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신년기자회견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 대통령이 거센 발언을 내놓았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시끄러운 정가의 한 가운데에 있는 그가 다시 한 번 ‘튀는’ 발언으로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지난해 말에도 노 대통령의 발언이 전국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다. 지난 12월 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발언에서도 작심한 듯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비쳐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고건 전 총리,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을 ‘겨냥한 듯’ 깎아내리면서 결과적으로 고 전 총리가 중도하차함으로써 치밀한 ‘정략적 발언’이라는 분석을 얻기도 했다.
또 일부에서는 최근 노 대통령의 공세적 자세 이후 청·장년층 지지율이 상승하는 등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철저히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1월 말 노 대통령이 “임기를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임기 조기 중단을 시사한 직후에는 한나라당의 자세가 다소 변화됐다는 자체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고 있는 노 대통령의 언행을 살펴보면 치밀한 정치 전략하에서 내놓는 말이라고 하기엔 과한 부분이 없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심리분석가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파격발언을 내놓으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우는 아이들이 엄마한테 떼쓰는 심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3일 신년특별 연설 중에도 ‘골병들다’ ‘떡 됐다’ ‘새발의 피’와 같은 다소 정도가 지나친 표현을 사용했다. 노 대통령은 연설 중간 이 말을 내놓으며 “(이 말은)괜찮지요?”라며 좌중의 반응을 살피곤 했다. 이 말들은 지난 연말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했던 발언에 비하면 상당히 약화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 말로 보기엔 여전히 거센 감정의 앙금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언행과 관련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임기 말 레임덕 현상에 대한 두려움과 지금부터라도 무엇인가 이루어 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이 더해지며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들은 또 개헌을 비롯해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이를 자신이 아닌 외부의 탓으로 돌리면서 불만이 원망으로 까지 변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노 대통령이 4일 경제점검회의에서 “말을 가려서 해달라”는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의 건의에 발끈하며 “공개석상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 해달라”고 불쾌감을 토로한 것은 그 일례라는 지적이다. 대국민 연설에서 “나는 제정신”이라고 ‘항변’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최근 심경에 대해 최측근이랄 수 있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18일 일본 방문 중 도쿄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상처를 입더라도 해야 될 일은 해야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판단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유 장관은 “다만 언론의 조롱과 저주, 모욕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어서 이러한 공격을 내내 받으면 피폐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유 장관은 또 “대통령에게 언론과 지역, 정당 등과 각을 세워 정치적 갈등에 휘말리지 말고 웃으면서 가시라고 조언한다”며 “대통령은 그러한 건의를 다 듣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고달프고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를 받았다’는 설명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심리학자 A 씨는 남들이 뭐라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다는 과잉의식을 갖게 된 노 대통령의 심리가 상처를 받으며 불안정해 진 것 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정신분석의 B 씨는 노 대통령이 지지율 10%대를 의식한 나머지 모두가 자신을 미워하며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하고 있다는 식의 일종의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 일부 나타나 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감성정치’로 인해 큰 이익을 얻은 정치인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노사모 열풍’을 몰고 온 것 역시 정치인으로서 아직 때 묻지 않은 듯 보이는 이미지로 큰 도움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감성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그의 성격상의 긍정적 기질은 여러 차례의 굴곡을 겪으며 ‘감정적’으로 퇴화된 듯 보인다는 지적도 많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노 대통령이 종종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하는 것은 이제 약발이 다 된 발언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올인’하듯 정치발언을 내놓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감정적인 성격이 상당히 증폭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평론가인 윤재걸 한국정치인물연구소 대표가 최근 내놓은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타고난 쌈꾼”이라며 “노 대통령은 자신이 위기에 내몰렸을 때 싸움판의 성격을 일거에 바꿔버리는 최후의 대결적 승부수가 항시 자신을 벼랑 끝에서 구해줬던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또 그런 노 대통령이 최근 보이고 있는 일련의 정치 언행을 ‘아노미 상태’로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아노미란 전통적인 룰이나 권위의 붕괴로 말미암아 일종의 심리적 무정부상태를 발생케 하는 현상의 하나”라는 것이다. 윤 대표는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4년 연임의 ‘개헌전쟁’에 있어서도 노 대통령은 ‘전선확장’을 도모할 것”이라며, 이는 노 대통령에게 더 힘든 싸움이 되어 뜻밖의 행동으로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전망했다.
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여러 가지로 보는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많은 국민들은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정국을 주목하고 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