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김한길 강봉균 노현송 김낙순 이종걸 조배숙 박상돈 전병헌 조일현 우제창 변재일 최용규 장경수 노웅래 제종길 이강래 서재관 양형일 등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3명이 탈당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현실화되고 있는 열린우리당 분당 이면에는 차기 대권 및 내년 총선을 겨냥한 당내 제 계파와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등 야권 주변에서 ‘기획탈당’이니 ‘위장이혼’이니 하며 각종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열린우리당이 지금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선 막판에는 ‘반 한나라당’ 전선으로 단일대오를 구축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일단은 그에 앞서 누가 여권의 주도권을 차지하느냐가 제 계파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분당 후 대통합’ 시나리오가 대선 막판에 현실화할 경우에도 누가 그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각 계파의 향후 정치적 입지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탈당파나 잔류파나 정계개편 주도권 장악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을 정점으로 영호남 정치세력의 피 말리는 권력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영호남 정치세력 간의 대혈투가 시작됐다.”
6일 집당탈당파 명단에 이름을 올린 몇몇 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던진 일성이다. 기자는 6일 오후부터 7, 8일까지 탈당파 의원들을 접촉해 탈당 배경 및 탈당파의 향후 정치 진로 등에 대한 궁금증을 들어봤다. 대다수 의원들은 즉답을 피하거나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지만 기자와 친분이 있는 몇몇 의원들은 비보도를 전제로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가 하면 일부 의원은 탈당파의 향후 정치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7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난 탈당파의 L 의원은 “선도탈당파나 집단탈당파가 주장하고 있는 민주개혁평화 세력 결집이니 대통합이니 하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 대다수는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대권주자들은 자신들의 대망론을 위해 명분쌓기와 물밑 세력확장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고 의원 개개인은 내년 총선 승리를 최우선 목표로 줄서기와 정치적 선택을 강행하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친 정동영(DY)계로 분류되고 있는 L 의원은 이어 “전당대회 이후 또다시 집단탈당이 결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 탈당그룹이 지금은 열세이나 시간이 갈수록 잔류세력을 압도할 것이다.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고 주장했다.
8일 기자와 만난 호남권의 또다른 L 의원은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을 정점으로 한 권력 파워게임이 분당사태를 자초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노 대통령과 친노파에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분당 책임을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에 전가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판단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L 의원은 “노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후계자를 친노직계 내지는 영남인사로 한정하고 호남 출신 대권주자들을 배척하고 있었다”며 “고건 전 총리와 DY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고 전 총리가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하고 DY가 ‘탈 노무현’ 노선으로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노 대통령의 이러한 의중을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전대 이후 DY가 탈당을 결행할 경우 DY 천정배 염동연 등을 주축으로 한 호남 정치세력과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친노·영남세력 간의 대결구도는 연말 대선 및 미래권력 주도권과 맞물려 대혈투를 방불케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여당의 탈당 사태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또 다른 대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어느 지역 누구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의원은 “선도탈당파 리더들(천정배 염동연)이 호남세력이고 집단탈당을 주도한 김 전 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이 DY와 가깝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호남권 정치세력이 탈당그룹의 패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고 누가 최후 승자가 될지는 지지율과 여론추이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탈당파 의원들은 각자의 명분과 나름의 정치적 실리를 추구하면서 표류하는 본선을 버리고 구조선에 올라타고 있다. 그 실리가 대권이든 내년 총선이든 정치생명과 직결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정치권 주변에서 ‘지역패권주의’ ‘영호남 대혈투’ 등 각종 분석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떠난 자나 남은 자 모두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 돌입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대변하고 있다.
또 탈당파 의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분당 후폭풍은 범여권 제 계파 및 의원 개개인의 생존 전략과 맞물려 여의도 정가를 상당 기간 뒤흔들어 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호남권 L 의원의 말처럼 현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권력암투 또한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탈당파그룹이 노 대통령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개헌안에 반대 입장으로 선회하며 ‘탈 노무현’ 노선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양 진영의 권력 싸움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풀이된다.
친노그룹은 노 대통령이 분당 후폭풍으로 탈당을 선택할지라도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을 지원하며 자생력을 키워간다는 복안이다. 노 대통령에 등을 돌린 탈당파에 대해 본능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친노세력이지만 현재 정국의 흐름대로 탈당파가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잡을 경우 자신들의 입지는 물론 정치적 생명마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참여정부의 존재 가치가 부정될 경우 어느 곳에서도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비장감까지 흐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권력을 기반으로 최소한 내년 총선에서 영남권에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86세력 등 젊은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친노그룹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노 대통령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부에서는 탈당파를 강력히 비난하며 투쟁 의지를 높이고 있는 노 대통령이 이를 위해 또다른 대책을 준비 중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탈당파그룹도 권력게임에서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2차 탈당파가 합류하고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 등 호남과 충청권에 지역기반을 둔 군소 정당들과의 대통합이 성사된다면 정국 주도권을 일시에 장악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충만해 있다. 특히 탈당그룹을 리드하고 있는 호남권 정치세력들은 지역패권주의를 담보로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영남세력과 일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다. 또 호남권 및 호남 민심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일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상과제인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탈 노무현’ 노선을 기치로 한 범여권 대통합 신당이 성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탈당파의 상당수 의원들은 누가 탈당파를 대표하는 대권주자로 부상하느냐보다는 탈당파 의원들의 정치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통합신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한 것으로 관측된다. 탈당파가 대통합의 물꼬를 트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설 수만 있다면 지지율이 낮은 기존 주자들 대신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박원순 변호사,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 이른바 제3 후보 카드로 대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오는 14일 열린우리당은 당 운명을 좌우할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전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하더라도 2차 대규모 탈당 등 분당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호남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DY가 언제 어떤 명분으로 탈당 대열에 합류할지 여부는 분당 정국을 영호남 대혈투 국면으로 이어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