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지도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침몰위기에 몰렸던 열린우리당이 2·14 전당대회를 통해 마지막 돌파구로 정세균 의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열리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뒤엎고 전대는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이지만 추가 탈당 움직임 등 내홍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새로운 지도부를 중심으로 통합신당을 추진하기로 결의했지만 계파간 주도권 싸움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비상 닻을 올리고 재출항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최종 목적지(대선)에 도달하기까지 적잖은 암초와 폭풍우를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을 항해하고 있는 여권 상황 속에서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51 대 49론’ ‘연합후보 불패론’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 등에 입각한 필승론이 제기되는가 하면 ‘여권 핵분열’ ‘바닥권 지지율’ ‘대권후보 부재’ 등 여권이 처한 어려운 정치현실을 반영한 필패론 논리도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필승론
여권의 대선 필승론은 재집권 전략과 그 맥을 같이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집단탈당과 계파 간 갈등 등으로 사실상 분당국면으로 치닫고 있지만 여권 핵심부는 대선 필승론을 기조로 한 중장기 재집권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권과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대선 여권 필승론’ 중심에는 ‘51 대 49론’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까지는 한나라당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대선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지만 여권 후보가 결정되면 대선구도는 범진보(여권) 대 범보수(한나라당) 진영의 대결구도로 재편되고 결국 과거 두 번의 대선처럼 51 대 49로 여권이 승리한다는 논리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은 “97년과 2002년 대선 지지율은 투표율까지 감안하면 한나라당 49%, 우리는 51%였다”며 “이는 한나라당 고정 지지 성향이 전체 유권자의 40%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당 의장 출신인 문희상 의원도 “지금 여당 지지율이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후보가 확정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면 누가 나오든 각각 51%와 49%로 박빙의 대결을 벌일 것”이라며 필승론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L 의원은 14일 기자와 만나 “‘51 대 49론’의 핵심은 범여권이 단일대오를 형성해 ‘반 한나라당’ 구도로 몰아가는 것이다”며 “과거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진보 대 보수 간 대결구도가 형성되면 ‘51 대 49론’이 현실화 될 가능성이 높고 결국 범여권 후보가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후보 필승론도 꽤 설득력있게 나돌고 있다. 이 논리는 지난 세 번(92년, 97년, 2002년)의 대선에서 모두 연합후보가 승리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의 ‘3당 합당’, 97년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간의 ‘DJP 연합’, 2002년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극적인 ‘단일화 성공’ 등 과거 세 차례 대선에서는 다른 정치세력 내지는 후보간 단일화에 성공한 후보가 대권을 거머쥐었다. 특히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사실상 충청권과 정책 연합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여권 핵심부가 악조건 속에서도 막판 대반전을 기대하고 있는 배경에는 바로 연합후보 필승론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들도 여권이 지금은 탈당과 계파 간 갈등으로 사분오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결국 대선 막판에는 대통합을 기치로 다시 뭉칠 것이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분당을 ‘위장이혼’으로 규정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석과 맞닿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막판 후보단일화를 염두에 둔 기획탈당설에 무게감을 싣고 있다.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이번 대선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란 분석에 공감한 여권 핵심부가 1, 2차 대규모 탈당을 통해 탈당파와 잔류파로 2원화해 각자 대선 경선을 치러 후보들의 인지도와 지지세력을 결집시킨 다음 대선 막판에 범여권 대통합을 명분으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켜 대반전을 꾀할 것이란 게 기획탈당설의 골자다.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이 집단 탈당파를 향해 공개적으로 “대통합이라는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고 한 발언은 기획탈당설을 부추기고 있다.
▲ ‘노풍’이 시작된 지난 2002년 3월 16일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경선 장면. | ||
후보 검증 문제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진영을 중심으로 내분 조짐이 일고 있는 한나라당의 경선구도가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여권 필승론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필패론
일부의 필승론에도 불구하고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휘말려 지리멸렬하고 있는 여권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연말 대선에서 재집권은 불가능할 것이란 ‘여권 필패론’이 현재로서는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패론의 정점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다. 각종 개혁정책 실패와 경제실정에 따른 민심 이반, 잦은 돌출 행동과 깜짝 승부수로 혼란을 야기한 노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국민들의 이반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물론 열린우리당과 여권내 차기주자들의 지지율이 바닥권을 헤메고 있는 것도 이를 말해주는 것이며 여권의 이름으로는 누가 나와도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힘들다는 절망론이 팽배한 실정이다. 여권내 탈당파와 일부 잔류파 의원들이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연말 대선에서 필패할 것이라며 노 대통령의 탈당과 당명 개정을 통한 대통합 신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탈 노무현’과 더불어 열린우리당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해야 무엇인가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
하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미래 권력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개혁세력의 실정을 경험한 대다수 국민들도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통합신당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위장 이혼’이든 막판 대통합이든 무슨 수를 들고 나와도 ‘백약이 무효’라는 관측이 거세지고 있다.
통합신당을 둘러싼 제 계파 간 갈등과 기 싸움도 필패론을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범 여권내 제 계파들은 통합신당으로 가야한다는 총론에는 동조하면서도 각론에 있어서는 계파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탈당파 그룹은 김한길·강봉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중도개혁파와 천정배 의원을 정점으로 한 개혁파로 이분화돼 있고 잔류그룹 또한 통합신당파와 사수파가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여기에 정동영 전 의장과 일부 통합신당파는 여차하면 탈당할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지금은 잔류파와 탈당파로 이분화 돼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당수 의원들이 탈당파 그룹에 합류할 것이고 탈당파도 계파 수장을 중심으로 사분오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결국 홀로서기에 돌입한 제 세력들이 세 확산 경쟁을 펼치다 막판에 다시 뭉치지 못하고 사분오열 구도가 고착화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3김 이후 뚜렷한 지역맹주가 부상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계파 수장과 차기 주자를 중심으로 지역 패권 다툼이 심화될 경우 범여권 통합의 길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반 한나라당’ 구도는 물 건너 가고 오히려 범여권 다자구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호남후보 필패론도 점점 무게감을 더해가고 있다. 범여권 주자로 호남권 인사가 출전할 경우 영호남 지역구도 대결이 불가피하고 이 경우 절대적인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힘든 여권이 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논리가 호남후보 필패론의 골자다. 정가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대선 때도 여권 핵심부는 호남후보 필패론에 근거한 대선 필승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당시 여권이었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쟁쟁한 후보들과 대세론에 심취해 있던 이인제 후보는 줄줄이 낙마한 반면 7~8%대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무현 후보는 경선 후반부로 갈수록 승승장구하면서 최후 승자가 됐다.
호남 출신으로 유력한 범여권 주자였던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나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이 ‘탈노무현’ 전선으로 선회하며 독자노선을 걷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호남후보 필패론 논리에 동조하고 있는 여권 핵심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에 대적할 마땅한 대항마가 없다는 현실도 필패론을 확산시키는 주요인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빅2’인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평균 20% 이상 많게는 40%대를 육박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범여권 주자들의 지지율은 5%대를 넘는 사람이 전무할 정도다. 오래전부터 대권행보를 보여왔던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은 물론 예비 잠룡그룹으로 분류되고 있는 천정배 의원, 한명숙 총리, 유시민 장관, 강금실·진대제 전 장관 등도 바닥권 지지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권이 이들을 배제하고 제3 후보를 영입해 대권주자로 내 세운다 해도 이미 높은 지지율을 확고히 한 한나라당 후보를 대적하기에는 힘이 부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이홍구· 이수성 전 총리 등 비정치인(학자 출신)이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한 과거 사례는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