응 또한 주목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