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서 김 모 씨가 몰던 외제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중앙선을 침범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를 덮치고 6대의 차량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이 사고로 부산에 여름휴가를 온 어머니와 아들 등 보행자 3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을 입는 등 휴일 오후 전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김 씨는 지난해 9월 뇌전증 진단을 받았고 같은 해 11월부터 매일 약을 복용했으며 사고 당일에는 약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의 이런 병력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뇌전증은 과거에는 흔히 간질로 불리었으나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간질이라는 용어로 인해 환자가 입게 되는 사회적 피해가 커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다. 대한간질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1%가 뇌전증을 앓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2만 명 정도의 환자가 새롭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전증은 뇌가 작동 중에 갑작스럽게 짧은 변화를 일으키는 신체 상태를 말한다. 뇌 세포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환자의 의식, 운동 또는 행동이 짧은 시간동안 변화될 수 있다. 뇌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전기적인 자극으로 인해 나타나는 다양한 신경학적 증상을 발작이라고 하는데 뇌전증은 이러한 발작이 반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발작은 크게 부분 발작과 전신 발작으로 나뉜다. 부분 발작은 뇌의 특정 부위에서 발작이 발생하는 것으로 해당 뇌 영역이 지배하는 신체 부위에서 증상이 나타나며 뇌의 다른 부위로 퍼져 나가기도 한다. 또 부분발작은 발작 때 의식장애가 없는 단순부분 발작과 의식장애가 나타나는 복합부분 발작, 부분발작에서 전신으로 퍼지는 2차성 전신발작으로 세분화된다. 전신 발작은 뇌의 전체에서 발작이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데 신체의 한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전신적인 증상이나 의식 소실을 동반한다.
뇌전증은 원인이나 발병양상, 치료 등 모든 면에서 아주 다양한 형태가 발견되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종류의 간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환자에 따라 치료와 증상에 차이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뇌전증의 치료에는 먼저 그 원인을 찾아 이를 교정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발작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고 눈이나 손은 어떤 모양이었으며,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그리고 환자가 반응했는지, 기억을 하는지에 대해 전문의 상담이 우선되어야 한다.
뇌전증의 주요원인으로는 유전이나 미숙아,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상이나 분만 중 뇌손상, 뇌염 또는 수막염 후유증으로 뇌의 신경세포가 망가진 경우, 뇌 형성 중 문제 발생, 뇌종양, 뇌 혈관기형, 뇌내 기생충 등이 거론된다. 드물게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뇌전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뇌파검사를 시행한다. 뇌는 활동하고 있는 동안 미약하지만 전기를 일으키고 그 미세한 전기를 포착하여 그려내는 것이 뇌파다. 뇌파검사는 뇌전증 여부뿐만 아니라 뇌전증 발작의 시작 위치, 뇌전증의 분류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또한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 뇌 전산화단층촬영(CT)이나 뇌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시행하기도 한다.
과거의 경우 치료 목표가 발작 횟수를 줄이거나 예방하는 정도였으나 최근 뇌전증에 대한 진단과 치료법이 발전해 정확한 진단을 통해 치료가 시행되면 완치가 될 수 있는 질병이다. 100명 중 약 70명 정도는 약물로 치료되며 2∼5년간의 치료로 완치되기도 하며 이중의 절반은 평생 약을 복용하면 뇌전증은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 드물지만 난치성 뇌전증의 경우 단독 또는 병용의 약물 요법으로 치료 또는 조절이 되지 않고 점차 악화되는 경향이 있을 때는 수술 치료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뇌전증은 약물로 충분히 치료와 조절이 가능하며 70%이상은 약물치료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김 씨의 경우처럼 정해진 약물 치료를 지키지 않거나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과 선입견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의 건강은 물론 타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증상이 있으면 신속한 진단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도병원 신경과 강지혜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