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절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이명박 전 시장, 노회찬 의원, 손학규 전 지사(왼쪽부터). 사진제공=한겨레 | ||
당내 대권 주자들은 저마다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누군가 과감하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 경우 당은 금방이라도 분열의 길로 접어들 듯한 태세다. 정치권에선 그 첫 시험대가 경선 준비 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의 성공 여부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과연 경선 방식 합의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무사히 거치고 대권 고지로 향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은 최근 대권 주자들끼리 후보 검증과 경선 방법 등을 놓고 여러 가지 갈등을 보였다. 하지만 10년 야당 설움을 벗어나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공감대 때문에 깨질 듯 깨지지 않고 있지만 주변에서 이를 아슬아슬한 행보로 비치는 게 사실이다. 열린우리당 의원인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이는 이것이 10년 야당 한나라당의 생존 노하우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나라당은) 과두체제로 잘 꾸려가고 있다. 여러 세력들이 자기들의 방식으로 타협해서 당을 꾸리고 있다”고 말한다. 당내 갈등이 때로 도를 넘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서로의 아킬레스건만은 건드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시’에 해당하는 말이다. 대권 후보 경선 즈음에 대권 후보들이 ‘전시 체제’로 돌입할 경우 언제 어디에서 상대의 등에 칼을 꽂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특히 최근 후보 검증 공방을 거치면서 양측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확전 모드로 접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유력 대권 주자를 지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최근 당내 양대 세력의 감정싸움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기자에게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후보 검증의 배후에 김영삼 정권 시절 실세로 지냈던 K 씨의 인맥 가운데 한 사람인 또 다른 K 씨가 특정 캠프와 선이 닿아 조직적으로 네거티브를 퍼뜨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최근 들은 바 있다. 또한 ‘전략과 공작의 귀재’로 통했던 J 씨가 특정 후보 캠프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경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우리끼리 싸워서 결국 저쪽에 어부지리를 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지금 물밑에서는 온갖 술수들이 동원되고 있는 것 같다. 당장 당의 분열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 후유증은 서서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한 관계자도 양측의 감정싸움이 결국은 분열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그는 “각 캠프마다 상대방을 겨냥해 도를 넘어선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예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들도 이제는 그 배후를 캐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당연히 상대 측에 치명적인 정보도 언론에 흘리며 네거티브를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히면서 “이렇게 가다간 경선을 치러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고 해도 싸움에 진 쪽이 승자를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미 세팅이 된 승자의 대권 캠프로 패배한 진영의 인사들이 들어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당이 전력투구를 했는데도 패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양측의 감정싸움으로 경선 패배자가 적극 협조하지 않아 전력의 반만으로 대선을 치르는 형국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양측의 감정싸움은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이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오는 3월 10일까지로 예정된 경선 준비 기구인 국민승리위원회의 ‘만장일치 합의’도 여의치 않아 이 시점을 기점으로 그동안 유지돼 온 ‘평화 체제’가 깨질 가능성이 크다.
양측의 이견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경선 시기는 이 전 시장이 6월, 박 전 대표가 9월을 주장하다가 박 전 대표가 한발 뒤로 물러남으로써 6월 실시가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손학규 전 경기 지사와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 세 주자가 강력 반발하고 있어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맹형규 국민승리위원회 부위원장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시기는 아직 완전히 합의된 것이 아니다. 6월 개최가 유력하긴 하지만 여권보다 훨씬 앞당겨 후보를 선정하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위원들도 많다”고 밝혔다.
특히 박 전 대표 내부에서는 시기 문제와 관련해 아직도 이견이 불거지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캠프 내에 그런 생각(9월로 경선)을 한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 생각일 뿐이다. 어차피 합의가 힘든 상황이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6월 실시를 강조하고 있지만 캠프 내부에서는 여전히 경선 연기 쪽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지율 반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논리 때문이다.
여기에 더 큰 복병은 손 전 지사의 선택이다. 손 전 지사는 경선 룰이 변경되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손 전 지사의 의견을 반영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 경선 룰 합의는 손 전 지사의 손에 달려 있다. 그가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을 경우 경선준비위 활동은 무용지물이 되고 당 분열의 전초가 되는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경선 방법도 의견 차가 크다. ‘당심’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박 전 대표 측이 선거인단 4만 명 규모의 현행 방식(대의원:책임당원:일반국민:여론조사 비율 각각 2:3:3:2 반영)을 선호하고 있는 반면, 지지율 1위의 이 전 시장 측은 “비율은 그대로 두더라도 최소한 선거인단 수는 40만 명 수준으로 늘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맹형규 부위원장은 “선거인단 규모는 늘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게 위원들의 대체적인 분위기다”라고 밝혔다.
현재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 경선 시기와 방법은 확정된 게 하나도 없다. 합의 가능성도 높지 않다. 당 지도부는 경선 룰을 확정할 경선준비위원회의 활동 종료시점인 10일까지 결론이 나지 않으면 활동시한을 연장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재섭 대표는 이에 대해 “시간을 더 주어 타협가능성이 있다면 연장하겠지만 날짜를 연기해도 소용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위원회 활동을) 종결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런데 지도부가 그간 공언해 온 대로 합의 무산 시 ‘현행 규정에 따른 경선 룰’을 확정, 발표할 수도 있지만 후유증이 적잖을 것으로 보여 실현가능성은 미지수다. 경준위의 한 위원은 이에 대해 “경선준비위가 3월 10일까지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하고 그 활동 시한을 연장한다면 그 뒤의 합의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 김유찬 사태에 이은 후보 검증 공방 제2 라운드가 터지고, 손학규 전 지사가 경선준비위 합의 사항에 반기를 들고 경선 불참을 선언할 경우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오던 한나라당도 결국 분열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유령처럼 당 주변을 떠다니고 있는 형국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