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의료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눈수술 장면으로 기사와 관련 없음. | ||
의료사고 하면 건양대병원의 경우처럼 잘못된 수술로 인한 의료사고가 흔한 편이다.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데 의료진의 실수로 양쪽 다리를 모두 절단한 경우, 난소의 물혹만 제거하면 되는데 난소 자체를 제거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환자의 배속에 거즈, 실리콘 튜브 등 각종 수술기구를 남기고 봉합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급성심근경색으로 서둘러 병원을 찾았지만 병의원에서의 긴급조치가 미흡해 수시간 내에 사망으로 이어진 의료사고도 있다.
이 같은 다양한 형태의 의료사고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관계자는 “건양대 사건 이후 자신의 경우도 의료사고에 해당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묻는 상담전화가 전보다 한층 늘어났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2005년 한 해 동안 접수된 의료서비스 피해구제 건수는 총 1093건. 이는 885건이 접수된 2004년에 비하면 23.5%가 늘어난 수치다.
의료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의료진의 부주의. 의사들은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고 반박하지만 의료진의 부주의로 인한 의료사고가 해마다 50%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발표한 ‘2005년도 의료피해구제 업무분석 결과’를 보면 695건의 피해구제 요청 사례의 과실 소재를 보면 ‘의사의 부주의(386건)’가 55.5%로 가장 많았고 ‘설명 소홀’(130건)이 18.7%로 그 뒤를 이었다. 설명 소홀은 의사가 진료과정에서 환자에게 진단 결과나 치료 방법, 치료 내용, 예후, 부작용, 위험성 등에 대한 설명의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를 말한다.
만약 병원에서 의료진의 실수로 인해 병이 더 악화되었다거나 치료를 받으러 간 부위가 아니라 다른 부위에 엉뚱한 치료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료사고’라고 생각되는 순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우선 환자가 살아있다면 병원부터 옮기는 것이 좋다. 다른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이전 병원의 의료 과실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는 데 도움이 된다. 대외법률사무소 김선욱 변호사는 “이때 옮긴 병원에서의 진단서나 소견서를 받아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라면 경찰에 신고하고 부검을 받는 것이 좋다. 부검을 해야만 의사의 과실과 환자 사망의 인과 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또 의료사고가 의심된다면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도록 보호자가 병원에서의 모든 의무기록 즉 의무기록이나 필름, 수술기록 등을 최대한 빨리 복사해 두어야 한다. “환자 가족들이 의사의 구체적인 과실을 진료기록을 통해 나름대로 확인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병원 측의 진료기록 변조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김선욱 변호사의 설명이다.
2000년 7월 13일 시행된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 그 배우자, 그 직계존비속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 등이 환자에 관한 기록의 열람·사본 교부 등 그 내용 확인을 요구한 때에는 환자의 치료 목적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병원 측이 이 규정을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진료기록 사본을 받아두되 원본을 열람해서 미심쩍은 부분은 대조를 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의료사고 후에 병원측이 원래의 진단명이나 진료과정 기록을 변조하는 경우도 있다.
담당 의사의 구체적인 의견도 들어둔다. 사고 당시의 치료방법에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면 된다. 의사가 여러 명일 때는 가능하면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 이때는 대화내용을 그대로 메모할 수 있는 제3자를 대동하거나 녹음을 하는 것이 좋다. 환자나 보호자도 사고 정황에 대해 사소한 것이라도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사고경위를 잘 메모해 두어야 한다.
만약 사용한 약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때는 제약회사에 직접 문의해서 해당 약품을 사용할 때의 주의사항이나 부작용 등에 대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그런 다음 의료기록과 대조해서 문제가 없었는지 본다.
병원 측이나 의사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집단행동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오히려 업무방해를 했다고 해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데 불리해진다. 만약 의료사고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는데 아직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면 섣불리 합의를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나중에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합의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문서로 증거를 남겨야 한다.
하지만 의학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보니 의료사고가 확실한 경우에도 일반인들이 대처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럴 때는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우선 의료심사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2년~2005년 의료심사조정위원회 조정신청 현황’ 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위원회에 접수된 의료 사고 조정신청은 모두 58건이지만 단 4건만 조정이 이루어졌다. 조정 결과에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데다 의료심사조정위원회가 비상임 위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한국소비자보호원 같은 곳에 구제 신청을 하는 방법이다. 의무기록지나 필름, 진단서 등의 증거를 가지고 가면 전문 상담원과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법적인 강제력이 없어서 소송 전 조정 절차 정도의 개념이다. 조정이 잘 이루어지면 병원으로부터 의료사고에 대한 금전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것인데, 소송을 고려할 때는 법률구조공단이나 변호사회 등에서 미리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 혼자서 소송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면 의료소송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수임료는 비싸지만 의사 출신이거나 의학지식이 있는 변호사들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의 원칙상 피해자가 병원의 의료 과실을 규명해야 하는 탓에 어려움이 크다. 특히 나홀로 소송인 경우에는 의학상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병원에 대항해서 과실을 밝히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989년부터 여러 차례 의료분쟁조정법안이 마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의료기관이나 법무부, 기획예산처 등의 관계 부처와 의료기관의 반대로 아직도 표류중인 실정이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환자의 알 권리를 강화시켜 의사 설명의 의무화, 과실 여부 의사 입증, 진료기록 위변조 금지 등의 규정을 넣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시급하게 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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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대외법률사무소 김선욱 변호사, 의료소비자시민연대, 한국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 이정갑 회장